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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상 최고의 선물
  • [자원봉사자활동수기 | 201510 | 조영탁님] 이 세상 최고의 선물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면서 중, 고등학교 때 해오던 복지관 봉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이 정말 많이 섭섭했다. 고향에 있는 손주와 많이 닮았다며 손주 이름으로 나를 부르시던 진주 할아버지도 뵐 수 없게 되었고, 목욕을 시켜드리면 간지럽다며 웃음을 참지 못하시던 윤배 할아버지도 이제 더는 뵙지 못한다는 것이 나를 많이 허전하게 만들었다. 길에서 우연히 할아버지들과 마주치기라도 할 때면, 나는 복지관 할아버지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복지관으로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들의 안부를 여쭈었다. 할아버지들이 건강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나는 서울에서 또 다른 할아버지 한 분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은 학교 입구에서 구두를 수선하시는 할아버지셨는데, 그 분과의 인연은 내 구두를 수선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날 내가 할아버지께 신발을 고치고 수선비를 드렸을 때, 할아버지는 옆에 있던 공책을 꺼내 도무지 알 수 없는 기호로 메모를 하셨다. 그 기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건, 내가 할아버지의 단골손님이 되고 난 뒤였다. “음, 이거? 이게 뭔가 하면...나만 아는 내 글자...어뗘? 잘 썼지?” 웃어 보이시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스치고 지났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면서 손해도 참 많이 봤다며 마음 아픈 속내를 털어놓으셨다. 손톱이 다 닳도록 종일 일을 하고도 거스름돈을 잘못 줘서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며 할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셨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할아버지는 공책에 메모를 시작하신 것 같았다. “에휴, 다시 태어나면 다음 세상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엔 꼭 다닐 거구먼...” 할아버지의 한숨이 그렇게 깊을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공부하실 수 있어요.” 나는 선배들이 운영하는 야학에 대해 설명해 드렸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흔드셨다. 야학에 왔다 갔다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그럴 시간에 구두 한 켤레라도 더 고쳐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날 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이 자꾸만 귓전을 맴돌았다. “다음 세상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엔 꼭 다닐 거구먼...” 그리고 할아버지의 공책에 쓰인 그 이상한 문자들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한동안 뒤척이던 나는 한참만에야 답을 찾았다. ‘그래, 내가 할아버지께 직접 가서 글자를 가르쳐 드리는 거야!’ 다음 날 나는 할아버지께 내 생각을 말씀드렸고, 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그게 정말이냐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그 때부터 앉기도 비좁은 할아버지의 구두 수선가게는 우리들의 학교가 되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낱말카드를 만들었고, 공책에는 점선으로 글자를 써넣었다. 점선만 연결하면 글자가 되도록 쉽게 교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숙제는 하루에 두 장씩 내드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숙제를 해오곤 하셨다. “선상님, 어뗘요? 잘 썼지요?”
아무리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할아버지는 손주 같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불러야 학교에 다니는 것 같다면서... 할아버지는 정말이지 열심히 글자공부를 하셨다. 때로는 눈이 토끼 눈처럼 빨갛게 되기도 할 만큼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할아버지께 공부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며칠 전에 가르쳐드린 글자도 또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공부를 하다가도 수선 손님이 오면 공부를 중단해야 했으니, 할아버지는 늘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 힘이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오면 나는 얼른 책을 접고 밖에 나가서 기다려야만 했다. 장소가 비좁아서 앉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그래도 괜찮으련만 하필이면 겨울이라 나는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어려워하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 하던 공부 시간을 더 늘려보기로 했다.
“선상님도 공부혀야 하는디, 나 땜시...미안해서 어쪄요?” 할아버지는 자꾸만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니라고, 구두 할아버지가 계셔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말씀드렸더니 할아버지가 웃으셨다. 삐뚤빼뚤 할아버지의 글씨는 그 모양새가 이상했지만, 나는 숙제검사를 할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힘껏 치켜들며 할아버지를 응원해 드렸다. “와, 이대로 나가면 할아버지가 저보다 글씨 더 잘 쓰시겠는데요?” 나의 너스레에 할아버지는 고개까지 뒤로 젖혀가며 크게 웃곤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그동안 받아두고 읽지 못했던 편지 보따리를 내 앞에 꺼내놓으셨다. 군에 간 손주가 보낸 편지라고 했다. “우리 손주 놈은 먼저 간 내 아들 대신이구먼...얼매나 착한지 몰러. 내가 까막눈이라 못 읽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할애비 걱정할까봐 꼬박꼬박 안부 편지 보내는 거 좀 보소.” 할아버지의 깊게 패인 주름위로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편지들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편지에는 손주의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편지를 읽는 동안 할아버지도 울고 나도 울었다. 할아버지는 손주 생각에 울고, 나는 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뵙고 싶어서 그렇게 울었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할아버지가 손주의 편지를 직접 읽어보시고 답장을 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할아버지의 글씨는 점점 그 모양새를 갖추어 가기 시작했고, 드디어 점선 없이도 쉬운 글씨는 쓸 수 있게 되었다.
“선상님, 선상님! 이거 좀 봐 줄라요?” 할아버지는 수줍어하며 편지 한 통을 내미셨다.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쓰신 편지라고 했다. 손주의 안부를 묻는 할아버지의 서툴지만 따뜻한 편지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상님, 틀린 글자는 좀 고쳐주쇼. 우리 손주 놈이 못 알아보면 안 되니께...” “아니에요, 아주 잘 쓰셨어요. 이대로 보내셔도 되겠는 걸요...” 나는 할아버지의 편지를 고쳐드리지 않았다. 나처럼 할아버지의 손주도 분명 할아버지의 그 따뜻한 마음까지 다 알아볼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뒤 구둣가게 우리 학교에는 학생이 한 명 더 늘었다. 할아버지를 부러워하던 친구 한 분이 더 오셨기 때문이다. “선생님, 더도 말고 나는 혼자 버스만 탈 수 있게 해줘요...” 그 분은 멀리 시집 가 있는 딸네 집에 남의 도움 없이도 혼자 찾아 가는 게 꿈이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세상엔 거창하지 않아도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바빠졌다. 이미 구두 할아버지는 편지도 곧잘 쓸 수 있는 실력이 되셨으니, 실력이 다른 두 학생에게 공부를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의자 세 개를 놓기 위해서는 추운 날씨에도 가게 문을 열어둘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리 춥고 바빠도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할아버지의 공책에 이상한 기호 대신 바른 글씨가 쓰이는 것이 행복했고, 손주의 편지를 소리 내어 읽으시는 할아버지를 뵙는 일이 또 행복했다. 할아버지와 나의 학교 공부는 내가 군에 입대하기 위해 휴학을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입대하기 며칠 전, 할아버지는 내 앞에 선물 하나를 내미셨다.
할아버지께서 손수 만드신 구두 한 켤레였다. 비록 구둣가게에서 파는 것처럼 멋지고 세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가죽을 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애쓰셨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할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구두를 받아들고 나는 눈시울을 붉혔다. “고맙기는... 그 말은 내가 혀야지요. 선상님, 정말로 고맙구먼요...”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구두 한 켤레는,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지고 귀한 이 세상 최고의 선물로 내 가슴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