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지방에 사는 평범한 50대 주부입니다.
2013년 봄, 갱년기가 찾아온 그 시기에 저는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처럼 많은 고민에 빠진 시기였습니다. 둘째 아이가 대학 졸업 후 첫째 딸처럼 회사 생활을 위해 타지로 떠나고 난 후, 저는 무슨 이유인지 토끼 같은 제 두 딸들을 건강히 키워 놓고도 알 수 없는 허무함에 빠지곤 했습니다.
여느 주부들이 그렇듯 아침에 일어나 설거지, 빨래,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을 하다가 어느 날은 그 삶이 지겹고 허무하다는 생각에 남편도, 딸들도 출근하고 없는 집에서 혼자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고민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청주에 있는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집에서 이렇게 허무한 나날을 보내는 것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할 일은 간단했습니다. 아침 여덟시 반까지 복지관으로 향하여 국과 몇 가지의 반찬을 준비해서 독거 노인분들에게 급식으로 배급해드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복지관에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는데 연령대도 20대에서 70대까지 아주 다양했습니다. 저도 50대가 되어서 시작한 일을 어린 20대의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모인 것을 보니 너무 기특했습니다.
좋은 목적으로 모였다는 공통점은 나이 상관없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었고 음식을 만드는 시간만큼은 누구하나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징어 국을 준비하면서 오징어를 손질하는 도중에 가위에 손을 베기도 했고 같이 일하던 동료는 뜨거운 국을 운반하면서 손을 데이기도 했지만 서로 돕고 배려하며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음식 준비가 끝나면 12시부터 복지관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급식 배급이 시작되었고 맛있게 드셔주시고 감사 인사 해주시는 노인 분들을 보며 저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보람 있는 기분 덕에 한번 해보자 했던 일이 매주 목요일이 되면 복지관으로 제 발걸음을 향하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할머니께서 다가오셨습니다.
평소에는 낡은 유모차에 의지하여 복지관에 들어오셔서는 조용히 식사만 하고 가시는 할머니여서 항상 마음이 쓰였던 차라 조심스럽게 여쭤보았습니다.
“할머니 더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할머니께서는 수줍은 소녀처럼 다가오셔서는 저에게 검은 봉지 하나를 건네셨습니다.
“맨날 공짜로 밥 주고 나 챙겨주는데 너무 고마워서...”
할머니께서 주신 검은 봉지 안에는 요쿠르트와 여러 종류의 사탕이 들어있었습니다.
제 돈 들여서 식사를 챙겨드렸던 것도 아니었고 저는 단지 일주일에 한 번 네 시간 남짓 음식을 준비해서 나눠드리기만 했을 뿐인데 그 간식을 아끼셨다가 저에게 주시려고 챙겨두셨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50대로 접어든 후, 갱년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기분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고, 제 삶의 이유이기도 했던 두 자식도 어느덧 다 컸다고 제 갈길 찾아 떠난 집에서 허무함에 빠져있던 제 자신을 위해 남을 돕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도리어 제가 도움을 받고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제가 좋아하는 사탕만 들어있어요.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제 말에 할머니는 너무 기뻐하셨고 매주 목요일이면 항상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오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매주 목요일 봉사활동을 하는 날이면 그 할머니가 어디 계신지 찾아보았고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저에게 오셔서 다른 분들께 제 칭찬을 하곤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걷는 것도 불편해보이고 말씀 없이 식사만 하시던 할머니는 복지관에 딸이 생겼다고 좋아하시며 나중에는 제 이름까지 기억해주셨고, 다른 노인 분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단지 음식을 만들고 나눠드리는 일만 했는데 할머니께서는 항상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고.. 딸이 되어줘서 고맙고.. 손 잡아줘서 고맙다고.. 항상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매주 목요일 봉사활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일찍 잠들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제 삶은 더 활력을 찾았습니다. 몸은 지쳐 있는데 제 마음은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지요.
제 딸들도 이 소중한 경험을 하길 바랐습니다. 남을 돕는 일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매주 목요일 할머니가 아껴뒀다가 챙겨오셨을 소중한 사탕을 집으로 가져와 딸들에게 주며 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두 딸들은 제 경험담을 듣고 웃고 울기도 하며 응원해 주었고 저를 존경스럽게 바라봐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봉사활동은 저에게 정말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쿠르트와 사탕, 그리고 목요일마다 제 엄마가 되어주시는 할머님, 그리고 남을 도우면서 찾은 제 행복감과 자존감까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제 딸들도 언젠가 스스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음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