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수빈이를 만난 날을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체구의 아이였습니다. 깡마른 몸매에 창백해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수빈이는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기 위해 문의를 하시러 온 엄마 주변을 맴돌면서 한 손으로는 열심히 바지 속의 엉덩이를 긁어대면서 알아듣기 힘든 혼잣말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친절하게 그리고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어머님께 센터의 이용방법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나의 모든 신경은 수빈이에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주의력집중결핍증상이 있지는 않은가? 몸을 긁는 것이 피부병이 있지는 않은가? 또래보다 훨씬 작은 체구가 혹시 먹지 못해서는 아닌가? 등등 온갖 물음표가 머릿속을 동동 떠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서류를 가지고 다시 방문하겠노라며 센터를 나서는 어머님과 수빈이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센터에 다니게 된다면 이 아이를 어찌 대해야 할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아직 센터 이용여부가 결정나지도 않았는데 걱정과 불안이 앞서기만 했습니다. 구청으로부터 이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걱정과 불안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수빈이는 아주 가느다란 음성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알아들을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었습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림장에 써놓은 받아쓰기 급수 숙제를 하기는커녕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눌러 쓰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연필을 바로 잡고 글자를 쓰는 것조차 새롭게 해야 했습니다.
‘수빈아 이야기 할 때 조금 더 천천히 이야기해볼까?’ , ‘선생님하고 눈 맞추고 이야기 해야지.’, ‘울지 말고 하고 싶은 걸 말로 표현해보자.’, ‘연필을 바로 잡아보자.’, ‘왼손으로 공책이 움직이지 않도록 잘 잡고 써볼까?’ 수빈이의 이름을 하루에도 스무번씩은 불렀던 것 같습니다.
19살. 어린 나이에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원치 않은 임신이 되어 어쩔 수 없게 한 결혼. 대학의 캠퍼스를 누벼야 할 나이에 아이를 낳아 양육해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수빈이 어머님입니다. 센터에 오시기만 하시면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 선생님한테라도 하소연을 하겠노라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고 눈믈을 흘리시곤 하십니다.
수빈이가 밉다고 하십니다. 수빈이가 생기는 바람에 공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결혼해서 이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노라며 하소연을 하십니다.
27살 된 젋은 엄마의 손을 잡으며 그래도 수빈이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제껏 키워오셨으니 참 대단하다고, 만약 내가 엄마의 상황이었다면 정말 다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마음으로 지지하고 응원해드리니 고맙다고 또 눈물을 보이십니다.
젊은 엄마라기보다는 어린 엄마란 말이 더 맞을 듯 합니다. 머리를 감기는 것도, 손톱을 깎는 것도 자기가 다 알아서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하는 수빈이 어머님에게 아직 수빈이는 어리다고, 엄마의 손이 많이 가야한다고 말씀은 드리지만 수빈이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위로받길 원하는 어머님이십니다. 자신의 힘듦이 더 먼저 보이는 어머님이십니다. 이런 어머님이 이해가 되어집니다.
학교를 마치고 가장 일찍 오는 수빈이와 오늘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합니다.
머리를 며칠째 감지를 않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참기름을 바른 마냥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카락 위에 살짝이 핀을 꽂아 온 수빈이.
오늘은 아동복지교사 선생님과 센터 화장실에 가서 머리 감는 방법을 배우며 머리를 감아봅니다. ‘수빈아 먼저 머리카락에 물을 묻히는 거야. 구석구석. 손으로 만져가면서’, ‘수빈아 선생님 따라 해봐. 옳지 옳지.’ , ‘수빈아 샴푸를 뒷통수에만 묻히지 말고 이마 위에도 묻혀야지.’
하나 둘 센터에 또래 친구들이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더니 이제 제법 친구들에게도 말을 걸어봅니다. 여전히 가느다란 음성과 빠른 속도의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하나 둘 센터에 또래 친구들이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더니 이제 제법 친구들에게도 말을 걸어봅니다. 여전히 가느다란 음성과 빠른 속도의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나랑 색종이 접을 사람 손들어보세요.’, ‘그럼 나랑 그림그리기 할 사람’.
처음에는 새로 온 수빈이에게 관심을 가지던 아이들도 수빈이의 말투와 수빈이의 옷차림에 차츰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완전히 왕따를 시키지는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난리가 날 선생님들의 반응을 알기에 눈치를 봐가며 표시나지 않게 거리를 둡니다. 그런 친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빈이는 매일같이 함께 놀 사람을 찾고, 매일같이 함께 놀자는 제안을 합니다.
