28년 전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온몸 관절들이 굳어져 아주 건강했던 제가 1급 장애인이 되었답니다. 정말 제 인생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급기야 침상에서 대 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까지 되었답니다. 목 관절이 굳어지고, 어깨 관절, 양 팔꿈치 관절, 양 손목 관절, 양 손가락 관절들, 양 무릎 관절, 양 발목 관절들, 그리고 20년 전에 수술하다가 오른 쪽 발 신경이 마비되는.. 정말 망신창이가 되었답니다.
밖에 거동도 못하고 집안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연로하신엄마가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주셨고, 내가 할 수 있던 것들 하나씩 포기 하면서 나에게 허락된 좁은 방, 작은 침대에서 20여년의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주위에서 존재감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억울했습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이렇게 걷지도, 뛰지도 못하고 이 세상에서 누려야 하는 것들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삶이란 정말 비참 했습니다.
현재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미래를 생각 할 수도 없었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줄을 알았습니다.
나의 어려운 삶을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의 작은 행동이 내 인생을 180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담당의가 내 관절들을 수술할 수 있다는 복음과도 같은 말을 듣고는
총 6번의 수술을 하고 오랜 시간 재활훈련을 받고 내 힘으로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내려왔을 때에 주위에서는 기적이라고 했고 몇 십 년 만에 직접 쐬는 햇볕이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시작된 나의 삶은 매일 밖에 나와 걷는 운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많은 장애가 남아 있습니다. 다리가 잘 굽혀지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을 하지 못합니다. 택시는 오래전에 승차 거부를 당한 적이 있기에 혼자는 타지 않다 보니 외출이 자유롭지가 못했습니다. 언니나 친구의 도움으로 외출을 해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자유롭고 싶어서 세상에 나왔는데 또 다른 것이 나의 자유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싶었지만 중증장애를 가진 나에게는 면허 취득은 너무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장내기능 연습을 할 때 내 몸을 도로 중간에 넣고 운전하다가 혼이 나고, 차선을 벗어나는 곡선 주행, 급브레이크는 예사이고 옆에서 보던 담당 교관이 이렇게 하다가는 합격률이 10%밖에 안 되겠다고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하게 연습해서 장내 기능을 한 번 만에 합격하고, 제일 어려운 도로주행 시험. 도로주행시험 5분 만에 후회를 했습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지 그냥 언니나 친구 차를 얻어 타고 그렇고 그렇게 살면 되지 이렇게 사고의 위협까지 당해가며 면허 취득을 해야 하는 생각에 정말 포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도전을 지켜보는 수많은 눈들 때문에 포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유턴하다가 사고 날 뻔하고, 차선 변경을 할 때 뒤차가 내 옆에 와서 다시 내 차선으로 들어간 일, 앞 차의 불법 주행을 따라가다가 시험관이 제지 시킨 일, 교차로를 돌다가 다른 차선으로 들어가서 시험관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할 수 있는 실수를 모두 다 하고 4번 만에
도로 주행을 합격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면허증을 쳐다보면 마음이 포근합니다. 지금은 잠시 장롱에 넣어두었습니다. 상황이 되면 차를 마련해서 국도를 타고 전국을 자유롭게 여행을 할 예정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나에게는 도전이 되어버린 현실.
그러나 그것이 즐거운 이유는 20여년이란 긴 세월이 나를 숙성시켜서 이제 모든 것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크나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장애. 생각에 따라 행복이 되고 불행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을 택했습니다. 남은 날들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