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한창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할 나이 봉사활동을 통해 닿은 인연으로 2007년부터 기초학습파견교사를 하던 지역아동센터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뺏겨 공부를 시작했고 2011년에는 어엿한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잠시도 다른 길은 넘겨다 볼 틈 없이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뺏겨 8년이 넘는 시간을 화살처럼 보내온 나도 문득문득 밀려오는 슬럼프와 고되고 열악한 처우로 인한 갈등은 피해갈 수 없는 딜레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지역아동센터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우리 아이들이 내 곁에서 웃고 건강히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기간 일을 하다보니 이미 센터를 지나간 아이들 중 몇몇은 나에게 “맥주한잔해요, 선생님~~“ 하고 너스레를 떨 나이가 되었다.
나보다 조금 늦게 센터에 들어와 중학교까지 꽉 채운 뒤 센터를 졸업하고도 내가 개인적으로 다니는 봉사활동을 함께 다니며 연을 이어가거나 스승의 날, 내 생일, 중간고사 기간에는 제 집 드나들 듯 편하게 다시 센터를 찾는 아이들도 있다.
너무나 이쁜 우리 아이들의 선생님! 나는 지역아동센터 생활복지사이다.
폭풍같이 아이들의 저녁급식시간이 흘러간다.
저마다 취향에 따라 좋은 반찬, 싫은 반찬을 기억해뒀다가 양을 달리 덜어주고 안 먹으려는 아이들에게 꼭 먹어야 되는 이유도 알려주고 건강생각 좀 하라는 잔소리도 해야 하고 장난치는 아이, 다투는 아이, 그러다 우는 아이들 달래는 것까지 말 그대로 전쟁터 같은 풍경이다.
내 저녁밥을 들고 앉을 자리를 찾아 센터 전체를 눈으로 슥 훑는 순간 저 한 켠에서 얼른 옆자리로 식판과 자리를 옮기며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비우고 눈치를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수줍게 웃는 한 아이가 있다. 우리 진영이(가명).
진영이는 작년 가을 쯤 우리 센터에 등록해 아직은 1년도 안된 새내기 2학년 꼬맹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울산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 본 진영이는 말을 걸면 대답대신 몸을 비틀었고 아이의 상황을 알려고 자리를 잡고 관심을 보였던 내게 결국은 “몰라요,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라며 곁을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아이를 기다려 얻어낸 정보는 알면 알수록 놀라운 것 뿐.
당시 1학년이었던 진영이는 나비, 다리, 바지처럼 받침 없는 쉬운 낱말도 완벽히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완전한 학습 부진상태였다.
어디서부터 알려주어야 하고,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지 기술적으로도 고민이 많았지만 그보다 먼저 눈을 마주치고 얘기조차 하지 못하는 이 아이를 어떻게 감싸 안아 마음을 열수 있게 도와줄 지 고민 또 고민이었다.
여럿이 함께 생활을 하는 센터의 특성상 1학년 진영이가 유치원생들도 쉽게 해내는 한글을 공부하는 것을 보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지만 진영이는 눈동자만 흔들릴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어떤 표정도 없었다.
학습수준의 차이가 나는 여러 아이가 함께 공부를 하는 우리 센터에서 언젠나 해왔던 것처럼 너무나 고맙게도 너희들은 자신의 학년에 맞추어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진영이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공부를 제때 할 수 없었고 지금부터 열심히 해서 따라잡을 거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선 “얘들아, 못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부끄러운건가?” 라고 물으니
“아니요. 열심히 했는데도 잘 모르고 못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열심히 안 하면 그게 부끄러운 거에요.”라고 기막히게 멋진 대답을 해주었다.
또 “앞으로 진영이가 잘 할 수 있게 격려해주고, 모르는 거 있으면 잘 가르쳐 줘~”라고 부탁했을 때
“네!!”라고 기특하고 씩씩한 약속을 해주기도 했다.
진영이는 그 순간에도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뭔가 반응을 바라고 옆구리를 쿡쿡 찌르던 나에게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 그 순간이 절대로 헛된 시간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나와 센터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의 도움과 함께 우리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올해 들어 2학년이 되면서부터 진영이는 무서운 속도로 공부에 속도를 붙여갔다.
뭐든지 몰라요 몰라요만 외치던 꼬맹이 진영이는 온데 간데 없고 이젠 스스로 문제집을 가져와 해야 할 분량을 물어보고 또 어떤 때는 하기로 했던 것보다 더 많은 문제집을 풀어와 채점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리게 했다.
두 세 글자의 단어를 쓰고 그 글자를 읽기도 힘들었던 아이가 학교에서 내어준 받아쓰기 급수표의 글을 읽어내고 또 써내려갔고 받아쓰기까지 해냈다.