여름방학 동안 매주 금요일은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맘껏 하도록 하였습니다. 오늘은 수영장에 가는 첫 날입니다. 저마다 수영복과 수경을 꺼내어보면서 수영장 갈 생각에 들떠 있습니다. 수빈이 역시 엄마가 챙겨준 수영복과 수모를 꺼내어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자랑을 합니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 되어 수영장에 오가는 동안, 수영장 내 샤워실에서 씻는 동안 함께 할 짝꿍을 정합니다. 수빈이에게는 은수라는 친구를 짝으로 정해주었습니다. 정하는 순간 은수가 얼굴이 찌푸려집니다. 애써 외면하고 다른 친구들의 짝을 정해주고 있는 순간 아이들의 대화가 참으로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은수가 말합니다.
‘나 수빈이랑 짝하기 싫은데, 아 짜증나.’
옆에 듣고 있던 성은 다르고 이름은 같은 수빈이 언니가 말합니다. ‘은수야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수빈이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 수빈이한테 왜그러니?’.
은수가 다시 말합니다. ‘언니. 얘 장애인이야.’
‘장애인’.....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온몸을 때리듯 나에게 왔습니다. 은수를 따라 불렀습니다. 은수에게 물었습니다. ‘은수야, 수빈이가 장애인이니?’.
은수가 잠시 망설이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합니다. ‘아니요. 수빈이는 말도 느리고, 이름도 못 쓰고 그러니까...’. ‘흠... 은수야. 장애인이라는 말의 뜻이 뭘까?’. 한참을 생각하더니 은수가 대답합니다. ‘몸이 아파서 불편한 사람요.’. ‘그렇구나. 그렇다면 수빈이는 몸이 아파서 불편한 사람이니?’ 물었습니다.
은수가 대답 대신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서있기만 합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잠깐 시간을 주고 다시 물었습니다. ‘은수야, 수빈이랑 짝지 하는 것 여전히 싫으니? 바꿔줄까?’. 은수가 대답합니다. ‘수빈이랑 짝지 할께요.’. 은수가 수빈이 옆에 가서 섭니다.
수빈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은수의 손을 잡습니다. 은수 역시 별일 아닌 듯 수빈이 손을 잡습니다. 잘하겠지만 다시 한번 걱정이 되어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은수야 수빈이가 조금 천천히 걸으니 은수도 발걸음 맞추어 걷자. 손 잘 잡아주고...’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던 성만 다르고 이름은 같은 수빈이언니가 은수에게 이야기합니다.
‘은수야. 어떤 꽃은 심으면 하룻밤만 자고 나면 싹이 나고 꽃이 피는데, 또 어떤 꽃은 심어서 물을 주고 햇빛을 쬐고 좋은 화분에 다시 옮겨심고 한참을 기다려야 싹이 나고 꽃이 피기도 해. 꽃이 피기는 피는데 조금 늦게 조금 천천히 피는 거지. 수빈이는 천천히 꽃이 피는 거야. 그러니깐 봄꽃 아니고 겨울꽃.’
그 이후로는 센터의 수빈이는 이제 ‘겨울꽃 수빈이’가 되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체육활동을 할 때에도, 받아쓰기를 할 때에도 겨울꽃 수빈이를 조금씩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생겨납니다. 겨울꽃 수빈이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언니, 오빠들이 늘어납니다. 봄에 센터를 찾아온 수빈이는 겨울이 되어서 꽃을 피웠습니다. 왼쪽 신발과 오른쪽 신발을 바꾸어 신던 수빈이는 이제 신발 찍찍이가 서로 만나지 않도록 가지런히 놓은 후 신발을 바로 신습니다.
항상 ‘ㄴ’이 빠져 어색했던 수빈이의 이름 석자를 이제는 큼직하게 꾸욱꾸욱 눌러서 잘 적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가느다란 음성과 빠른 속도의 목소리로 이야기하지만 이제 센터 사람들이 잘 알아듣고 대화하고 있습니다.
먹기 힘든 야채도 하나씩 알약 먹듯 꿀꺽하며 볼살도 포동포동 붙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자면 한없이 느리기만 하고, 모자라기만 하고, 부족하기만 한 수빈이지만, 센터에서만큼은 겨울꽃이 되어 천천히 꽃피울 준비를 하고 이제 막 꽃을 피웠습니다. 겨울꽃이라 이름 붙여준 아이도, 겨울꽃이라 이해하고 품어주는 아이도, 그런 아이들을 보듬은 센터도 참 따스한 겨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