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맨발이 형아가 또 없어졌어요. 저쪽 쉼터랑 놀이터랑 다 찾아 봤는데 없어요!”
또 녀석이다.
선생님들과 복지관을 다 뒤져 보아도 아이가 없다.
오늘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꽁꽁 얼어 버린 날씨에 감기 걸리는 것은 아닌지. 뻔히 또 맨발로 나섰을 테니 어딘가에 채여 또 상처라도 날까 싶어 외투도 채 입지 못하고 복지관 주변을 뒤졌다.
“순구야! 순구야!”
복지관 주변 슈퍼나 문방구 앞 오락기기 앞에 있던 아이가 오늘은 어디에도 없다.
나도 몰래 눈물이 흘러 내려 눈물을 훔쳐가며 뛰어 다니다 보니 어느덧 복지관 주변의 지하철 역. 다행스레 지하철 역무실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고, 그 날 나는 결국 순구의 엉덩이를 두들겨 때리고 말았다.
“어딜 가면 어딜 간다고 말을 해야지? 이렇게 추운데 신발도 안 신고 다니면 어떻게! 제발 순구야! 선생님 순구 때문에 너무 힘들어!”
멀뚱멀뚱 나를 쳐다볼 뿐 순구는 그제도 말이 없다.
누군가를 돕는 사회복지사의 꿈을 접을 수가 없어 아이 둘을 낳고서야 늦은 공부를 시작하였었다. 아이 키우고 공부하느라 누구보다 어렵게 사회복지사가 되었고,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된 곳은 장애인 아이들을 돌보는 한 시설이었다.
아이를 워낙 좋아했고 사회복지사로써의 자긍심도 강해 열심히 일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버거워짐을 느꼈다. 열둘이나 되는 그것도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잠시만 한 눈을 팔면 사라지는 순구 때문이었다.
열세 살.
자폐증을 앓고 있던 순구는 복지관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였다.
맨발로 매일 사라지기를 반복했으니 순구는 이름보다 맨발이란 별명으로 더 통하는 아이였다.
한 달 동안에만 무려 다섯 번.
순구는 맨발로 사라졌고, 나는 울며 불며 아이를 쫓았다.
복지관 옆 창고에서 근처 문방구에서 슈퍼에서 아이를 찾았을 때는 그래도 넘어갈 수 있었지만 순식간에 지하철역까지 달려 간 아이를 또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무엇보다 맨발로 뛰어 다니는 통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순구의 발을 떠올리면 아이를 다치게 한 것이 나인 것만 같아 큰 뜻을 품고 시작한 사회복지사 일을 관두고 싶은 지경까지 이르렀다.
“우리 순구는요. 달리기를 제일 잘하고 좋아해요. 그래서 선생님께 관심 받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유독 신발 신는 것을 답답해하기도 하구요. 선생님이 죄송해 하실 필요는 없어요. 순구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께 까지 제가 더 죄송하지요.”
홀로 순구를 키우시는 어머님과 면담을 가졌던 날.당신이 순구를 돌보고 싶지만 일을 해야 하는 형편이라 순구를 잘 보살피지 못했다 시며 어머님은 순구가 복지관에서 번번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도 죄송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순구가 맨발로 다녀 다치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프다는 이야기에 나도 어머님과 함께 울고야 말았다.
그날부터 맨발이 순구와 나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도망가려는 자와 붙잡으려는 자의, 신발을 신지 않으려는 순구와 어떻게든 신발을 신기려던 나와의 다툼은 쉽사리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신발을 신기려면 도망 가 있고, 어느 순간 또 사라져 또 가슴을 졸이게 만들던 맨발이.
나는 운동시간이면 아이들과 선생님 앞에서 순구가 달릴 수 있게 하는 시간을 꼭 만들어 주었으며 순구가 맨발로 어딘가를 다녀왔던 날이나 사라졌던 날에는 다친 발을 치료해 주고 세숫대야에 따스한 물을 받아 순구의 발을 꼭 씻겨 주었다.
“순구야! 순구는 우리 복지관에서 달리기를 제일 잘하는 친구야. 근데 이렇게 맨발로 돌아다니면 발이 다쳐서 다음부터는 달리기를 잘 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앞으로 꼭 신발은 신고 다녔으면 좋겠어. 선생님은 순구가 발을 다칠까봐 너무 걱정 되거든.”
말이 없던 순구는 내가 발을 씻겨 줄 때는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고는 했다.
그리고 조금씩 순구는 사라지는 일이 줄어 갔고, 또 신발도 잘 챙겨 신기 시작했다.
엄마가 사 주셨다는 새 운동화를 신고 운동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빠르게 달리던 순구의 얼굴에는 땀이, 그리고 그보다 더 투명한 미소가 배어 있다.
그렇게 달라지는 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길고도 짧았던 2년여의 시간을 복지관에서 보냈다. 시어머님의 병환으로 어쩔 수 없이 복지관을 관두어야만 했던 날. 아이들과 하나하나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순구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안 그러던 녀석이 또 어딘가로 뛰쳐나갔나 싶어 복지관을 뒤지는데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사무실 앞에 녀석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 이제 내일부터 안 온다고 들었어요. 선생님! 선생님도 신발 꼭 신고 다치지 마세요.”
순구가 내민 것은 운동화였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도 꾹 참고 순구가 선물해 준 빨간 운동화를 신었다. 너무 작아 발이 아팠지만 새 운동화를 신고 나는 순구의 손을 잡고 힘차게 운동장을 뛰었다.
아무 말도 없이 우리는 한참을 달렸다.
그것은 맨발이 순구와 나만의 작별의식이었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이다.
너무도 작았던 새빨간 운동화는 여전히 우리 집 신발장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다. 사회복지사로 10년을 넘게 일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고 또 이별했다. 그들과 함께 하며 나는 항상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관계가 아닌 그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친구임을 말이다.
때로는 거칠고 삭막한 이 세상에서 고통과 상처를 거쳐나가야만 하는 인생에서 우리는 서로의 신발이 되어 주고 있다. 함께 하는 마음은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고, 작은 배려는 서로의 상처를 다독여 준다는 것을 나는 열세 살 맨발이에게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너의 너는 나의 신발이었음을 아마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