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센터

  • 벼랑 끝에서 쏘아올린 힘!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602 | 노연정님] 벼랑 끝에서 쏘아올린 힘!
저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상담하면서 자립계획을 세우는 일이 저의 주된 업무입니다. 만나는 분들은 주로 알콜, 빈곤, 가정폭력, 실업 등의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58세 되시는 최근의 한 분이 기억이 납니다. 처음 상담실 문을 열었을 때, 마른 체격, 허름한 옷차림, 고르지 못한 치아 균열과 요실금이 있다는 A씨는 첫 상담에 지난 살아온 날들을 저에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선생님.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일자리를 구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몰라서 찾아왔습니다. 젊었을 적에는 가진 재주가 많아 영어 교사로 명성도 얻었지만 살아가다가 아는 지인에게 큰 사기를 당해 빚까지 얻고 지금까지 빚을 갚으며 살았어요. 그 충격으로 결혼도 못하게 되었고 자꾸 늘어나는 빚 독촉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안 해 본 일 없이 살았어요.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일해서 돈을 모았어요.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빚을 갚고 나머지 금액은 청소하는 일로 빚을 갚았어요. 최근 5년간은 교회를 청소하는 일을 했는데 교회일은 너무 고되고 힘들었어요. 3층 높이 되는 건물이었는데 혼자 물걸레질 다하며 먼지하나 없게 청소해야 했어요. 청소한 구역에 누가 발자국이라도 남겨놓으면 엄청 혼이 났거든요. 깨끗하게 청소하지 못한다고... 이런 일자리를 주는 데가 어디 있냐며 타박도 심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빚을 청산하는 순간 그 교회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 이날 이제까지 버텼어요. 그래서 지난달 빚을 다 갚고 당당하게 그만 두었습니다. 이제는 저를 위한 일을 찾고 싶습니다.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A씨의 부탁은 간절했고 그 많은 빚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생각하니 제 마음이 좋질 않았습니다. 그동안 정부에서 지원하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혜택을 받았을 법도 한데 A씨는 홀어머니가 계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일은 그동안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고 이야기 합니다. A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그 많은 빚을 혼자 감당하고 젊은 청춘을 다 바쳐 일을 했을 A씨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두 번째 상담이 있던 날, A씨는 지난 주 보다 한층 더 밝아진 모습이었습니다. “ 제 이름으로 드디어 체크카드를 만들었어요. 살면서 나는 언제나 카드를 만들어볼까 라는 생각에 카드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는데 저도 이제는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아 너무 즐겁네요.” 한껏 들떠있는 모습의 A씨였습니다.
체크카드는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면 교통카드의 기능이 있는 일반적인 체크카드 였음에도 불구하고 뛸 듯이 기뻐하는 A씨에게 조심스레 기초생활대상자 수급 상담을 권해보았습니다, “ 어려우시겠지만, 나라에서 지원하는게 있는데 한 번 알아 보시는 게 어떨까요? 예전에는 아마 소득이 있으셔서 어려웠을꺼예요. 지금은 기준도 많이 완화 됐고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을 것 같은데 알아봐요. 불편하지 않게 제가 같이 도와드릴께요.” 자신감이 없었던 A씨의 설득 끝에 정부지원금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신청절차는 쉽지 않았지만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해주고 응원해 드렸습니다.
세 번째 상담이 있던 날, A씨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보았습니다. 만날수록 느꼈던 A씨는 분명 마음이 따뜻한 분이었고 삐뚤어진 치아가 개성있었고 날씬했고 성격도 좋았으며 인상이 참 너그러운 것이 장점인 분이었습니다. 장점을 알아갈 수 록 저는 A씨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서글서글한 좋은 인상에 남에게 푸근함을 줄 것 같고 베어 있는 친절함이 서비스 직종으로 적합하다고 느껴졌습니다. “ 혹시 요리 하는 거 좋아하세요?” “ 누굴 위해 요리를 해 본적이 오래 됐어요. 예전엔 초대 해서 함께 식사하고 음식솜씨가 좋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일 시작하고는 주로 혼자 밥에 물 말아서 빨리 먹는 습관이 생긴 후로는 요리를 잘 안했어요. 함께 먹을 사람도 없고...” “그렇다면 요리를 하는 건 좋아한다는 말씀이시지요?” “네. 좋아는 합니다만....”
A씨의 장점을 알고 그 날부터 A씨에게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요즘 세상은 아무래도 자격증이 없다면 안정적인 취업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나고... 드디어 A씨의 한식조리사 합격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합격의 기쁨을 나누었고 본격적으로 취업의 전선을 함께 했습니다.
주로 면접을 본 곳은 어린이집 조리사 였는데 가는 곳마다 인상이 좋으셔서 그런지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선생님 저 취업했어요. ” 드디어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수급자 책정도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비는 지원받을 수 는 없지만 의료비나 주거비 등은 지원이 가능하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쌀20KG도 받았다며 흐뭇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제는 고생 끝에 정말 낙이 오는 구나 싶어 눈물을 머금고 이야기 하는 모습에 저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첫 월급을 지급 받은 후, 음료수 한 병을 들고 찾아온 A씨는 저에게 첫 상담의 날을 떠올리면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 사실 처음 찾아오던 날, 전날까지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전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침 일찍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거울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릅니다. 상담실까지 오는 길이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요. 그러다 내 삶을 이야기 하다 보니 다시 시작 할 수 있겠구나 깨달았습니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지금은 소망과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그저 감사하고 또 고맙습니다.” 미쳐 알지 못했던 그 날의 A씨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니 순간 부끄러워졌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절망을 느끼고 다 포기 하고 싶은 삶을 살더라도 그 끝까지 걸어가게 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는 것일까... 무엇이 그 힘든 삶을 지탱하게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게 만드는 것일까...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아니었을까... 나는 오늘도 나보다 더 위대한 삶을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소중한 삶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하루씩, 한 걸음 더 성장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