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학 재학시절, 영화과 연출전공으로 졸업 학년이 되었습니다. 학과특성 상 부족한 장비와 훌륭한 작품성을 위해 교수님들께서는 연출 기회를 선별하셨기에 저는 심혈을 기울여 마지막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에 하던 중 평소처럼 통장정리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받았던 장학금에 얽혔던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구청장학생에 선정되었다며 수여식 참석을 알려주셨습니다.
평소 존재감 없는 조용한 학생이었기에 내심 들뜬 마음을 안고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모인 아이들은 평범한 집안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장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접하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더불어 공부라도 잘했으면 어머니께 당당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기에 한없이 죄송하고 제 자신이 미웠습니다.
결국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 보니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는지 담담하게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다른 아이에게 전해주라며 담임선생님께 장학금을 돌려드렸습니다.
이러한 저의 일화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오히려 사회의 벽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많은 스텝들과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제작하여 연말 졸업영화제에서 상영하였습니다.
어두운 영화관 속 ‘장학금’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시작된 제 졸업영화는 간간히 웃음을 선사했지만 마지막부분 아들을 다독여주는 어머니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묵직함을 느꼈습니다. 상영 후, 어머니와 형이 눈물을 흘리며 말없이 저를 꽉 안아주셨고 가족의 뜨거운 사랑이 모두에게 전해져 정말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영화 포트폴리오를 계기로 대학원에 진학해 바쁘게 살아가던 중 모 방송국의 단편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방송을 통해 유명한 영화감독님과 대표님 외 MC들과 함께 토크하며 제 영화를 상영해 보다 많은 관객을 접했습니다. 이로써 정말 영화를 찍어 그 가치가 발휘된 것 같아 큰 뿌듯함을 느꼈고 더불어 50만원의 저작권료 첫 수입이 생겨 행복했습니다.
통장을 확인하자 제 영화를 위해 묵묵히 도와준 스텝들과 연기자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그들의 도움으로 가능했음을 잘 알기에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시점이라 학과에 후배들과 외부 스텝 중 군 입대나 개인 일정으로 시간이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민하다가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저작권료를 학과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10년 넘게 제자들을 키웠는데 너 같은 아이는 처음이었다며 이미 마음만이라도 충분히 고맙다며 어머니께 선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과 선후배들과 교수님의 도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었기에 꼭 기부를 하고 싶었고 가족도 동의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교수님께서 저의 뜻을 받아주시고 그 해 졸업영화제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오랜만에 후배들의 단편영화를 보며 많은 자극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폐회선언 시간, 교수님께서 제 사연을 소개하시며 단상으로 부르셨습니다. 큰돈도 아니고 은혜를 보답한 행동이었기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후배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누군가 그들 중에도 저와 같은 사람이 또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떨리는 가슴을 누르고 일어났습니다. 마이크가 제게 넘어왔고 잠시 눈앞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 속에서 졸업영화를 도와줬던 후배들과 스텝들이 보이자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며 고마운 마음이 저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하고 불확실 한 것은 불확실 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함께 가자는 말을 후배들에게 남기고 내려왔습니다.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거렸지만 흐뭇해하시는 교수님과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후배들의 모습에 오히려 제가 더 큰 감동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학과 후배 중 좋은 작품을 제작한 학생이 선정되어 제 기부금으로 장학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록 저의 부족한 재능과 장학금을 받았던 소소한 경험에서 시작되었으나 제 졸업영화 이야기는 가족, 선후배, 교수님 등 많은 분들의 도움과 사랑을 통해 진정한 장학금으로 마무리 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제 작은 마음과 행동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큰 울림이 될 수 있다는 보편적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를 깊이 자각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가진 재능, 생각, 재산을 나눠 모두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깨달은 ‘장학금’의 참된 가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