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넘게 재가복지 사업을 담당하면서 어르신들의 입장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식사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복지관에서 진행되는 급식 사업은 어르신의 경제적인 상황과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급식을 제공하게 되는데, 사실 급식 서비스를 요청하시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몸이 불편한 것 보다, 혼자서 해먹으려다보니 입맛도 없고,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게 되면 상해서 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르신이 식사 하실 때, 그 자리에 누군가 함께 한다면 입맛도 살아날 텐데, 부족한 부분을 조금만 거들어 드리면 서비스를 받는 객체가 아니라, 어르신 삶의 주체로써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으로 어르신 댁에서 식사공동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식사공동체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서비스 인 듯, 아닌 듯 ‘우리네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도록 돕자’였습니다.
요란하게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복지관에서 식사를 준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평소 어르신과 관계있는 분들을 어르신 댁으로 초대하여 이웃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될 수 있도록 돕고자 했습니다.
처음 어르신에게 식사공동체를 제안했을 때, 뭣 하러 번잡스럽게 일을 만드냐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집이 좁아서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민망하다 하셨지만, 함께 식사하기로 약속한 날 어르신은 3시간 전에 이미 밥을 안쳐 놓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에게 식사공동체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르신에게 복지서비스로 대신해 주려고만 했지, “어르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르신께서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어르신과 묻고 상의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늘이 구멍 난 것처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 어르신과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저녁에는 비가 그쳐 어르신과 통장님, 이웃 어른이 오셔서 함께 식사 준비도 하고 음식도 나누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못한다, 안 하겠다.” 하셨던 어르신께서 직접 된장찌개에 된장을 풀고 간을 맞추셨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계란을 풀어 계란말이를 만들어서 식탁에 올려주셨습다.
어르신께서 된장을 한 숟갈 크게 뜨고 휘~ 저으시고는 맛을 보시며, “좀 더 넣어야겠제?” 하시며 간을 맞추시고는 할머니께서 한 마디 하셨습니다. “냄새 좋다! 오늘 밥 맛 나겠다!” 한참을 준비하다 할머니께서 네발로 기어 창고같은 옆 방으로 들어가셔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십니다. “할머니~ 뭐 찾으세요?” 하고 제가 여쭈었습니다. “숟가락하고 접시 꺼낼라고!” 할머니께서 꺼내신 수저와 접시에는 녹이 잔뜩 슬어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요. 얼마나 오랜만에 꺼내신 걸까요? “할머니, 얼마 만에 꺼내신 거예요?” 할머니께 여쭈었습니다. “한 10년은 넘었지!” 녹슨 숟가락과 접시를 깨끗이 씻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위에 김, 계란말이, 된장찌개, 맛깔 나는 반찬들이 올려 졌고, 할머니께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사람 사는 것 같네!” 할머니의 그 한마디가 오랫동안 제 귀에 맴 돌았습니다. 할머니 말씀처럼 사람 사는 모습 자체였습니다.
식사공동체를 통해 어르신 주변의 관계가 살아났습니다. 복지관에서 지원한 도시락이 아니라, 어르신이 준비한 밥상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인사하는 제게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또 밥 먹으러 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