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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 먹먹한 만원짜리 한장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510 | 이인숙님] 가슴 먹먹한 만원짜리 한장
할머니와 나의 인연은 2004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하고 있던 나에게 파릇파릇 돋아나는 따사로운 봄햇살이 가득한 어느날~ 할머니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오셨다. 밖이 환히 보이는 넓은 창밖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던 나에게 커다란 뻥튀기 봉투를 짊어진 남루한 할머니는 성큼성큼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시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저 뻥튀기를 사달라고 하시면 어떻게 거절할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던 나에게 할머니께서는 ‘이거 저 불쌍한 아그들 한테 주소’라고 하시면서 가버리시는게 아닌가~ 나는 뭔가 망치로 한 대 맞은것 같은 충격을 받았었다. 그 이후로도 할머니께서는 요구르트며 뻥튀기를 사가지고 한달에 한번씩 우리 시설을 방문하시게 되었다. 한번은 제가 ‘할머니!! 왜 요구르트와 뻥튀기를 사가지고 오셔요?’라는 나의 질문에 아파트 청소일을 하시는 할머니는 우리 시설에 들리시는 날이 월급날이라고 하신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하시기에 요구르트와 커다란 뻥튀기는 시설 아이들에게 적은 돈으로 많은 양을 먹이고픈 할머니 마음이었던 것이다. 할머니와 나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나는 할머니를 내 친할머니처럼, 할머니는 나를 친손녀처럼 대하게 되었고, 할머니의 가정사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많은 재산은 아니지만 노후를 위해 적지 않은 돈도 가지고 계셨고, 집도 한 채 소유하고 계셨다. 노후자금은 조카분에게 사기를 당하셔서 할아버지께서는 그 충격으로 뇌출혈로 쓰러져 계시고 생계를 책임지실 분이 할머니밖에 안계셔서 아파트 청소를 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가지고 있던 집마져도 아드님이 도박으로 날리고, 할머니는 더 이상 우리 시설이 있는 동네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더 후미진 곳으로 이사를 가시게 되었다.
아파트 청소를 하시면서 헌옷을 주워다 깨끗하게 세탁해서 아이들 입히라고 가져다 주시던 할머니는 그게 맘에 걸렸던지 ‘조카딸이 돈을 주면 여기 시설 아이들 새 옷을 한 벌씩 사입히고 싶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었다. 나는 할머니의 정을 알기에 이사가신 후에도 자주 찾아뵙게 되었다. 할아버지 장기요양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단을 받고 의뢰해 드리고, 동사무소에 들러서 수급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알아봐 드리고, 지인분들을 통해서 조금씩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드리고, 한달에 한두번 먹거리를 사들고 가서 얼굴 보여드리는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일들이었다.
내가 할머니 집을 처음 방문할때가 우리 딸이 여섯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딸은 내가 할머니를 찾아뵐 때 항상 함께 하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입학하고 부터는 딸을 데리고 가면 할머니께서는 장판 밑에서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한 장을 용돈이라며 건네주신다. 나는 받으면 안된다고 딸아이에게 눈짓을 하면 딸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냅다 차있는 곳으로 뛰어가면 할머니께서는 맨발로 차 있는 곳까지 오셔서 그 누릿한 만원짜리를 차안으로 밀어 넣으신다.
만원을 뿌리치는 나와 만원을 창문으로 밀어 넣으려는 할머니의 실랑이를 보면서 딸아이는 말한다. ‘엄마! 할머니와 엄마는 참 이상해. 항상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딸아이는 할머니가 주시는 만원은 소중한 돈이라며 ‘다음에 할머니 찾아뵐 때 맛있는 거 사다 드려야 겠어요’라며 이쁜 말을 건넨다. 할머니가 건네는 만원 짜리 한 장은 오랫동안 장판 밑에 있어서 눅눅하고 쾌쾌한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나는 그 쾌쾌한 냄새가 전혀 싫지 않다. 오랫동안 함께 한 할머니의 정이 스며든 만 원짜리 한 장~ 한동안 소식이 뜸하면 연락이 오신다. 전화를 거시고 ’과장~ 바쁜가?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라고 하시면서 툭 전화를 끊으신다.
이후 영 마음이 편치 않아 시간을 내서 찾아뵈면 할머니께서는 내 손을 붙들고 한참을 이야기 하신다. 내가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가버릴까 싶어서 이신지 꼭 잡은 손을 내내 놓지 않고 이야기를 하신다. 할머니는 예전부터 좋은 일을 많이 하셨던 분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나 본인이 가진게 없을 때나 한결 같이 길거리의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그동안 좋은 일을 해서 하나님이 과장을 나한테 보내준 것 같다’며 허허 웃으신다. 할머니의 웃음 뒤에는 많은 삶에 고뇌들이 묻어 있는 것이리라~ 나는 아주 작은 것을 나누지만 할머니는 항상 나에게 더 큰 것들을 가져다 주신다. 내가 교회를 다니는 걸 아시고서 ‘내가 과장을 봐서라도 교회에 다녀야 하는데, 나는 부처님을 배신할 수 가 없어’라며 우리 가족을 위해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하신단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도 못하는 가족에 대한 기도를 할머님께서 대신 해주고 계셔서 우리 가족이 행복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딸도 할머니 댁에 방문하면서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더 느끼게 되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은 용돈과 할머니께서 건네는 ‘장판 밑의 만원’을 모아서 할머니 댁에 다시 방문할 때 본인이 좋아하는 물건 대신 할머니가 좋아하는 연시며 말랑말랑한 과자를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작은 나눔이 헛되지 않음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왠지 할머니의 장판밑의 쾌쾌한 냄새가 묻어 있는 만원짜리가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