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버지 벌써 나가세요?” 저희 부모님은 이른 새벽에 가게로 향하십니다. 저는 졸린 눈을 비비며, 창문 너머로 멀어지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부모님은 시내에 있는 전통시장에서 작은 식당을 하고 계십니다. 8년 전, 하시던 사업이 잘 안되어, 우여곡절 끝에 이 식당을 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손님이 너무 없어서 걱정이었지만, 지금은 음식 솜씨가 좋으신 엄마 때문인지, 점심시간만 되면 단골손님으로 꽉 찰 정도로 시장 안에서는 제법 유명한
식당이 되었습니다.
식당을 열기전인 8년 전, 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생각만하면, 그 순간의 막막함 때문에 가슴이 아려오고는 합니다. 여기저기서 빚 독촉전화가 왔습니다. 당시 학생이던 어린 저는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너무나도 무서워서 전화선을 뽑아놓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우리가족은 살고 있던 집까지 잃게 되어 오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었었습니다. 결국, 빛도 제대로 안 들어오는 작은 월세 방을 얻어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겨울이면, 너무 추워서 옷을 몇 겹으로 껴입고, 양말을 두 켤레나 신고 지냈고, 여름에는 곰팡이가 핀 방안에서 쾌쾌한 냄새를 맡으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후덥지근한 날에는 숨이 목까지 차올라 질식할 지경이었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 서러운 날의 연속 이었습니다. 한 번은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는데, 몸이 좋지 않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상큼한 과일이 먹고 싶다고 엄마께 말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동네에 있는 과일가게로 갔습니다. 바구니마다 먹음직스러운 과일이 풍성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아저씨, 저 참외 얼마예요” “5000원입니다.” 엄마와 저는 가슴이 덜컹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한테 과일 값으로 한번에 5000원을 쓴다는 것은 꽤 큰 금액이었으니까요. 결국, 한편에 놓여있던 오래되어 팔지 못할 것 같이 생긴 뭉그러진 바나나 한 덩이를 1000원에 사왔습니다. 그 날 집에 와서 뭉그러진 바나나를 먹으면서, 얼마나 서러운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아픈 딸한테 제대로 된 과일하나 못 사주신 엄마의 마음은 오죽이나 아프셨을까요?
지난 8년 동안 엄마, 아버지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아 오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몸이 아프거나 심지어는 명절일 때도, 가게 문을 여셨고, 한 손님, 한 손님 정성을 다해 음식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특히 지난 어려움의 시간동안 엄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지금 엄마는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십니다.
어려웠던 그 시절, 너무 힘들어서 귀에 염증이 나셨는데도, 병원에 가셔서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하신 까닭 때문입니다.
가끔씩 손님이 주문하시는 것을 잘 듣지 못하시고, 몇 번이고 물어 보시고는 하실 때, 정말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옵니다. 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지금까지 엄마는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열심히 생활해오셨습니다.
비온 뒤에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가정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오빠랑 저도 직장에 취직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고, 몇 달 전에는 방도 세 개나 되고, 화장실도 두 개나 되는 큰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큰 집으로 이사하던 날, 우리 가족은 집안 곳곳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면서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모릅니다. 또 며칠 전에는 엄마의 55번째 생신 이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제대로 생일 상 한 번 차려 드리지 못 한 것 같아, 오빠와 저는 엄마 몰래 케이크와 꽃바구니, 그리고 예쁜 속옷을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엄마, 아버지가 일하시는 식당 앞에서 초 55개를 꽂아서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얼굴이 웃음 반 눈물 반 상기되어 있으셨습니다. “돈 들게, 뭘 이런 걸 하니.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니?” 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렀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엄마가 계셔서 우리가족이 버틸 수 있었어요. 우리 이제 웃으며 살아요.” 저는 엄마의 들리는 남은 한쪽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이제 우리 가족에게 닥쳤던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맑게 갠 행복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지난 8년의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 간의 사랑이 무엇이고, 희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간 동안 우리를 지탱해준 엄마, 아버지 고마워요! 우리가족 모두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