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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영씨 집 감나무에 희망이 주렁주렁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506 | 이은정님] 지영씨 집 감나무에 희망이 주렁주렁
[사례관리사와 인연이 되다] 주민센터에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저희 동네에 장애아를 둔 엄마가 있는데 그 집 청소를 좀 해줄 수 있나요?”그 집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듯 도와줘야 한다며 이웃주민은 위치를 알려줍니다. 골목길을 지나 한참을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철대문이 잠금쇠가 철사로 동여메어져 있는 집이었습니다. “김지영씨 계세요?”한참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시간은 오후 세시가 다 되어가는데 그냥 돌아가고 다음날 다시 와야하나 싶을 때 부스스한 차림새에 방금 잠에서 깬 듯 보이는 아주 젊은 여자가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민센터 사례관리사 이은정이라고 합니다. 가정에 장애아동이 있는 것 같아서 가정방문 왔어요. 혹시 도와 드릴 일이 없을까 해서 왔거든요. 제가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지영씨는 부스스한 헝클어진 긴 머리에 주근깨가 많고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기없는 얼굴표정과 왜 갑자기 찾아왔는지도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지영씨가 참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손톱을 만지작만지작 아래쪽만 시선을 두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거실에는 시커먼 연탄난로가 놓아져 있었습니다. “지영씨 난로가 참 따뜻하네요. 방은 연탄보일러 인가요?” “아니예요. 기름보일러인데 기름값이 비싸니까 기름 안 뗀지 오래됐어요.
그리고 고장도 나서 오랫동안 사용 안했어요.” 가만히 거실을 둘러보니 애완견이 한 마리 있었고, 애완견의 분비물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이곳저곳 정리되지 않고 제멋대로 놓여진 옷가지와 뭔지도 모를 쌓여있는 짐들, 언제 도배를 했을까 싶은 누런 벽지와 장애아이의 흔적으로 벽에 낙서와 그림들, 주방 쪽 개수대에 수북이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들은 지영씨의 무기력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서른 여섯의 버거운 나날들] “지영씨 아이가 몇이지요?”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며 말문을 열지 못합니다. 뭔가 사연이 있겠구나 싶어서 지영씨의 손을 아무 말없이 잡아 주었습니다. 처음 본 저를 향해 이제껏 그 조용하던 지영씨는 조근조근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알콜중독인 아버지는 평소에는 말수도 적으셨고 1남 3녀 중 셋째인 지영씨를 많이 예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술을 먹으면 엄마를 늘 때렸고,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엔 큰언니가 방문을 잠그고 둘째언니는 엄마의 옷을 챙겨 엄마를 창문으로 탈출시키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생활력이 없었던 알콜 중독의 아버지, 할머니의 신내림을 물려받은 어머니. 부모님의 사이는 좋지 않아 일찍부터 같이 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생계는 어려웠고 일찍 시집간 언니들을 대신해 지영씨가 막내인 남동생을 공부시켰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시켜주는 산업체고등학교를 갔는데 월급이 너무 적어서 도저히 생활이 안되었기 때문에 그곳을 그만두고 고등학교도 졸업을 못했다고 합니다. 고달픈 삶에서 기대고 싶은 마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연애를 해서 21살 때 결혼을 합니다. 남편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친척집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양육이 된 사람이었고, 지영씨는 그게 너무 안돼 보였다고 합니다. 기대고 싶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으나 보호와 챙김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을 만난 겁니다. 남편과 사이에서 두 아들을 낳았고 작은 아이는 세 살 무렵 발달장애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는 평택의 변두리에 살 때 작은아이의 언어치료를 40분 받겠다고 세 번의 버스를 타고 복지관을 다녔다고 합니다. 40분의 치료를 받고 오면 아침에 나가 저녁이 되었지만 아이의 치료를 포기할 수 없었답니다.
남편과 결혼생활 15년동안 직장을 15번 이상 옮겼고, 생활력도 없는 사람이라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영씨는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남편의 끊임없는 음주사고로 인한 벌금과 차량 수리비,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살고 있는 집마저 경매로 넘어갈 처지에 놓여 있던 겁니다. 식당일을 하며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았고, 더 이상 남편과 살수 없어 지영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대전으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생활비 한번 주지 않았던 남편,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는 남편, 술을 마시고 큰아들 머리를 연탄집게로 때리기도하고 큰아들을 사정없이 때렸던 남편에 대한 지영씨의 원망은 깊고도 깊게 곪아 있었습니다. 대전에 와서도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에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을 했고, 작은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녁 6시쯤 큰아들이 동생을 어린이집에서 데려다가 챙기곤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였더니 대문 앞에서 발달장애아인 작은아들이 발을 밖으로 한번 내었다가 다시 안으로 들여놓고 다시 밖으로 발을 내놨다가 들여 놓고를 반복을 하고 있었답니다. 몇 시간째 그 행동을 반복하였던 겁니다. 큰아이를 찾아 동생을 돌보지 않았다고 혼내주려고 하는데 큰아들이 “엄마, 나도 집에 오면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고, 명우랑 놀기 싫고 내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요.”하면서 막 울더랍니다.
6학년인 명석이도 명우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고, 지영씨가 명석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들을 부둥켜 앉고 울고 또 울었다고 합니다. 그 일이 있은 후 7살인 명우는 장애인 시설로 보냈다고 합니다. 종일 명우를 케어 할 수 없었고 특수교육이 필요했지만 지영씨가 돈을 벌어야만 먹고 살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가정이기 때문에 식당일을 해가며 명우의 시설 입소비를 매달 내었고, 남편이 쓴 카드값, 보증을 선 은행대출 빚 등은 지영씨를 더 버겁게만 했던 겁니다.