그렇게 진영이의 학습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 또래에 뒤쳐져 있으면서 상처 입은 자존감은 쉽사리 제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함께 그룹수업을 할 때 마다 어깃장을 부리거나 담당 강사가 물어보는 말에 도통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처음엔 단순히 수업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인줄만 알았던 내게 아이가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 했을 때 나는 신세계를 발견한 듯 기분이 설레었다.
“어차피 나는 저렇게 못해요. 나는 원래 잘 몰라요.” 그룹수업을 할때, 발표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올때 아이가 주문처럼 외우는 말을 내가 미처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진영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경험, 바로 그 경험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아무리 고민하고 또 노력을 해도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역사수업에서 드라마 같은 감동을 만들어 내며 우리 아이들이 진영이를 성장시키는 일이 생겼다.
매 시간마다 역사적 인물을 배우고 그 내용을 토대로 다양한 발표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 날도 역시 아이들은 부지런히 수업에 참여했다.
그 날은 허준에 대해서 배웠는데 허준이 한 업적 중에 자신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교재에 적고 발표하기로 했다.
아이들 모두 발표를 했고 이제 진영이 홀로 남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발표를 하지 않겠다며 옆에서 다독이는 강사님의 손을 뿌리쳤다.
지난 주 수업에는 발표 한 모든 아이들에게 막대사탕을 주었고 막대사탕 3개를 걸었어도 진영이는 결국 발표를 하지 않았다.
이번수업에는 발표한 아이들에게 연필을 한자루씩 선물로 주셨는데 그 정도에 진영이 요녀석 쇠고집 꺾이겠냐, 하며 반쯤은 나도 기대를 버릴 때쯤 강사님이 진영이는 특별히 연필을 두 자루 주겠다는 제안을 해오셨다.
“왜 진영이만 연필 두자루 줘요?”하고 한 아이가 대뜸 물어왔다.
그때 강사님께서 “진영이는 격려가 필요하잖아. 격려해 줘야 발표를 잘 하지~”라고 대답을 해주셨다.
바로 그때 강사님 바로 턱밑에 앉아있던 4학년 아이가 “그럼 제가 받은 연필도 진영이가 발표하면 줄께요!“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아이가, 또 다른 아이가 하나둘씩 자신의 연필을 내어주었고, 아껴두었던 막대사탕까지 내어걸며 ”진영이가 발표하면 이것도 주세요!!“ 라 외치며 마지막을 장식하고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모두가 진영이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며, ”할수있어, 진영아! 얼른 해봐!!”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아이들의 응원에 진영이는 결심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앞으로 나가 자신이 또박또박 써내려간 허준의 업적을 큰소리로 발표했고, 그 순간 다른 아이들은 모두 귀를 기울여 진영이의 발표를 들어주었다.
진영이의 발표가 마친 뒤에도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쳐주며 환호했고 진영이는 당당히 모아진 연필 7자루와 막대사탕 하나를 선물로 받아 기분 좋은 수업의 마무리를 했다.
작년 가을 센터로 와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마냥 모든 것이 낯설어 보였던 진영이. 그런 진영이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또 그 안에서 스스로를 바로 세워나가는 과정을 복지사로서 돕고 또 격려해주고 있다.
8년이 넘은 시간 변함없이 센터를 지켜오면서 나름 인정받는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었지만 나는 새로운 우리의 아이 진영이를 통해 그리고 진영이를 성장시키는 또 다른 우리의 아이들을 통해 오롯이 사회복지사의 노력만으로 센터의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을 또 한 번 배웠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지켜봐주는 관심과 북돋아주는 격려, 보듬어주는 사랑이라는 것 역시 다시 깨달았다.
스물셋, 지금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긴 시간을 더듬어 본다.
어느 새 자라 나와 술잔을 기울일 수는 있는 아이도, “이제 2년만 더 있으면 선생님이랑 맥주도 마실 수 있겠네요?” 라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도, 스승의 날이면 정성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거나 짬을 내서 센터에 들러 감사 인사를 하는 아이도 있다.
그렇게 만나면 지난 순간을 이야기 하고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나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떠올리게 될 우리 아이들이 지금 내 곁에, 우리 지역아동센터에 있다.
복작거리는 센터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다보니 문득 어린 시절 시장입구에 계시던 할머니의 콩나물시루가 생각난다.
시루 속에서 서로 얽혀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 그리고 물을 듬뿍 먹고 쑥쑥 자라나던 탐스러운 콩나물처럼 세상에서 얽혀 많은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몫을 키워갈 우리 아이들, 내 사랑하는 똥강아지들. 지금처럼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하며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길.
콩나물처럼 쑥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