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를 처음 만난 날은 2015년 1월 5일 오후였다. 학생들의 독서와 글쓰기 학습을 돕기 위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지역아동센터의 문을 들어섰다.
널찍한 강당에서 학생들이 피구를 하고 있었다. 그 신나는 표정과 환호는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과 기억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나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며 첫인사를 하였고 아이들은 제각각의 형태로 나에 대한 관심을 그들만의 형태로 표명했다.
그 가운데 센터의 한 귀퉁이에서 검정 옷을 입은 덩치 큰 남학생이 몸집이 작은 남학생을 난폭하게 위협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서 전후사정을 듣고 중재하려고 물었다.
그 때 덩치 큰 김○○(초5)이 난폭하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아! 상관 말아요! 뭔 상관이야? 저리 가라고! XX 짜증나!!”거침없이 쌍시옷 욕설을 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반말과 다소 살기 섞인 눈을 본 나는 순간 당황했다.
잠시 후 바로 독서수업이 시작되어 이 사건은 외적으로는 종료되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진행형 상태로 남아있었다.
독서수업은 초등저학년과 고학년 중고등부 3팀으로 나눠 진행되었는데 김○○(초5)은 참석하지 않았다. 김○○(초5)은 센터에서 행하는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지 않았고 식사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외에는 하지 않았다.
나는 독서시간이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다. 아이들은 책읽기를 싫어했지만 내가 특별한 목소리를 가미하여 읽어주는 동화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집중하였다.
글쓰기는 기피했지만 글쓰기의 전단계인 토론은 즐거워했다. 열띤 토론이 진행될 때의 내 마음은 뿌듯하고 벅차다. 아이들의 세미하고 자그마한 변화는 얼마나 큰 기쁨이고 소중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나는 독서지도를 위해 계속 센터에 갔고 김○○(초5)을 주시하고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김○○(초5)은 대부분 혼자 놀거나 동생들을 괴롭히고 방해하는 데 시간을 보내서 내 마음이 아팠고 만날 때마다 설득을 하였다.
어느 날 나는 조용히 김○○(초5)에게 다가가 살며시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네가 독서수업에 오길 매일 기다린단다. 어젯밤에도 잠자기 전에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그 애와 친밀감이 형성되지 못하고 내가 부족하기에 나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꽁꽁 닫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떨 때는 괴로웠다.
그런데 그 날 내 눈을 보던 김○○(초5)의 눈이 약간 떨렸고, 내 시선을 피하면서 자신의 어깨에 얹어있던 내 손을 슬쩍 빼냈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시간에 김○○(초5)은 독서교실에 처음으로 참석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맞이했다.“김○○(초5)아! 반가워 어서와~ 얘들아! 우리 환영의 박수를 쳐 주자!”나는 크게 박수를 쳤지만 아이들은 아무도 박수를 쳐 주지 않았다.
김○○(초5)이 또래 친구들에게 무시와 따돌림을 받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독서수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의 의견이 친구들로부터 무시되고 존중되지 않자 그는“아! 독서 재미없어!”하면서 순식간에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하지만 독서수업에 흥미가 생겨 참석한 것이니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며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김○○(초5)은 나의 관심을 서서히 느꼈는지 내게 다가와 센터에 오는 날이나 좋아하는 음식의 종류를 묻기도 하였다.
나는 그의 물음에 일일이 답해 주었고 독서시간에 너를 기다릴 테니 꼭 오라는 말을 더하였다.
김○○(초5)이 2번째로 참석 한 날은 환경동화를 읽고 환경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토론 후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느껴지는 감정이나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열띤 토론에 나도 흥이 났었다. 이런 열띤 분위기 때문인지 김○○(초5)도 얼떨결에 처음으로 발표하였고, 우리들은 모두 박수를 쳐 주었다. 김○○(초5)이 비록 1월에는 2번의 수업에 동참했지만 두꺼운 벽이 뚫리는 듯했다.
김○○(초5)과 독서수업을 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아빠와 멀리 떨어져 살고 가끔씩 만나며 엄마는 밤에 일을 나가서 대부분 남동생과 잠을 자고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거의 세탁하지 않은 똑같은 옷을 입고 평균 체중을 넘어 비만하고 욕설과 폭력을 섞어 사용하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그는 불량식품들을 센터에 사와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므로 호감을 얻어 보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런 행동으로 환심을 사려는 김○○(초5)이 마음의 상처와 슬픔이 많음을 알게 되었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마음의 치유가 절실함을 느꼈다.
2월 독서수업에 동참과 불참을 반복하던 김○○(초5)이 3월부터는 독서수업에 열심을 내더니 지금은 가장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임하는 사랑스런 학생으로 변화되어 있다. 김○○(초5)이 독서수업에 이렇게 열성을 갖게 된 큰 계기가 있었다.
3월말에 [요술램프에 소원편지]글을 써서 대회에 보내게 되었다. 글을 구상하고 초안 잡기와 수정하고 원고를 완성하는 데까지는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가정환경이 좋지 못한 아이들은 미화하는 글이나 규격화된 통상적인 글을 쓰기에 익숙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진솔한 생각이나 감정을 솔직한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하여 무한반복하며 강조했다.
아이들은 흡수력이 빠르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진솔한 글쓰기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김○○(초5)은 독서시간에 항상 내 옆자리에 바짝 붙어 앉는다. 내 옆에서 열심히 소원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이 꿈만 같았다.
그렇게 난폭하고 사사건건 짜증과 시비로 욕설을 하던 덩치 큰 남학생이 콧등에 땀을 송골송골 맺히면서 정성스럽고 바른 글씨로 양처럼 순하게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며 말 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 울컥하였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이렇게 울컥한 감정을 느껴 본 지가 언제였던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신선하고 벅찬 감격이었다.
