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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배(腹)에서 나와, 한 배(船)를 탄 형제
  • [가족사랑수기 | 201103 | 강석원님] 다른 배(腹)에서 나와, 한 배(船)를 탄 형제
제게는 6살 터울인 형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어머니와 형의 어머니는 다릅니다. 재혼하신 아버지와 지금의 어머니께서 얻은 늦둥이가 저입니다. 이런 가족사에 더해, 어린 시절의 제가 워낙 유약해 부모님의 관심은 형보다 저에게 몰려 있었습니다. 형은 형대로 이에 반항하려 하였고, 어머니는 그러는 형을 못마땅해 하였습니다. 당시 사정을 몰랐던 저는 항상 다투는 어머니와 형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어머니와 형이 심하게 다투는 날이면 저는 형에게
“왜 싸우는데? 엄마한테 그러지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형은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울며 “그래 미안. 너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야.” 라며 저를 다독여주곤 하였습니다. 크고 작은 불협화음이 섞인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행이 저희 가족에게 찾아옵니다. IMF의 영향으로 아버지는 기존의 사업을 정리하셔야 했고, 이어서 하신 사업이 큰 사기를 당해서 저희 집은 빚더미에 앉아야 했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불행이 우리 가족에게 닥친 것처럼,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신 아버지는 허리통증이 심하셨고, 결국 수술대에 오르셔야 했습니다. 모든 경제력을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수술비와 입원비조차도 지불할 형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거친 바다 위에서 기장을 잃은 배처럼, 저희 가족은 금방이라도 전복될 것만 같았습니다.
흔들리는 키를 가장 먼저 잡은 것은 형이었습니다. 형은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공장에 근무하였습니다. 이어서 사회경험이 전무하셨던 어머니가 화장품 외판 근무에 뛰어들면서, 키를 잡은 형을 지탱해주었습니다. 가정의 경제적 위기는 가족 내의 불협화음을 없애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학업을 포기하면서 가장의 역할을 맡아야만 했던 형을 안쓰러워 하셨고, 형은 직장과 가사를 모두 돌보아야 하는 어머니의 부담을 나누려 했습니다. 어머니와 형이 번갈아가면서 제 도시락을 준비하시며, 때로는 형이 학교행사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형이 공장에서 번 첫 봉투를 어머니에게 건네는 순간,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은 그런 어머니를 안으며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두 사람이 키를 마주 잡은 탓에, 저희 배는 점점 제 궤도를 찾았습니다. 아버지는 차츰 건강을 회복하셨고, 저도 형과 어머니의 헌신적인 지원 아래에서, 지방의 국립 대학교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막 성인이 되었을 쯤, 우연히 친척 어른들의 하시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저희 가족의 작은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어머니와 형 관계가 소원하였다면, 그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단단한 유대와 결속을 가진 저희 가족에게는 하나의 과거에 불과하였습니다. 형이 키를 꽉 붙잡고 있으면, 아버지가 방향을 제시해주며, 어머니는 사랑으로 모두를 지원합니다.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항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저는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형이 잡고 있던 키를 잠시 맡아두려 합니다. 저는 한 기업에 채용이 예정되어 있으며, 형은 다하지 못한 공부에 미련이 있는 듯합니다. 형의 희생적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형을 설득하였고, 형은 대학 진학을 결정하였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형을 지탱하였듯, 조금만 기다리면 키를 잡은 제 두 손을 형이 꽉 붙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