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신입사원 연수 때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별로 공연, 목욕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했는데 제가 있었던 조는 1일 카페를 열기로 했습니다. 저는 대학 다니면서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바리스타 공부도 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분들께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드리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서 쓰던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가져오고 종이컵과 커피시럽같은 재료들은 회사에서 나온 지원금으로 청계천 방산시장에서 구매했습니다.
카페라떼, 카라멜마끼아또 같은 커피들을 한 잔씩 만들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에게 대접해드리고, 옆에서는 와플을 구워서 드리니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쓰던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이 과열되었을 때에는 줄서서 기다리시는 풍경까지 벌어졌습니다. ‘커피 마시면 잠 안와서 싫어’하시면서도 커피 잔을 받고는 행복한 웃음을 지으셨지요. 이틀간 오히려 저희가 사랑을 받고 돌아왔지요.
다시 회사로 돌아와 신입사원으로 정신없는데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습니다. 전화를 받아보니 봉사활동을 갔었던 요양원의 복지사분이었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시간이 나면 한 번 더 와줄 수 없냐는 전화였습니다. 갓 뽑아낸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행복해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회사 일에 적응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었기에 조만간 한 번 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4월쯤 되어 어느 정도 회사 일에 적응이 되어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빚처럼 남아있던 요양원을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혼자서 커피를 만들려니 힘들었지만 커피잔을 받아들고 행복해하는 분들을 보면서 힘이 났지요. 그때 할머니 한 분께서 커피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분쇄된 커피를 포드에 담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해내서 데운 우유에 섞어서 라떼 만드는 것을 알려드리니 금세 따라하셨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만들어서 제게 건네시는 할머니는 참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복지사분과 저녁식사를 하는데 그 할머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치매 초기증상이 있는 분인데 자녀들이 요양원으로 보내서 마음의 상처까지 생겨 우울증이 오셨던 분이라고 했습니다. 복지사분들이 아무리 신경을 써도 말도 안하시고 우울해 하시던 분이었는데, 커피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신 것이라고요. 1월에 처음 봉사활동을 갔다 온 뒤부터 계속 그 커피 만드는 청년들은 왜 안 오냐고 하실 정도였답니다. 그 분 말고도 몇몇 분이 커피 만드는 거 배워보고 싶어 하신다고 했습니다.
고민 끝에 주말에 와서 커피 만드는 것을 제가 가르쳐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초보이지만 에스프레소를 뽑아서 커피를 만들고 라떼 아트 정도는 가르쳐드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가져갔던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은 아예 기증하고 돌아왔습니다.
토요일마다 커피시럽이나 커피 원두를 싣고 차를 몰아 요양원으로 내려갔습니다. 보잘 것 없는 실력이지만 그런 저를 ‘커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커피 배우기에 열을 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엔 세 분이 배우기 시작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여덟 분까지 숫자가 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제가 기증했던 에스프레소 머신이 상태가 나빠졌던 것입니다. 가정용을 너무 무리하게 사용했기 때문이었지요.
그렇다고 제가 비싼 커피 머신을 사서 기증할 수도 없는지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이 이야기를 회사선배에게 이야기했더니 한번 윗분들에게 이야기해보자고 했습니다. 다행히 회사에서 요양원에 꽤 괜찮은 중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또 커피수입사와 연결되서 커피 원두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말에 한 번씩 하는 수업이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정말 열심히 커피 만들기를 배우셨지요. 워낙 열심히 하시는지라 초보의 실력이지만 제가 아는 한에서는 저도 열심히 가르쳐드렸습니다.
작년 가을부터는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뵙는데, 제가 가면 저의 커피 제자인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커피를 만들어주십니다. 여덟잔이나 되는 커피를 먹고 오면 그날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하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와서 참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