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마사지사 교육을 받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자, 이번엔 자신의 왼쪽 발에 습득한 마사지를 해보며 자극을 느껴봅시다!”라는 강사님의 말씀에 순간 저는 당황했습니다. 저는 왼쪽 발이 없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왼쪽 하지를 절단하면서 지체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던 자신과의 갈등과 타인들의 시선에 움츠리며 그렇게 20년을 좌절의 늪에서 살았습니다. 장애인인 저 자신을 인정해보자 마음을 먹고 작년 초에 의정부시장애인종합복지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저보다 장애가 더 심한 중증장애인들이 밝은 모습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니 “나 정도의 장애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어.”라는 뜻 모를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무엇이라도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이미 개강하여 3회기 째 진행되고 있던 ‘발마사지 교육프로그램’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였으나 뒤처지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수강생들은 그때그때 익힌 마사지 기술들을 자신의 발에 연습을 할 수 있었지만 왼쪽 발이 없는 저는 오른쪽 발에라도 연습을 하려하면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이내 옆으로 꼬꾸라지기 일쑤였고 실습 시간 내에 연습할 수가 없어 교육 후 가족, 복지관 중증장애인들, 동호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연습하곤 했습니다. 저의 노력에 강사님은 발마사지 서비스 제공프로그램에 보조 역할로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매주 월요일마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발마사지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강사님만큼은 아니지만 강사님께 발마사지 기술을 배운 제자 중에 제일 뛰어나다고 자부할 만큼 저의 발마사지 기술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더 이상 강사님의 보조가 아닌 저 혼자 모든 발마사지의 기술을 활용하여 중증장애인들에게 발마사지를 해줄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는
저만 찾으시는 단골손님도 생겼습니다. “자기도 발 한쪽 없이 불편하면서 남의 발을 자기 발처럼 참~ 귀하게 만져주니까 내가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 “발마사지 꾸준히 받고나서 나 이제 밥도 잘 먹고 운동도 다시 시작하잖아~ 고마워 죽겠다니까!!”, “어이구~ 뭐야! 이씨도 장애인이구만! 아무리 한쪽 발이라도 이렇게 발이 없는데 발마사지사를 할 생각을 했는가? 대단하구만!!”하는 중증장애인들의 말을 들을 때면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1년 전 발마사지 교육을 등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니, 의정부시장애인종합복지관을 방문하지 않았다면? 아니, 나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아니, 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나눔의 행복을, 따뜻한 마음을 느끼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올해에는 강사님이 강의하는 발마사지사 양성 프로그램의 보조 인력으로 강의를 보조하면서 저 또한 전문적인 발마사지사가 되기 위해 발마사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발마사지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복지관을 이용하는 중증장애인들을 비롯해 이동이 불편해 집에만 있는 재가장애인, 인근 경로당, 노인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 등 더욱 많은 분들을 대상으로 보다 전문적인 발마사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발 없는 발마사지사라는 특이한 이력이 생기겠지요.
미흡하나마 이렇게 재능을 기부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발 건강은 물론 저보다 더욱 어려운 사람들에게, 과거의 저처럼 아직도 어두운 좌절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까지도 전달하는 발마사지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