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란 말이 있던가. 나 역시도 이왕이면 디자인이 참신하고 세련된 물건을 선호하게 된다. 또 사람을 첫 인상으로 판단할 때도 깔끔하고 수려한 외모에 더 호감이 가기 마련이다. 20년 전 초등학교 3학년 우리 교실에도 어른들의 외모지상주의의 축소판이 자행되고 있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키가 작고 왜소한 몸집의 근호(가명). 옷차림은 언제나 꼬질꼬질했고 아이들은 근호 주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옆에 가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짝을 바꾸는 토요일에는 온 신경이 근호에게 쏠렸다. 누가 한 주간 근호의 짝이 되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당첨이 될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 역시도 그 비운을 피해갈 순 없었다. 주말이 지나고 근호와 짝이 되는 돌아오는 월요일이 끔찍이도 싫었지만 막상 근호 옆에서 시작한 한 주간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흉을 보며 피했던 근호의 모습과는 달리 단지 옷이 바뀌는 주기가 길 뿐 이상한 냄새로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근호가 기초학력미달학생 수업으로 인하여 별도의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담임선생님 역시 우리가 근호와 가까이하기를 꺼려하고 피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셨는지 근호에 대해 우회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셨다.
“너희들이 엄마와 아빠의 보살핌 안에서 지내고 있다면 근호는 할머니와 아빠의 보살핌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야. 이상한 시선이나 호기심의 대상으로 볼 필요가 없단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근호를 돌보아 주셨던 할머니가 좀 편찮으셔서 점심 도시락을 제때 챙겨오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가 1년 동안 한 사람이 한 달씩 돌아가면서 근호 도시락을 챙겨주면 어떨까? 엄마와 상의하고 내일 선생님께 말해주길 바란다.”
당시만 해도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이 흔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런 사정과 형편을 쉬쉬하는 분위기였고 드러낸다고 한들 지금처럼 복지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학교에서 있었던 근호의 사정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다가 잠들기 직전 번뜩 생각이 났다. 엄마에게 지나가는 말로 근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러한 사정인 아이가 있는데 자기 도시락에 근호 도시락을 한 개 더해서 한 달씩 릴레이로 연말까지 이어가자는 제안을 담임선생님이 하셨다고. 엄마는 흔쾌히 근호 도시락 한 개를 더 싸주시겠다며 내일 담임선생님께 신청하라고 하셨다.
다음 날 2교시가 끝나고 담임선생님께 근호 도시락 릴레이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벌써 꽉 차서 내가 제일 마지막 12월에 당첨이 되었다고 알려주셨다. 역시 마음만은 순수한 진심이 통하는 10살짜리 코흘리개인가 보다. 어느새 그 기쁜 일에 너도나도 참여하겠다고 해서 까딱하면 근호 도시락 릴레이에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니. 조개탄을 넣은 난로가 교실 한 가운데로 입성한 12월.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내 도시락에 1+1으로 근호의 파란
도시락까지 챙겨가는 한 달이 시작되었다. 소시지 야채볶음, 돈가스, 달걀 장조림 등 근호를 위해 평소보다 신경을 조금 더 쓴 듯한 엄마의 도시락 메뉴들이 선보여졌다. 근호 덕분에 덤으로 나까지 평소보다 더 맛있는 반찬들과 점심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겨울 방학식을 앞두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비워진 근호의 파란 도시락 통이 내 책상에 놓여졌다. 그리고 기초학력미달학생으로 보충 수업까지 받았던 근호의 삐뚤삐뚤한 글씨가 그려진 작은
쪽지도 함께 놓여 있었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그동안 맏읻게 잘 머거씁니다.”
‘미인은 가죽 한 겹일 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라.’ 라는 말이 떠오른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때 코찔찔이 근호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그 때의 파란 도시락통과 3학년 9반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