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10년이 넘도록 공부했던 피아노를 개인적인 사정으로 포기했었다. 전공으로 삼으려고 공부했던 것이기에 내 어린 시절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놀기보다는 홀로 피아노를 연습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피아노를 그만 둔 후 나는 늘 생각했다. ‘내게 피아노는 내 모든 시간을 빼앗아갔다’, ‘앞으로는 피아노를 치는 달란트를 사용할 기회가 없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온 후 우연히 서울시에서 후원하는 다문화
장애 어린이를 위한 뮤직 튜터(Tutor) 봉사 모집에 대한 글을 보았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무언가 봉사할 기회를 찾고 있던 시기였다. 다문화 가정에 장애인 아이들에게 음악선생님이 되어주는 봉사였다. 소외받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 한 번 더 소외받는 장애를 가진 그 아이에게 무언가 나눌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가 전공자는 아니지만 내가 가진 음악재능을 나눌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고, 자기 소개서에 진심을 담아 지원했다.
내 인생에서 피아노를 다른 의미로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결국 일주일에 한 번씩 9개월 동안 피아노를 가르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만난 아이는 중국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에 뇌병변 2급을 앓고 있는 준우(가명)라는 아이와 중학생 준우의 누나였다. 나는 준우에게 좋은 피아노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준우에게 욕심을 가지고 기대를 했다. 그러나 잘 따라오는 준우누나와는 달리 준우는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내가 준비해온 것을 모두 따라오지 못했다. 준우는 자꾸만 건반위에서 길을 잃었다. 우리 집과 준우네 집까지의 거리는 2시간 거리였는데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수업을 하고 오는 길은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그러다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날, 함께 노래하며 건반도 자유롭게 누르고 뮤지컬을 하듯이 가르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날 준우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너무나 좋아했고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고 손을 건반위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내가 욕심을 버리고 많은 것을 가르쳐만 주려는 선생님이 아닌, 피아노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누나처럼 다가갔더니 준우는 그 시간을 너무나 좋아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준우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준우가 손가락만을 이용해서 피아노를 계속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막대기, 스틱같은 것을
이용해서 건반에 붙여 수업도 했고 좋아하는 노래도 들려주며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활동의 마지막쯤에는 레인보우 음악회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멋지게 피아노 한 곡을 치기가 어려웠던 준우였지만, 인생의 첫 무대에 오른다는 기대로 가득 차있었고, 나 또한 준우에게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 그리고 자신감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준우와 준우누나를 함께 무대에 서게 해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준우 누나에게는 코드와 반주를 가르치고 준우에게는 쉬운 멜로디만을 가르쳤다. 몸이 불편한 준우에게는 이조차 너무 어려웠지만, 준우와 준우누나 그리고 나는 함께 많은 연습을 했다. 피곤한 날도 있었고, 날이 더운 날도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늘 연습했기에 그 누구보다도 더 힘들었을 준호였다. 또한 치료와 운동을 받고 돌아와 피아노까지 연습해야 하는 준우였지만 포기하지도 웃음을 잃지도 않았다.
레인보우 음악회가 열리는 그 날, 빨간 보타이를 매고 누나와 함께 무대에 오르기 전 서로 파이팅을 외치는 준우는 오히려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휠체어를 끌어 무대에 올려주고, 무대에 놓인 작은 피아노 두 대에 준우누나 그리고 준우와 내가 함께 앉았다. 귀여운 준우의 “준비됐다~!” 라고 크게 외치는 사인에 연주가 시작되었다. 무대라는 곳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 처음 서보는 준우는 의젓했지만 누나와의 하모니를
완벽히 맞추지는 못했다. 나는 “괜찮아~ 괜찮아~”를 속삭였고,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준우는 마무리를 멋지게 하고 내려왔다. 쉬운 만화 주제곡 이였지만 준우는 진정으로 그 노래를 통해 즐거워했고, 새로운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울리던 준우와 누나의 하모니는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하모니보다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하모니는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준우가 한 건반 한 건반을 치려고 노력했던 경험, 그리고 무대에 처음으로 서며 느꼈을 그 새로운 경험을 통해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이 와도 이겨낼 작은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준우보다도 더 큰 도전과 큰 가르침을 받았다. 포기하지 않고, 그 무대에 끝까지 섰던 모습, 힘든 연습에 늘 웃어주던 준우, 그리고 내게 마지막으로 꽃을 주며 “감사합니다~” 라고 외치던 모습은 오히려 내가 과연 이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그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가진 능력을 나누자라는 작은 생각 뿐이였는데 그 달란트는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더욱 커져 또 다른 곳에 기쁨이 되고 아름다운 시간의 열매로 맺혀졌다. 그리고 내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꼭 물질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만이 큰 나눔이 아니였다. 곧 나가게 될 사회에서도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것을 통해 내가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직접 깨달았고, 준우가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