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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아무도 아니에요
  • [자원봉사활동수기 | 201208 | 강이주님] 저는 아무도 아니에요
“반장!”선생님이 다정한 목소리로 저를 찾습니다. 아직 조그맣고 통통한 이 여자아이는 냉큼 일어나, “차렷, 경례” 하고 외칩니다. 작은 섬마을 초등학교에서 6년 내내 같은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줄곧 반장 자리를 도맡아 했습니다. 아직 조그맣고 통통한, 하지만 욕심 많은 이 여자아이는 급식소에서도, 운동장에서도, 조례시간에도 항상 제일 앞자리를 차지해야 성이 찹니다. 저는 따뜻한 사랑과 칭찬 속에서 한없이 다정하고 한없이 안락한 자신의 작은 세상에서
그렇게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한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집에 낯선 사람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합니다. 할머니와 엄마가 다투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빠는 벌써 여러 날 돌아오시지 않습니다. 커다란 견인차가 와서 마당에 있던 아빠차를 견인해 가던 날 오후, 견인차만큼이나 커다란 이삿짐 트럭이 아빠 차의 빈자리를 채웁니다. 엄마와 저희 삼남매는 마치 이삿짐 보따리처럼 아무 말도 없이 쓸쓸하게 부산으로 실려 갑니다. 6학년 2학기, 전학가기에 정말 이보다 더 좋지 않은 시기가 있을까요? 저는 학년마다 학생 수가 열 명 내외였던 학교에서 한 학년마다 무려 아홉 반까지 있는 대형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자기 소개해야지?” 선생님은 제 등을 떠밀어 마흔 쌍의 불친절한 눈동자 앞에 세웁니다. “......강...이주.......” 마음으로는 “강이주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는 제 이름 석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짓궂은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야 니 사투리 함 해봐라”하고 놀려댑니다. 자꾸 작아지는 제 모습에 울음이 날 것 같은 것을 억지로 꾹 참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람들 눈에 뜨이지 말자, 나서지 말자.’ 어린 마음에 굳게 다짐을 했습니다. 다음날 문득 반에 이상한 아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손, 발은 물론 얼굴까지 비비 꼬는 아이가 반 맨 뒷자리에 앉아서 침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저게 저래도 말은 다 알아 듣는다.” 제 시선이 한동안 그 아이에게 머물러 있자 옆에 앉은 짝이 넌지시 이야기 합니다. '아, 저 아이도 나랑 같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릿속에 들었습니다. 이 반 안에서, 어쩌면 이 학교 안에서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고, 아무도 웃어 주지 않고, 아무도 불러 주지 않는 아이는 저 아이와 나, 우리 둘 뿐이구나. 우리는 정말 그 안에서, 그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아무’도 아니었습니다. 시골 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웅변과 동화구연을 좋아하시는 분이셔서 종종 방과 후에 학생들에게 웅변이나 동화구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동화구연에 소질이 있는 편이였고 또 무척 좋아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그 아이와 갑자기 소극적으로 변한 저는 책의 세계로 종종 도망을 갔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한 시간이나 남는 점심시간에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등나무 벤츠 밑 그늘진 곳에 앉아 책을 소리 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은실아, 니는 이거 읽어 봤나?” 하고 제가 물으면 그 아이는 침만 질질 흘립니다. “읽어줄텐께 잘 들어봐라잉?” 아직 못 고친 전라도 사투리를 억양을 섞어가며 제법 긴 초등학교 고학년용 동화책을 읽어줍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도록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동화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이에게 고학년 동화는 아직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물이 나오는 동화일수록 그리고 제 몸짓이 크면 클수록 제 관객이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 유치원 다닐 적에 다 읽은 동화건만,
그 아이에게 들려줄 요량으로 집에서 한 번 더 읽어보고 다음 날 가방에 넣어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날이 지날수록 은실이가 저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날,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관리 하시는 특수반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전학 온 후로 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부르는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저는 불안한 마음으로 교무실로 향했습니다. “네가 은실이 점심시간마다 데리고 나가는 애니?”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이를 제 마음대로 밖에 데리고 나가면 안 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네...” 모기같은 목소리로 겨우 대답해놓고는 눈물부터 글썽 거렸습니다. “이름이 뭐니?” 선생님께서 당장에라도 수화기를 들고 새벽부터 일터에 나가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거실 것만 같아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저는 아무도 아니에요. 정말 전 아무것도 아니니까, 선생님 엄마한테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울음 섞인 제 목소리에 잠깐 의아한 표정으로 절 바라보시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넌 당연히 ‘아무’가 아니지! 다음 주부터 넌 특별반 아이들을 위해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보조 선생님이 될 거야.” 알고 보니 점심시간에 우연히 은실이 상태를 보러 오신 선생님께서 저와 은실이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신 모양 이였습니다. 놀란 제가 대답이 없자 선생님이 다정하게 물으셨습니다. “은실이는 무슨 책을 제일 좋아하니?” 여전히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하지만 또렷하게 대답했습니다.
“개구리 왕자요.” 선생님도 웃고 저도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저는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시간에 특별반 교실에 들러 제 특별한 관객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제 인생 첫 번째 재능기부가 시작 된 것입니다. 고백하건데 이 작은 재능기부로 회복 된 것은 오히려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살 수 있기만 바랐지만 마음속으로는 누구보다도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조금 오래 눈을 맞추려 노력하고, 조금 과장되게 웃고, 조금 크게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자신을 보고 웃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 곁에 평등한 한 사람으로써 소통하고 싶어 하는 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저와 은실이, 그리고 특별반 아이들이 원했던 것, 그건 사실 누구나 갈구하고 있는, 그러나 지금은 너무 찾기 어려워진 ‘다정함’ 이였습니다. ‘아무’도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아닌 재능도 없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나눌 다정함만 있다면 그 무엇을 기부하는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따스하게 쓰일 것이라고 믿으며 오늘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