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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사! 주는것이 아니라 받는것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212 | 강명훈님] 봉사! 주는것이 아니라 받는것
아동센터를 운영한지 5년째 되는 해 유난히 또래에 비해 큰 체격인 영민이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로 할머니와 센터에 찾아왔다. 조손가정이라 아이의 학습을 잘 부탁한다는 할머니의 바램이었다. 정상가정의 아이들도 있지만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다수인 본 센터에 방과 후 학습을 책임지고 있는 원장으로서 다짐이 희미해지는 시기였다. 수업을 마친 일부 저학년 아이들을 태우고 귀가시킨 후 조수석 글러브 박스에 선생님 급여를 입금시키려 한 금액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오간데 없는 금액은 의심가는 한 아이를 상기시켰다. 영민이었다. 평소 다른 아이들과 싸움을 자주 일으키고, 차로 귀가 시켜주려 했지만 먼저 중간에 센터를 혼자 나가 버리는 아이였다. 한번은 할머니가 찾아와 영민이가 집으로 오지 않았다고 해서 온 동네를 뒤진 일도 있었다. 어이없게도 혼자 냇가에서 밤까지 놀고 있었던 아이였다. 다른 아동들의 간식도 뺏어 먹고, 센터의 집기도 부수기도 하는 아이였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었다. 똑같이 다음 달 급여도 같은 식으로 차량 글러브 박스에 넣어놓고 관찰을 하였지만 결국 돈은 그대로 있었다. 본인도 그해 아동센터를 이제 그만 운영하고 싶던 시기였다. 해맑은 아이들이 좋아서 지역에 봉사하고픈 생각에 시작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턱없이 작은 운영비와 과중한 업무로 인해 초심이 엷어지고 있던 때였다.
그렇게 시간이 괴롭게 흐르던 중 갑자기 영민이가 센터 앞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는 아이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승용차에 부딪쳐서 넘어졌던 것이다. 순간 그 아이를 진작 내 보냈어야 하는 생각이 먼저 스쳐지나갈 뿐 아이에 대한 응급조치는 그 뒤였다. 다행히 아이는 작은 찰과상을 입었고, 병원에서 며칠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이 있었다.
가해자인 승용차 운전사는 도로가에서 영민이가 다른 여자 아이를 밀치고 혼자 차에 부딪혔다고 이야기 했다. 하마터면 여자 아이까지 다칠 뻔 했다고 했다. 같이 있었던 초등학교 3학년인 해정이에게 영문을 물었더니 해정이가 가지고 있던 공기놀이가 도로에 떨어져 영민이와 같이 줍고 있었는데 순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해정이는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다. 많이 놀란 눈치였고 해정이 부모님도 영민이에게 무척 미안하고 감사하다고만 하고 있었다. 영민이 할머니는 벤치에서 그저 한숨만 돌릴 뿐 아무런 말없이 혼자 울고 계시었다. 원장인 본인으로서 부모가 없으니 아이을 잘 보살펴 달라고 했던 부탁을 지키지 못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튿날 영민이를 보러 병원에 갔는데, 낮선 중년의 한 남자가 와서 영민이를 찾고 있었다.6인실 병실에 갑자기 영민이를 알아보고 아이를 꼭 껴안았다. 아무 말 없이 그 중년에게로 몸을 맡긴 영민이는 영롱한 눈망울과 영락없이 귀엽고 가느린 손을 가진 아이었다. 새까맣게 탔던 얼굴과 달리 아이는 무언의 갈증과 외로움의 표출 없이 단지 엷은 미소만 띄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더니 그 중년의 남성은 밖으로 조용히 걸어 나갔다.
뒤따라간 본인은 영민이의 수업을 담당하는 방과 후 교사라고 소개를 하자 그는 말없이 손수건으로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영민이의 아버지라고 대답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궁금증에 그는 영민이가 갓난아기 시절 사업실패로 빛 독촉에 시달려 영민이 어머님은 집을 나가 재혼을 하였고, 그런 어머니를 영민이에게는 돌아가신 걸로 이야기 했다고 했다. 그리고 영민이와 할머니에게는 아무에게도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시켰다고 했다. 물론 그는 홀로 먼 곳에 숨어 지내며 영민이를 보기 위해 일년에 한번 정도 보러 온다고 했다.
한번은 영민이에게 해 준 것이 없어 강가에 데려가 멱도 감아주고, 다슬기도 잡아 준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하며, 괴로움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순간 어느 날 집에 가지 않고 혼자 강가에서 밤까지 혼자 놀고 있었던 영민이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운 아버지를 그곳에서 혼자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집까지 태워 주기도 전에 혼자 먼저 집으로 가버리는 행동도 혹시나 집에 오신 아버지의 흔적을 감추기 위한 아들이 아빠를 향한 작은
배려이기도 하였다. 내가 저렇게 어린 나이에 같은 일을 겪는다면 영민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외로움과 고통을 견뎌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영민이 아버지는 개인회생절차라도 가져서 아이와 어머님을 모시겠다는 의지를 품으시고 잠시만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런 그분에게 친구를 대신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훌륭한 아들을 둔 것에 부럽다고 인사를 대신했다. 그저 밉게만 바라보고 영민이를 싫어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지역의 불우한 환경에 처한 아동들에게 봉사하고자 했던 약한 초심에 영민이는 알 수 없는 기운을 불어주는 듯하였다. 영민이는 이후 많은 안정을 찾았는지 곧이 말을 잘 듣고 수업도 잘 따라왔다.
그런 기쁨도 잠시 영민이는 아버지를 따라 전학을 감으로서 이별을 해야 했다. 언젠가 엄마도 꼭 만나기를 맘속으로 기원을 하면서 그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운전석 의자에 낮선 봉투가 고이 놓아져 있었다. ‘원장님 용서해 주세요. 엄마 생일 선물 사 드리려꼬 했는데 나뿐 아이가 대기 실어서요 무서워요 용서해 주세요’ 삐뚤한 글씨와 받침이 다 틀린 내용과 함께 얼마 전 사라졌던 그 돈이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모른 척 나는 그 아이를 용서해 주었다. 몇 달간 돈을 보관하면서 두려움과 죄책감으로 반성문 아닌 반성문까지 내민 순수한 아이지 않는가! 그런데 전 학간 영민이를 의심했던 나는 그 아이의 가슴에 사고가 난 뒤 응급처치 대신 내쫒아야 될 생각까지 두 번이나 알게 모르게 못을 박았다.
멀쩡히 살아계신 부모님을 보지 못하는 애달픔에 그렇게 몸부림쳤던 아이의 마음도 모른 체, 동료를 위한 정의감을 몸소 실천하는 아이인지도 모른 체, 아이들의 내면도 모른 체, 그저 원장이라는 명분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짓는 본인의 나쁜 습성과 마음의 눈을 뜨게 해준 영민이와 아이들에게 감사했다. 내가 해 준 것보다 맑은 영혼으로 재탄생의 기회를 부여해준 거짓 없는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가슴 한켠 막힌 혈을 뚫어준 아이들의 꾸밈없는 순수함과 기쁨에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하늘을 쳐다봤다. 초저녁 작은 별들은 우리 아이들처럼 그렇게 밝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