[감나무집 가꾸기] 지영씨 가정에 대한 내부사례회의를 한후 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을 하게 됩니다. 또한 부부문제와 빚더미에 경매로 넘어가려고 하는 상황의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주거문제, 지영씨의 심리적 우울감, 자녀들의 양육문제, 지영씨의 심리적 우울감 해소와 안정된 취업문제, 살고 있는 집의 내부와 외부환경개선 등 어떤 순서로 어떠한 개입을 해야 할지 권역 통합사례회의에 상정을 하여 슈퍼비전을 받았습니다.
우선 지영씨가 이제껏 어렵고 힘든 삶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억눌린 감정을 토해낼 수 있는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집과 주민센터에 가까운 곳으로 발달장애인 부모심리지원서비스를 신청해서 상담받기를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지영씨의 내성적이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성향은 상담이 필요하다고 본인이 느끼고 있었지만 선뜻 상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늘 본인의 결정은 중요한 것이라며 방문을 다니면서 지속적으로 지지를 해주었습니다. 남편과 이혼을 원했고 그러한 문제도 지영씨 자신이 결정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주민센터에도 지영씨 가정을 위해 한 주식회사의 사랑의 집 고치미사업에 지영씨네를 추천해주었습니다. 도배와 장판교체를 해주셨고, 사춘기에 들어선 명석이의 방을 정성들여 꾸며주었습니다. 깨진 유리 현관문을 교체해고 주방에 고장난 수도꼭지, 낡은 콘센트와 전기 배선도 안전하게 수리를 해주었습니다.
가장 기쁜 일은 난방을 연탄보일러로 교체를 해주면서 연탄가스에 취해 늘 어지러웠던 거실의 연탄난로를 치우게 된 것입니다. 우리동 복지만두레 회원님들은 지영씨네 마당의 감나무에 쓰레기를 너무 많이 쌓여놓아 말끔히 치워주시고 감나무의 가지치기도 도와주었습니다. 인근에 사는 지영씨네 통장님께 이 가정을 신경써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잊지 않으시고 지인의 집에서 받으신 쌀도 갖다 주시고 통장협의회를 통해 연탄도 지원을 해주셨고 머리가 하얗게 세신 통장님께서는 “선생님이 한 가정을 살린거예요.” 라면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셨습니다. [감나무에 꽃이 피다] 그후 놀랍게도 지영씨는 상담을 받겠다고 집에 두고 왔던 신청서를 작성을 해왔습니다. 지영씨의 심리 진단이 실시가 되었고 그에 따른 심리상담을 매주 1회 6개월간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그동안 가정을 등한시 하고 타지에서 지내면서 지영씨의 연락도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아들의 방을 꾸며주고 집을 확 바뀌게 해준 것에 대해 몹시 놀라며 집을 방문하게 됩니다. 깔끔한 집안 정리를 보고 남편은 무엇을 느꼈는지 우선 경매로 넘어 갈 위기의 집의 해결을 위해 은행을 찾아 갑니다. 그동안 해준 것이 없는 큰아들의 방에 책상도 사주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주민센터에서도 도움을 주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며.... 다행히 남편은 타 지역 기숙사에 있으면서 공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지영씨와의 문제가 서먹하여 한번씩 와서는 명석이하고만 나가서 식사를 하는 정도였습니다. 명우가 오더라도 명우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를 모르는 남편이었습니다.
[주렁주렁 감이 열리다] 어느 날 지영씨가 작은 화분 3개를 들고 반갑게 주민센터에 방문을 합니다. 사례관리 팀장님과 사례관리담당자, 사례관리사의 자리에 하나씩 놓아 주었습니다. “마당의 화단에 꽂을 심으려고 모종을 사다가 예뻐서 하나씩 사왔어요” 하면서 화분을 수줍게 건내줍니다. 쓰레기 더미로 방치되어있었던 감나무 주위의 화단에 꽂을 심는다니 정말 기쁜 일이었습니다. 지영씨의 상담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이었습니다. 얼굴은 핏기 없이 어둡던 지영씨는 예쁘게 화장도 하고 부스스한 긴 머리는 깔끔하게 틀어 올렸습니다. 지영씨가 밝고 환한 얼굴로 변한 것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서비스 점검 차 지영씨의 상담을 맡았던 아동발달연구소를 방문 했을 때 담당자는 “지영씨에게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얼굴이 아주 확 바뀌었어요.”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영씨의 변화를 모두들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이혼의 위기에서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해 지면서 이직이 잦았던 남편은 직장을 꾸준히 다니게 되었고, 빚도 조금씩 나눠서 갚게 되었습니다. 주말에 오면 네 식구 모두 모여 보문산 등산도 함께 가기도 합니다. [감 따던 날] 지영씨네의 감나무는 환영받지 못했던 나무였습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벽을 넘어 감나무가 골목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었지만 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방치를 해두었습니다. 가을에 감 나뭇잎이 떨어져 있어도 골목한번 쓸지 않아 골목이 지저분해지기 일쑤였고, 떨어진 감들은 치우지 않아 너무 지저분해서 이웃주민들의 항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지영씨네는 주렁주렁 윤이 나는 감들을 많이 땄습니다. 딴 감들은 주위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답니다. “할머니 저 없을 때 우리 명석이 좀 한번씩 들여다 봐주세요” 하면서.
그리고 지영씨에게 사례관리 종결을 위해 마지막 방문을 했을 때 일용직으로 다녔던 택배회사에 정직원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례관리사님 남편이 이제 저축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영씨가 이 행복이 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러워 하는 것처럼 이제는 이 가정이 스스로 일어서기를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