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석 주희입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우리들 대부분에게 떨리는 일이지만, 긴장했음을 나타내는 표현은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많이 떨리는 목소리가 나와서, 듣는 이로 하여금 ‘쟤 울 것 같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대외활동 면접에서 탈락이란 쓴 고배의 잔을 여러 차례 마시던 나날이었습니다.
평소 대화에선 말이 많아 가족들, 친구들 사이에서 ‘따발총’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제가, 면접 현장만 가면 사시나무가 되는 목소리..
이에 대한 어떤 해결방안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암울한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는 나날이 계속 되었고, 저 스스로를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때문에 방문을 닫아 혼자 자기소개 연습도 해보고, 현직 직장인 멘토링에 참가하여 여러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껴볼 수 없는 특유의 발표현장 분위기는 여전히 절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노력에도 보이지 않는 발전에 적잖은 실망을 하게 되었고, 여러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지역아동센터나 사회복지관에선 교육봉사자를 모집하는데, 해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하였습니다.
당시엔 교육봉사를 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궁금증이 더 커지고 해보고 싶듯, 7월의 어느 날 그렇게 저는 인천의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그 날부터 아이들의 염소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개념설명을 하려면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전부 저를 쳐다보고 있다는 점에 긴장이 되어, 또, 목소리가 또, 염소가 흐느끼듯 떨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크크크 선생님 사우디아라비아 말하는거죠 지금?”
“아냐 염소가 하는 소리잖아!”
“그러게 키키 정말 염소소리다. 그럼 염소선생님으로 부르자!”
“염소선생님!” “염소선생님~!”
발표에서 여태껏 받아왔던, 안타까운 시선들 혹은 한심하다고 수군대는 뒷 이야기들을 받아왔던 제겐 그 별명이, 그 웃음들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이런 목소리도 누군가를 웃게 할 수 있구나.’
그 날 이후로 종종 염소목소리가 수업에서 나오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수업을 진행하면 할수록 긴장감이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통학을 하는데, 네이버 지도 빠른길찾기 기준소요시간은 2시간 35분(편도)이었습니다.
학교 돌아오면 집에서 편하게 쉬었던 그동안과 다르게, 수업을 하러 가야했으니까 초기에 체력적으로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봉사시작 이후 지하철 속, 길고 긴 통학시간동안 잠을 보내기 일쑤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동심리학, 교육학 등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공부를 잘가르치는 선생님보다 아이들 기억 속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미술심리와 음악심리사 등 심리에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이를 활용하여 -개념설명 후 문제푸는 시간을 주고- 따로따로 아이를 불러내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아이들과 대화에서의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아이들의 멍울멍울 맺혀있는 멍이었습니다.
초등학생이라서 추상적인 단어의 구사를 잘 못하여 기분에 대해 얘기를 잘 못하지만, 상황묘사는 잘 설명하더군요. 아이들 각각 다른 사연, 그러나 같은 상처 아픈 이야기들.. 상처 입은 아이들..
초등학생 때 가정폭력, 배고픔, 가난 등이 가장 큰 고민이 아니겠지만 중학생 때 흔히 말하는 중2병이 걸리는 이유가 가출을 하는 이유가 어릴 적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사랑을 줘도 부모님의 사랑만큼 못하겠지만 그래도 사랑을 주고 싶다. 그래서 내 제자들이 나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새 작은 목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서서히 생기는 걸 보고 가장 놀란 건 제 자신이었습니다.
시설이 낙서와 얼룩으로 더럽고,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산만해서 힘들다라고 봉사 초기에 생각했었는데..
열악한 시설과 낙서, 잘 씻지 않아 찌든 냄새, 여전히 시설은 그대로인데 그 문제들이 다 개의치 않을 만큼 더 중요한 목표가 생겨버린거죠.
그래서 메르스나 시험기간으로 한동안 못 가게 되었을 때 계속 마음이 좋지 못했어요.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그 때 엄마가 많이 아파서 밥도 못 먹고 준비물도 못 챙겨간다는 아이는 어떻게 밥을 먹고 있을까? ㅇㅇㅇ는 내가 수업 끝나고 떡볶이도 사줬는데, 컵 떡볶이가 아니라고 큰 그릇에 나오는 떡볶이라고 행복해하던 내 제자, 굶고 다니는 건 아닐까? 라고..
봉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은 아직 온전히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분명하게 느꼈던 건 마음으로 낳은 아이들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은 봉사활동..
봉사는 내가 어려운 사람을 베푸는 거라고,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남들 앞에서 씩씩하게 발표할 있는 요즘의 저를 문득 자각할 때마다 도움을 받은 건 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지역아동센터의 이사로 대학교 1학년 때 가르치던 아이들을 계속 가르칠 수 없게 되었으나 사회복지관과 야학 등 봉사를 그만두지 않고, 대학교 3학년까지 400시간의 교육봉사를 해왔으며 현재도 꾸준히 봉사하며 행복을 받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크다며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회복지관 제자들을 보면 같은 동물별명이라 그런지, 그 때 그 아이들이 불러줬던 염소선생님이란 별명이 같이 생각나곤 합니다.
“얘들아 잘 지내지? 염소선생님이 호랑이 선생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