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스떼! 필름 헤르너 아우누스!(영화보러 오세요!) 아침부터 네팔의 작은 마을 다딩은 한국 봉사단원들의 홍보로 시끌벅적하다.
시네마천국이 드디어 우리마을에 온 것이다. 메가박스와 코이카가 협약하여 네팔 곳곳에 장비를 싣고 가 주민들에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사업이다. 눈높이에 설산의 장관이 펼쳐지고 발밑엔 하얀 구름이 깔리는 히말라야 산자락, 이곳에 세상에서 가장 높은 영화관이 만들어 진다.
스크린 뒤로 펼쳐진 히말라야 설경을 극장삼고 드넓은 들판을 의자삼아 그렇게 마을주민들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다.
네팔 다딩에 봉사 2년을 위해 파견되어 지내고 있는 5명의 봉사단원들은 평소에 문화생활을 접하기 힘든 가난한 마을사람들을 위해 이런 멋진 기회를 선물하고 싶어 시네마천국이 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요청해 왔고 드디어 우리가 사는 다딩 지역이 확정된 것이다.
상영할 영화는 한국영화 ‘맨발의 꿈’. 네팔어로 더빙하여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부담없이 와서 한국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와 동거동락하는 다딩마을 사람들과 자연을 벗 삼은 히말라야 상영관에서 빛나는 설산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나의 조국 한국의 영화를 함께 볼 생각을 하니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였다.
홍보를 위해 홍보지, 포스터, 현수막을 만들어 상영 전 주부터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 작열하는 태양 아래 땀을 주룩주룩 흘리면서도 주민 한사람도 놓치고 싶지 않아 마을의 현지인 친구들을 총동원하여 신문, 라디오문구도 함께 써서 홍보를 했다. 나중에는 마을에서 길을 지나가면 현지인들에게 ‘너 한국인이지? 신문 읽었어. 영화 보러갈게!’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이렇게 열심을 알아주는 마을사람들이 있어서인지 홍보로 시커멓게 타 시골 아낙네가 다 되어버린 내모습도 그리 못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영화 상영과 더불어 한국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어 한국문화 부스운영까지 계획했다. 한국과 한국 봉사관련 사진전시 및 설명, 한국전통악기 체험, 포토존, 에코백 선물 등..
단원들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행사 준비에 하루하루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를 정도였지만 준비를 하면서 현지인 친구들과도 더욱 돈독해지고 단원들 간에도 협력하며 모두들 힘든 내색없이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드디어 행사 당일.
네팔인들이 좋아하는 형형색색 천막을 넓은 운동장에 치고 부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국 전통악기들을 연주하며 꺄르르 꺄르르 좋아하는 아이들, 에코백을 들고 꺼띠 라므로!(어쩜 이렇게 좋아!) 하며 기뻐하는 여성들. 전시된 사진들을 지그시 바라보고 계시는 지긋한 연세의 마을 어르신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기는 행사였다.
어두컴컴해지고 히말라야 저편으로 해가 져 노을이 빨갛게 물들어 갈 때 쯤 네팔인들도 모두 아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 400명이 넘게 모인 주민들. 팝콘 대신 나눠준 네팔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스켓과 음료를 먹으며 흥에 겨워 들썩거리고 모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영화를 기다렸다. 영화가 시작도 펼쳐진 멋진 광경에 벌써부터 감동이 밀려왔다.
영화 맨발의 꿈이 시작되었고 가난한 동티모르 시골 출신의 아이들이 한국인 축구코치와 함께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박수로 응원하는 순수한 네팔인들. 마치 본인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영화에 푹 스며들어 주인공들이 골을 넣을 때 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그들과 함께 박수치며 기뻐했다. 어둠속에서도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는 그들을 보며 이들을 평생 응원하리라 마음으로 다짐하기도 했다.
첩첩산중 이동거리로 인해 영화를 못 봤던 사람들도, 돈이 없어 못 봤던 사람들도 그렇게 그 영화를 마음껏 즐기는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가슴 먹먹하기도 했다. 내가 한국에서 살 때에는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영화를 보고 언제든 맛있는 음식을 먹었었다. 하지만 늘 만족하지 못했고 내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랐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영화한편으로 행복에 매료되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영화가 마친 뒤 나오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에는 미소가 만발하고 있었다. 만족도 조사를 위해 하얀 종이에 꽃 그림을 넣어 잉크로 지장을 찍도록 했다. 모두가 떠나간 뒤 하얀 종이 위에는 네팔인들의 미소만큼이나 만개한 꽃이 종이 위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준비하고 네팔 봉사 7개월 차에 땀 흘리며 준비했던 시네마 파라디소. 이보다 더욱 값진 영화의 빛이 히말라야의 산자락을 밝히고 있었다.
지진으로 아직도 아픔을 겪는 네팔인들이지만 그들에게 희망은 있고 내일은 있다. 내가 보았던 네팔인들의 긍정적인 힘과 에너지가 큰 힘을 발휘할 것을 믿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