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뿐 아니라 각 기업, 공공기관에서도 여러 유인책을 앞세워 자원봉사를 장려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약간의 인사가점을 내걸고 봉사활동을 권장하고 있어, 동료직원이 십 수년째 다니고 있다는 노인전문요양병원으로 몇 년 전부터 자원봉사를 다니게 됐다.
처음에는 텃밭에 상추, 호박, 고추 등 야채를 심고 키우고 수확하는 봉사를 시작했고, 굵은 땀방울이 토양에 뚝뚝 떨어지는 육체노동일을 주로 했다.
몇 달이 지난 후 밭에 일감이 적어져 노인분들 말상대와 거동을 도와드리는 일을 하게 되었고, 고령의 어르신들이기에 치매와 중병으로 거동은 커녕 식사도 혼자 하실 수 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삶의 끝이 임박한 노인들의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과 쇠약한 육체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있을까 싶었다.
나와 함께 봉사를 다니는 동료들은 3명이었는데, 그 중 청원경찰인 조반장님은 어르신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였다.
광대 복장에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번지없는 주막’ 등 옛노래를 구성지게 불러대면, 힘없이 처진 어르신들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곤 했다.
또 다른 동료인 방호원 정주무관은 특별한 재주는 없었지만, 진심어린 마음으로 어르신들의 말벗을 해드렸다. “부천사는 막내딸이 오늘 나 보러 오기로 했어“ 라는 말을 매일 같이 반복하는 치매 할머니의 말을 진지하고 정성스런 마음과 자세로 경청하는 정주무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두 직장동료의 스스럼없고 헌신적인 봉양에 비해 난 조심스럽고 약간은 꺼리는 마음으로 어르신들의 식사나 침대 정리 등을 도울 뿐이었다.
가을볕이 싱그러운 어느 토요일.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요양병원을 찾았다.
아직 봉사실적을 제출할 학년은 아니지만, 봉사활동의 맛보기라도 보여 줄 요량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어르신들의 점식식사 채비를 도와드리고 있는데, 평균 80세 이상의 편찮은 노인들이 아이도 부담스럽고 어려운 모양인지 쭈뼛거리며 문 앞에 서 있기만 했다.
와서 어르신들 손이라도 잡아드리라고 눈치를 줬지만, 아이는 시선을 외면한 채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때 문 옆 침상에 상반신을 일으키고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아가...밥 먹었니?” 부천 산다는 막내딸 자랑을 하던 치매걸린 할머니였다.
“네?...아...네” 형식적인 대답을 마친 아들은 제 손가락만 만지작 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 순간만큼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맑고 인자함이 가득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할머니는 자기 손주가 생각나셨는지 내 아들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네며, 형형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래도 내 아이는 여전히 요양원 환경과 할머니가 낯설고 불편한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반나절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아이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가 물었다.
“아빠, 아까 그 할머니는 식구가 없어? 왜 혼자 병원에 있어?” 아이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던 할머니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거기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가족은 있지만, 많이 편찮으셔서 전문적인 요양병원에서 간호를 받으시는거야” 큰 고민없이 아이에게 답을 주었다.
물끄러미 차창 밖을 보던 아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아빠도 나중에 많이 아프면, 그런데서 살아야겠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내 삶과는 전혀 무관하게 여겼던 요양병원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들의 삶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투영되는 순간이었다.
“왜? 윤성이 너는 나중에 아빠 나이 들어서 아프면 요양병원에 보낼려구?” 약간 다급해진 마음으로 물음을 던졌다.
“아니..난 내가 아빠 돌봐줄거야. 아까 그 할머니, 좀 외로워 보였어..그 할머니도 가족이 있으실텐데...” 코흘리개 어린애로만 여겼던 아들이 아빠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노인의 외로움을 걱정하다니...아들이 대견했고, 반면 어른인 나는 공연히 부끄러워졌다.
“그래..우리 윤성이가 아빠보다 낫네. 아빠가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관리 잘해서 아프지 않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서울에 계신 할머니 한테도 자주 찾아 뵙고 인사드리자, 살아계실때 잘해 드리는게 정말 효도하는 일이니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더니..
흐뭇하고 착잡한 마음을 동시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몇 주후 아이와 함께 다시 요양원을 찾았을 때, 할머니의 침대엔 다른 어르신이 자리를 잡고 계셨다.
“여기 계시던 치매걸린 할머니, 다른 방으로 옮기셨나요?” 바닥청소를 하고 있던 부원장 선생님에게 물었다.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는 분들 중 적지 않은 수의 노인분들이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 안치된다는 말도 덧 붙였다.
나와 부원장님이 주고 받는 대화를 듣고 있던 아들은 표정에 변화없이 자기 발끝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두 팔로 감싸안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내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무거웠다. 잠시 후 아이는 나와 부원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가족들이 아무도 안왔단 말예요?”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해 줄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 부조리를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 줄 방법을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때, 부원장 선생님이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우리 윤성이가 할머니랑 몇 번 말도 나누고 그러더니, 정이 들었겠구나.” 부원장은 아예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와 자신의 눈높이를 수평으로 맞췄다.
“할머니는 많이 아프시지 않고, 편안하게 주무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단다. 윤성이가 너무 속상해 하지 않아도 돼” 부원장님의 말을 아이는 뜻밖에도 지체 없이 받았다.
“할머니 혼자 외롭게 지내셨는데, 돌아가실 때도 가족이 아무도 안 오다니..정말 너무한 거 같아요” 격앙된 표정으로 말을 하고는 아랫입술을 쑥 내밀었다. 잠시 아이를 바라보던 부원장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말을 이었다.
“할머니는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으셔. 하늘나라에서도 가족들을 내려다 보시면서, 한없는 사랑을 별빛처럼 내려보내 주실거야. 할머니들은 원래 그런 분들이시란다.” 부원장님의 말을 이해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에 한번 정도 요양원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대하는 아이의 태도가 차츰 달라졌다. 제법 적극적으로 노인분들에게 먼저 다가가 필요하신 일이 없냐고 묻기도 하고, 마른 가죽같은 거친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 주기도 했다. 아이의 속마음이 궁금해 살짝 물어 보았다.
“윤성아.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렵거나 불편하지 않니?” 잠시 뜸을 들이던 아이는 “이 분들도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셔서 우리를 내려다 보실거잖아.
그러니까 우리를 잘 찾으실 수 있게 더 잘해드려야지” 라고 말하고는 쑥스럽게 웃었다.
아이에게 교육이 되라는 마음에 요양원을 데리고 다녔는데,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기분이었다.
이 곳 요양원은 하늘의 별로 돌아가 후세들에게 사랑의 빛을 내려 줄 노인분들이 마지막 생애를 갈무리하는 곳인가 보다. 사람이 별이 되기 전, 잠시 머무르는 집. 그 곳에서 아이와 나는 사람이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