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우리 남매는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어린아이였다. 유년시절 주변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와 항상 가슴 아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곤 했었다. ‘왜 그럴까?’ 란 질문보단 순수한 마음과 눈으로 세상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자라나면서 언니와 남동생이 남들과 다르다 란걸 알아갈 때 혼란스러움에 빠져버렸다. 나에겐 이제껏 남들과 같은 언니와 동생인데 다른 친구의 형제, 남매처럼 매일 웃고 울고 싸우고 하는 그런 사이좋은 남매인데 왜 자꾸 내 손을 잡으며
안쓰럽다는 듯 말들을 하는지 몰랐다. 내가 중학교에 가면서 점차 언니와 동생이 나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게 두렵게 느껴졌다. 말하는 것도 어눌하고, 무엇을 설명하는데도 오래 걸렸던 언니와 동생.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며 언니 때문에 놀림 받는 일도 부쩍 늘어가며 사춘기에 접어든 나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다.’라고 말해주며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믿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 생활에서 탈피하고 싶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언니와 남동생이 지적장애인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껏 언니와 남동생이 언어적으로 부족할 뿐이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던 내겐 크나큰 충격이었다. 지적장애가 무엇인지도 알기도 전에 세상과 부딪혀야만 했었다. 남들의 따가운 시선, 동정의 눈빛들로부터 내 자신과 언니와 남동생을 지켜야만 했었다. 때론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싸우며 그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도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러다 그 모든 것들을 알아가기도 전에 언니의 입원과 퇴원의 반복, 동생의 응급실. 모든 것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었다. 언니가 치료하는 중에 동생도 입원과 퇴원을 하며 힘든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며 부모님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였고, 나도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진학사이에 놓이며
크게 불어난 지출을 감당하기 힘들어하셨다. 그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그림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며 그 원망이 언니와 남동생에게 고스란히 비춰 난 나에게 이유 같지 않는 이유를 달아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언니와 동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렇게 자유로워졌다 싶었을 때 또 갑작스런 언니의 입원 그리고 “몇 년을 살지 못할 것 이다.” 라는 병원의 대답에 항상 언니와 남동생을 원망하며 지내온 몇 년들이 미안함과 씁쓸함이 몰려왔다. 철없는 나의 짧은 생각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하였다. 언니와 남동생에 대해 알고 싶었다. 지적장애가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을 공부를 하며 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할 날을 꿈꾸며 졸업을 하였다.
졸업하고 취업하여 지적장애인에 대해 알아갈 때 쯤
갑작스런 언니의 부재가 찾아왔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그렇게 가족 곁을 떠났다. 이 모든 것들이 꿈처럼 여기지고, 모든 걸 버리고 싶었다. 내 삶의 전부가 언니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고 한순간 꿈이 깨졌다 믿었다. 하지만 난 몰랐던 것이다. 언니가 가져간 것은 내 꿈이 아니라 남동생과 다른 지적장애인들을 내 가슴에 안겨주고 간 것을. 이제까지 언니만 바라보며 달려왔던 내게 남동생이란 큰 존재가 있었고, 힘들 땐 내 어깨를 두들겨주며 같이
아파하는 다른 지적장애인들이 있었단 걸 말이다. 내겐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언니를 잃은 슬픔에 다른 사람들을 놓아버리려 했다니. 지금 나는 언니를 잃은 슬픔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즐거움으로 행복함으로 점점 채워가고 있으며, 내 가슴의 상처가 치유됨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게 언니가 내게 주고 간 선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