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천사메신저가 되어 환우분과 인터뷰를 하는 날이다. 창밖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고, 나는 혹시라도 약속시간에 늦을까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빨리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친구에게 ‘이제 수업 끝났어! 빨리 갈게!’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근처 지하철로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허겁지겁 뛰었던지 등줄기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지만 인터뷰를 할 생각에 온 정신이 쏠려 있어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전에 친구와 함께 인터뷰 연습을 충분히 했지만 혹시라도 실수할까 걱정이 되어서 약속장소로 가는 동안에도 한 순간도 인터뷰 용지를 손에서 내려놓지를 못했다.
“으~ 떨려.”
친구를 만나고 한 첫 인사말이다.
우린 서로의 안부를 물을 겨를도 없이 인터뷰 중 마실 음료를 사서 복지관으로 바삐 향했다.
다행이 복지사님과의 약속시간에는 늦지 않았다.
복지사님은 우리를 환우분이 계신 곳으로 데려가주시면서 우리의 표정에서 걱정스러움을 발견하신듯 묻지도 않았는데 환우분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너무 걱정 마세요, 밝으신 분이예요”
몇 분 후, 저기 멀리서 환우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인터뷰 용지를 꺼내들고 환우분의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환우 분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환우분이 우리에게 먼저 웃으며 인사를 해주셨다.
다행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환우분의 건강이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소 의기소침하실 줄로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환우분의 집에 도착하여 들어가면서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잘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들어오세요.”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환우분의 집은 생각보다 훨씬 상황이 나빴다.
3~4평 남짓한 정도의 공간에 있는 것이라곤 이불과 탁자, 옷장이 전부였다. 냉장고도 없었다.
복지사님은 집을 둘러보시곤 ‘더 잘 해드려야 하는데 많이 신경써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 하시고 착잡한 표정으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준비해온 음료를 드리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후 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몸이야 뭐 많이 괜찮아졌지요.”
하지만 환우분의 몸 상태는 역시 좋지 않았다. 소아마비로 인해서 한쪽 다리가 짧았고, 때문에 허리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장도 좋지 않아서 장루(인공항문)을 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혈압과 당뇨로 인해서 음식까지 조절해야 한다고 하셨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지만 나와 내 친구는 상황이 이렇게 좋지 않을지는 몰랐다.
몸도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이렇게 힘든 분과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고 왠지 모르게 죄송스러웠다.
괜히 우리가 부담스러워할까 환우 분은 ‘지금은 운동도 하고 많이 회복되어가고 있어요.’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렇게 인터뷰는 계속 진행되었다.
“저는 지금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비록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환우분에 대해서 더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예전에 봉사활동을 많이 해서인가 봐요.”
그 말에 우리는 약간 놀라며 물었다.
“아, 봉사활동을 많이 하셨나 봐요?”
“그럼요! 많이 했죠.”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 봉사활동을 많이 했었다고 하셨다. 우리는 그 말에 밝은 기운을 느꼈고, 덕분에 약간 신이 난 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병이 낫게 되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은지 여쭈었다.
“음... 일단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어요. 그래야 가족도 부양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잖아요. 그리곤 아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요. 젊었을 때부터 여행을 좋아했는데 상태가 이렇다보니 가족여행을 한 번도 못 다녀와 봤네요. 그래서 여유가 생기면 짧게 1박2일이라도 다녀오고 싶네요.”
환우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와 달리 분위기가 밝게 변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질문을 여쭈었다.
“현재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환우 분은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잠시 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어도 희망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드려야 해요. 가만히 있어서는 그 희망을 잡을 수 없어요. 비록 지금은 힘들고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서는 거예요.”
환우 분은 덧붙여서 비록 몸이 불편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었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알아보고, 찾아 돌아다니고, 물어보며 반드시 재기할 것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잠시 동안 아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우리를 본 환우 분은 말을 덧붙이셨다.
“젊은 친구들, 고마워요. 이렇게 찾아와서 이야기도 다 들어주고. 그렇지만 분명 좋은 경험이 됐을 거예요. 자! 그럼 여기서 이만 끝냅시다.”
그렇게 인터뷰는 끝이 났다. 나는 괜시리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에도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부끄럽기도 했고, ‘이런 분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복잡하게 마음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조심히 들어가요~”
“네, 빨리 회복되세요!”
우리는 그렇게 집을 나섰다.
어느새 비가 그쳤는지 거리에는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와 내 친구는 서로 신기해하며 한편으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고 다짐했고 또 한편으로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환우분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꼈다. 왠지 우리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고 나서보니 오늘 하루 종일 내린 비는 추적추적 내린 슬픈 비가 아니었다. 이 비는 새로운 새싹을 피울 희망의 봄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