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감정과 마주합니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즐거움, 편안함과 걱정, 충만함과 상실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삶은 우리에게 늘 밝은 미소만 건네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커다란 아픔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한국장기기증원의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저는 모든 이들이 상상하기조차 두려워하는 아픔을 시시각각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마무시한 상처를 가슴 깊은 곳에 남기는 고통입니다. 그 영원할 것만 같은 두려움의 시간 속에서 자신보다 소중한 이의 신체일부를 타인의 생명을 위해 기증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 수많은 번민과 고민 끝에 내렸던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조심스럽지만, 저 역시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침대에서 일어나 밝게 웃을 것 같은 ‘내 사람’을 차디찬 수술장으로 보내는 그 깨어질 것 같은 마음을….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누군가의 어머니였던, 누군가의 형제이자 누군가의 남편이었던 그분들은 한 줌의 재가 되기 전 다른 이의 생명을 위해 생애 마지막 나눔을 실천하셨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서 그 혼돈의 순간, 하나뿐인 아들의 장기기증에 동의했던 한 어머니에 대한 사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며칠째 두통을 호소하던 준혁씨는 증세가 악화되어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정밀검사를 해봐야한다는 병원의 조심스러운 진단에 그래도 하루 이틀 뒤면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가족들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준혁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불명상태에 빠졌고, 뇌사로 추정되어 저희 기관으로 통보되었습니다.
아들이 뇌사로 의심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들이 눈을 뜰 수도, 말 한마디조차 할 수 없는 상태로 호흡기를 꽂은 채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목격한 어머니는 분명 끝없는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뇌사상태의 환자에게 원래의 모습대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뇌기능의 영구적이고 비가역적인 손상. 그것이 바로 뇌사의 무서움입니다.
예로부터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상실의 고통이 모든 이들에게 똑같을 수 없다는 상대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죽음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맞이해야 하는 불가피한 슬픔이자 통과의례라면, 키워온 자식의 죽음은 오랜 세월동안 애지중지 아껴온 애정의 대상을 한 순간에 떼어버려야 하는 고통의 직면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뇌사가 추정되는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 의료진들로부터 장기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깊은 눈빛으로 아들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의식 없이 누워있는 아들. 몇 번을 불러도 미동조차하지 않는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어머니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이한 중대한 고민 끝에 어렵게 결심을 내렸습니다.
평소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에 앞장서고, 독실하게 교회를 다니며 신앙심을 키워온 아들 역시 장기기증을 원했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던 어머니의 작은 어깨는 슬픔으로 가늘게 떨렸습니다.
준혁 씨는 그렇게 어머니의 귀중한 선택을 통해 생애 마지막 순간, 7명의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하고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토록 함께하기를 원했던 가족들을 이 세상에 남겨둔 채로.
준혁씨의 장례식 이후 방문상담을 통해 어머님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가 준비한 추모앨범으로 제작된 아들의 사진을 보던 어머니는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습니다.
조그마한 아기 때부터 부쩍 자란 성인의 모습까지, 어머니는 자식의 모든 순간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사진 하나하나에 빼곡하게 적혀있던 날짜와 장소에서 아들과의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어머니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여전히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 혹시 장기기증이 어머니의 마음에 상처가 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는 제 말에,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의 선택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아마 결정하지 못해서 시기를 놓쳤다면, 그게 더 한이 되었을 거 에요. 나 뿐 만 아니라 그 아이에게도. 준혁이도 분명 그것을 원했을 테니까요. 나는 알아요. 내 아들이니까.”
어머니는 기증받은 분들은 모두 건강하신지 물어보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원칙 상 기증자와 수혜자 모두에게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릴 수는 없기에 모두 잘 수술 받으셨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삶을 이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깃들기를 바란다며 몇 번이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알고 계실까요? 자신의 선택이 한 몸 같았던 소중한 가족의 죽음이라는 절망의 끝을, 위태로운 삶을 움켜쥐기 위해 힘들게 애쓰고 있던 누군가의 생명이라는 희망의 시작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준혁 씨가 선물한 ‘삶의 한 부분’은 희망의 씨앗이 되어 뿌리 깊은 생명의 나무로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실현되고 있는 ‘착한 기적’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다른 누군가는 삶을 영위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어려운 선택을 감내한 가족들이 있었기에, 수많은 환자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선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추모식을 통해 다시 만난 어머니는 부쩍 밝아진 모습이었습니다.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한다며 씩씩하게 근황에 대해 말씀하시는 모습에 저 역시 반가웠고, 한 편으로는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액자사진 앞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헌화할 때의 어머니는 여전히 준혁씨를 잃었을 때의 슬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무치는 슬픔을 가슴으로 묻은 어머니는 여전히 자식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기증 이후 행정처리를 안내하기 위해 찾아갈 때마다, 함께했던 일상이 담긴 가족 앨범을 전할 때, 슬픔이 다가올 때 읽었으면 하는 책을 건네 드릴 때에도, 약소한 도움에도 감사하다고 말해주시는 어머니에게 오히려 더 많은 위로를 받은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도 스스로 다짐합니다. 여전히 그분 뒤에 남겨진 슬픔의 그림자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그분이 눈물로 심은 생명의 나무를 지킬 수 있는, 그런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