그는 수업이 끝났는데도 편지를 예쁘게 꾸며야 한다며 내 팔을 잡았다. 먹기를 좋아하는 그가 저녁식사도 미루고 편지를 마무리하고 꾸미는 성실함에 많은 칭찬을 해주었다.
푸짐한 칭찬을 받은 그는 활짝 핀 해바라기 꽃처럼 함박웃음을 지었고 다음 독서수업에 과자 1봉지와 초콜렛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나는 그것을 소중히 집으로 가져왔고,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다. 나에게 마음이 더 많이 열렸다는 증표로 준 것이기 때문이다.
김○○(초5)은 센터에 온 날은 독서수업에 꼭 참석하였고 아이들과의 다툼이나 욕설도 점점 줄어 갔다. 또한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달려와서 독서수업을 빨리하고 싶다고 재촉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5월초에 소원편지대회에서 김○○(초5)이 당선되었고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꿈같은 소식을 들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고 감격하여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면서 그를 향해 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초5)의 손을 잡고 펄쩍펄쩍 뛰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호들갑을 떨었다. 가슴이 먹먹하여지면서 눈물이 넘쳐 볼을 타고 내렸다.
김○○(초5)은 그 날 이후부터 나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진 것 같았다. 그 일 이후로 독서수업에서 김○○(초5)의 의견이나 발표가 눈에 띄게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그 누구도 김○○(초5)을 향해 닥치라는 말을 하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를 함부로 대하거나 말하지 않았고, 그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이런 존중을 받은 김○○(초5)또한 욕설이나 화를 내는 대신 동생들을 도와주는 듬직하고 의젓한 형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놀랍고 가슴 벅찬 일인가?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다가 인정받는 것은 삶의 의욕이 생기고 자신감이 용솟음친다는 것을 나도 살면서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이 애의 얼굴과 몸짓에서 조금씩 피어나는 미소와 쑥쑥 자라나는 자신감은 나로 하여금 생동하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
돈을 버는데 급급하고 이해관계에 빨랐던 내 삶을 돌이켜 더 늦기 전에 이 일을 시작하길 잘 했다는 뿌듯함과 보람감이 가슴속에 넘쳐 주체할 수 없었다.
김○○(초5)의 표정이나 어투는 더욱 밝아졌고 그의 태도는 공손하고 예의바르다. 그는 그 이후로 독서 수업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성실 모범생이 되어 다른 학생에게 귀감이 된다.
그는 덩치는 크지만 풍부하며 부드러운 감성을 소유한 마음 밭이 여리고 사랑스런 남학생이다.
그는 요즘 센터에 도착하면 곧 바로 나에게 달려와서“오늘 독서 수업은 무엇을 할 거에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자신의 사사로운 일이나 신상의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내 주변을 맴돈다.
이제 그는 독서 시간에 욕설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다.
내가“김○○(초5)아! 사랑해 너를 만나서 나는 정말 행복해”라고 속삭이듯 말하면 전에는 짜증난다고 하면서 화를 냈지만, 지금은 말없이 빙긋이 웃는다.
“선생님은 너를 만나서 너무나 행복해. 너와 헤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난 너를 잊지 못하고 기억할 거야.”이 말을 들은 김○○(초5)은“선생님은 센터에 독서수업 하러 계속 오실 거잖아요”라고 답하면서 하던 일에 열중한다.
이제는 군것질도 많이 줄였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며칠전에는 저학년 독서수업을 하고 있는데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꼬깃꼬깃 작게 접힌 노란 종이를 들고 달려왔다.“선생님! 저요 학교에서 글짓기 대회에서 상 받았어요. 지난번에 선생님이 알려주신 내용을 생각하면서 솔직하게 썼어요!”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은 그가 혼자 스스로의 힘으로 써 내서 학교에서 받은 소중한 첫 번째 상장이었다.
나는 너무나 놀랐고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정말? 축하해! 넌 해 낼 줄 알았어!”나는 깜짝 놀라서 큰 소리로 떠들었고, 주방 선생님과 사무실의 선생님들이 달려 오셔서 함께 축하해 주셨다.
상장은 복사해서 센터에 붙여 주기로 하였다. 김○○(초5)에게 그 상장을 복사해서 나에게 달라고 청하였고, 그는 흔쾌히 승낙하며 복사하여 나에게 주었다.
자신이 상을 받았다는 말을 할 때의 그 애의 표정은 하늘을 나는 상쾌함과 행복감의 표정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이런 재능이 숨어 있었음을 더욱 많이 느낀다.
그는 학교에서 행사가 있어서 늦는 날에는 독서수업이 끝나기 직전이라도 꼭 참석을 해서 나를 만난다.“학교에서 늦게 끝나서 센터에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독서수업을 하려고 막 달려왔어요.”라면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그의 모습은 기특하기만 하다.
현재 간헐적으로 독서수업에 참석하는 아이들까지 총 40여명이다. 나는 올해 독서 수업시간에 40여명의 아이들 가운데 특별히 김○○(초5)의 마음을 얻은 것에 대하여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
내가 독서를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이유는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과 그 속에 감춰진 보물을 캐내는 행복감 때문이다.
1월에 시작했던 독서수업이 벌써 반년이나 지났다. 이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슬픈 일이다. 독서수업을 기피하는 아이들이 몇몇 있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변화할 것임을 믿으며 기대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이곳에서 이렇게 사랑스런 아이들과 함께 독서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싶다. 나의 건강이 허락하는 그 날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