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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민이의 맛있는 칭찬!
  • [자원봉사자활동수기 | 201512 ㅣ 조명] 상민이의 맛있는 칭찬!
요즘 방송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단연 음식 만드는 방송이다. 복지원에서도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아마 특식 만드는 날이 아닐까 싶다. 전문 요리사는 아니지만 요리학원에서 배운 솜씨로 한 달에 한 번 복지원을 방문해 직접 음식을 만드는 봉사를 시작했다. 음식 재료를 준비하기 전에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앞치마부터 새로 장만했다.
요리하는 사람은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서 더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즐겁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다. 봉사자들과 미리 연락해 메뉴를 정하고, 각자 한 가지씩 음식을 차려내기로 했다. 평소 4인분 이상 음식을 만들어 본적이 없어 걱정이 됐지만 다른 분들이 도와주셔서 시간 안에 내가 맡은 계란말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재료를 넉넉하게 준비했지만 처음이라 망친 것도 많아 어른들도 같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반찬 투정 없이 한 그릇씩 더 달라며 맛있게 먹었다. 얼핏 보니 내가 만든 계란말이도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상민이란 일곱 살 아이는 다른 반찬은 다 먹고 내가 만든 계란말이만 반 이상 남겨두었다. 맛이 없나 싶어 상민이한테 다가가 물었다.
“상민이는 계란말이 안 좋아하니?” “아니요.” “근데 왜 이렇게 많이 남겼어?” “맛이 없어서요.” 다른 아이들은 맛있다며 남기지 않는 계란말이가 맛없다니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 식사가 끝나고 선생님들과 식사를 했다. 나는 상민이가 남긴 계란말이를 꾸역꾸역 먹었다.
한 달이 지나고 이번에는 오징어튀김을 만들기로 했다. 반죽을 만들고 튀기기까지 해야 해서 바쁘게 음식 준비를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먹는 특식이라 아이들은 두 그릇씩 해치우며 배부르게 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상민이는 내가 만들어준 오징어튀김만 반이나 남겼다. “상민이는 벌써 배부른 거야?” “아니요.” “그럼 오징어를 싫어하니?” “아니요. 맛이 없어서요.”
맛있다는 칭찬이 듣고 싶어 시작한 봉사인데, 두 달 연속으로 어린아이한테 맛없다는 소리를 들으니 속상했다. 같이 온 봉사자들은 아이가 장난치는 거라며 위로를 해주었다. 상민이가 나를 미워하나 싶어 걱정도 됐다. 세 번째 달에는 보육원 선생님들한테 물어 일부러 상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돈가스를 준비했다. 먹기 좋게 자른 후 상민이 접시에는 몇 조각 더 얹어주었다. 음식 준비를 일찍 끝내고 팔에 깁스를 한 아이가 있어 식사를 도와주느라 식탁에 같이 앉았다. 상민이가 이번에는 맛있게 먹나 봤더니 포크를 들자마자 내가 만든 돈가스 반을 나눠서 일부러 옆에 두고 나머지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쪽은 손도 대지 않았다. 맛도 보기 전에 조금만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돈가스를 허겁지겁 맛있게 먹고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닌가. 뒷정리를 하고 상민이한테 다가갔다.
“상민이는 뚱뚱하지도 않은데, 다이어트 하니?” “아니요.” “상민이 돈가스 제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네. 제일 좋아해요.” “근데 왜 많이 안 먹고 처음부터 반은 덜어두고 남겼어?” “......” 상민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모가 만든 돈가스가 별로 맛이 없었냐고 물으니 그제서야 아니라고 고백했다. 그러더니 수줍게 얘기했다. “고춧가루나 밥풀이 묻을까 봐요.” “어차피 상민이가 먹을 반찬인데 좀 묻으면 어때서?” “이모 주려고.” 나는 당황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이모는 우리 밥 차려주고 남은 반찬으로 식사하니까요. 이모가 만든 반찬이 제일 맛있는데 친구들이 맛있다고 다 먹어버리면 이모는 못 먹잖아요. 그래서 이모도 드시라고 남겨뒀어요.” 음식 재료는 항상 넉넉히 준비하지만 성장기 아이들이고 특식이다 보니 어른들까지 여유롭게 먹기에는 부족했다. 그걸 알게 된 상민이가 어른들을 위해 배려한 것이었다.
내가 만든 반찬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제일 맛있어서 남겨뒀다는 상민이의 대답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며칠 후 보육원에 양해를 구해 상민이를 집으로 초대했다. 요리학원에서 배운 음식 중 자신 있는 것들로 여러 가지 넉넉하게 만들었다. “우와! 이거 전부 이모가 만든 거예요?” “오늘은 우리 둘만 먹는 만찬이니까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돼.” 하지만 상민이 표정이 밝지 않았다. 혼자 먹으려니 보육원에 있는 친구들과 동생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상민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보육원에는 미리 피자 배달을 시켜뒀다고 얘기했더니 그때서야 안심하는 듯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아이지만 항상 자신의 욕심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걱정하는 상민이가 대견하고 기특했다. 볼 때마다 음식을 남기곤 했던 상민이가 오늘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음식을 먹어치웠다. 잘 먹는 상민이를 보니 더 듬직해 보여 그 모습만 봐도 행복했다.
밥을 다 먹고 같이 설거지를 하며 상민이한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칭찬을 들었다. “사실은 이모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앞으로도 상민이와 다른 친구들을 위해 매달 빠지지 않고 보육원을 꾸준히 찾기로 나 자신과 굳은 약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