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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인들이 보내준 휴가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511 | 김의곤님] 노숙인들이 보내준 휴가
저는 국가금융위기로 힘들었던 지난 1999년부터 지금까지 대전에서 작은 노숙인 자활시설(쉼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2002년에 경험했던 일입니다. 당시 실무자가 저 혼자였기 때문에 쉼터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24시간 노숙인들과 함께하면서 거의 매일 술에 취한 노숙인들과 부딪쳤습니다. 욕을 듣고, 멱살을 잡히고, 수도 없이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칼을 들이대며 죽이겠다고 위협을 받은 적도 수차례였습니다. 개인적인 시간은 물론 사생활조차 없었던 저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견디기 힘들었고 저는 점점 예민해져갔습니다. 매일 그만두고 싶었고, 노숙인들이 죽도록 미웠습니다. 더 힘들었던 것은 2001년 겨울 지역주민들의 민원으로 몇 년 동안 무료로 사용하던 복지관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빠듯한 운영비 외에 이사를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민원이 거세지자 복지관에서는 어쩔 수 없이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2001년 겨울은 너무나 추웠습니다. 그리고 겨울이었기 때문에 다른 쉼터도 자리가 꽉 차 있어 전원조차 어려웠습니다. 쉼터가 폐쇄되면 노숙인들을 그대로 거리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 나이 많은 노숙인들과 몸이 아프신 분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은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저는 복지관 관장님과 주민들께 무릎을 꿇고 어디로든 옮길 곳을 찾을 테니 폐쇄는 하지 말아달라고 빌었고 한 달의 시간을 허락받았습니다. 돈 없이 갈 수 있던 곳을 찾던 중 쪽방 골목에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쪽방 건물을 발견했고, 집주인을 설득해 보증금 없이 월 10만원을 주기로 하고 건물을 임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오랫동안 비워져 있던 탓에 온갖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고, 문짝 하나도 제대로 달려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갈 수 있는 곳은 그 곳밖에 없었습니다. 아저씨들과 함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동네 주민들이 내다 버린 쓰레기를 트럭 여섯 대가 넘게 치워야 했고, 상품가치가 없는 벽지나 장판, 페인트를 싼값에 구입하거나 얻으러 다녀야 했습니다. 노숙인들과 함께 리어카를 끌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버려진 가구를 주으러 다녔습니다. 깨진 창문에는 테이프와 비닐을 붙이고, 막힌 하수도를 뚫기 위해 며칠이나 냄새나는 하수구를 파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가 넘어가고 저희는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를 넘기고 나서는 더 힘든 보릿고개를 견뎌야 했습니다. 당시 노숙인 사업 예산은 보통 분기의 둘째 달을 넘겨야 나오곤 했습니다. 특히 1/4분기 예산은 3월이 되어서야 나오곤 했습니다. 보조금이 늦게 나오니 어쩔 수 없이 제가 가진 돈으로 운영비로 쓰고, 보조금이 나오면 한꺼번에 찾는 형식으로 예산을 집행해야 했습니다. 특히 그 해는 3월 중순을 넘겨서야 보조금이 지급되었고, 이사를 하면서 제가 모아둔 돈을 거의 다 사용해 남은 돈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남은 돈으로는 노숙인들과 설을 지낼 준비를 하면서 다 써야했습니다. 노숙인 시설을 운영하면서 저희 명절은 늘 아침 일찍 노숙인들과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함께 먹고 고향에 갔다가 늦은 막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해에는 고향에 다녀올 차비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왜 고향에 안가느냐’는 노숙인들의 질문에 ‘부모님이 자꾸 결혼하라고 채근하셔서 가기 싫다’고 이야기 하고 나서 제 방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쉼터에서 함께 지내시던 노숙인 한분이 방으로 찾아와 흰 봉투 하나를 건네셨습니다. ‘이게 뭐냐’는 질문에 ‘선생님 저희도 다 알아요.. 저희가 조금씩.. 그냥 고향 다녀오시라고..’ 하시며 말을 얼버무리셨습니다. 봉투를 열어보고는 저는 멍하니 벽에 기대고 앉아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봉투 안에는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열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단 한 번도 돈이 없다고도, 보조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저와 함께 생활하던 노숙인 분들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와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그 때의 그 작은 사건이 저에게 늘 힘을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늘 제 마음을 다잡아주고, 겸손함과 감사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