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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뭉클해지는 학교 밖 청소년 철수 이야기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604 | 박은희님] 학교 밖 청소년 철수 이야기
“따르릉~따르릉~” 2015년 6월 10일(수) 나(중학교 교육복지사)는 동래교육지원청 K중학교 1학년을 자퇴한 김철수(20살, 가명)학생과 어머니의 안부를 묻기 위해 8년째 월 1회 학생에게 전화를 한다. 김철수 학생은 내가 동래교육지원청 K중학교에서 교육복지사로 근무하던 시기에 담임교사 의뢰(2008년 7월)로 만나게 된 학생이다. 담임교사 의뢰당시 김철수 학생은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주로 혼자서 교실 또는 복도를 배회하며 다니던 학교 부적응학생이었다.
담임교사 의뢰 후, 나는 말을 잘 하지 않는 학생의 상황을 배려하여 진지한 분위기의 상담보다는 젠가, 체스 등 보드게임을 하면서 편안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 결과 학생은 7년 동안의 비밀을 나에게 처음 말했다. “복지사 선생님, 저 사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눈에 보여요.” 사실 난 그 한마디에 조금 당황했다. 대학교에서 정신의료사회복지를 배우면서 환각증상에 대해 배웠지만, 학생과 상담하면서 환각증상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7년 동안 지키던 비밀이야기를 나의 실수로 묻어두기에는 너무 큰 사건인 것 같아서~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나갔다. 철수는 “매일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 집 앞에 서 계시는데~ 무섭지는 않고, 그냥 슬퍼 보여요. 그리고 학교에 오면 귀신들이 저를 쫓아 다녀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귀신이 저에게 붙어서 털어 내느라 수업시간 말고는 계속 걸어 다녀요.”라고 말했다.
환시, 환청, 환후, 환촉이라는 환각증상이 심각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청소년기 환각증상의 경우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기 때문에 가정방문을 통해 학부모 상담을 실시하였고 학부모 상담 후, 지역정신보건센터에 의뢰하여 무료 심리검사를 받게 되었다. 심리검사 결과, 학생의 증상이 심각하여 학부모와 함께 개인병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후 종합병원, 대학병원 입원치료까지 받게 되었다. 대학병원에서의 입원치료도 학생의 증상완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여 나는 우리나라에서 소아청소년전문의로 유명한 서울 강남S병원 S교수에게 사연을 소개하고, 서울까지 가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버스도 잘 타지 않는 철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KTX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역시나 얼마 못 가서 멀미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멀미증상은 점점 심각해져서 좌석에 앉아있기 보다는 입구에 있는 보조석 앞에 서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보다 못한 승무원은 다음 역인 동대구역 승무원에게 부탁하여 멀미약을 공수해 왔다. 친절한 승무원 덕분에 철수는 서울 강남S병원에 도착하여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학생의 진단명은 ‘우울증’이었다. 즉,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해 환각증상이 나타났고, 환각증상을 없애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증상자체를 수용하되 약물을 복용하면서 증상이 완화된 상태로 지내기로 한 것이다. 이후 철수는 자신의 환각증상을 수용하며 잘 지내고 있었지만, 2009년 5월 어머니가 아이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발생했다.
장기유예로 집에 있던 학생은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교육복지사에게 연락했다. 교육복지사만 생각났다고 했다. 철수는 유예된 학생이지만 학교장과 협의하여 긴급하게 응급실로 뛰어가서 병원수속 등을 진행하였고, 가족을 수소문하여 외할머니에게 병실 간호를 맡기고, 학생을 지속적으로 상담하였다.
나는 학생과 어머니가 더 이상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지역정신보건센터에 의뢰하여 어머니도 함께 우울증 관련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지역구청 사회복지과에 의뢰하여 병원비 전액을 지원받았다. 그리고 학생의 딱한 사정을 부산일보사 익명사례 게재를 통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활동을 실시하였고, 모금된 금액 200여만 원을 지속적으로 학생치료비로 지원하였다. 8년이 지난 2015년 6월 현재, 김철수 학생은 20살의 듬직한 청년이 되었고,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 후,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며, 검정고시 합격하면 집근처 공장에 취직하여 어머니에게 용돈을 많이 드리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김철수 학생의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며, 힘든 일이 생기면 교육복지사와 자주 전화통화하며 지내고 있다. 김철수 학생 어머니는 “교육복지사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철수가 학교는 제대로 못 다녔지만, 학교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고맙다.”다고 말했다.
난 처음에 학생의 안전을 위해 사례관리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우울증이 심각한 것을 발견한 이후부터는 학생과 어머니의 안전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례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례관리 개념을 뛰어넘어 인생의 동반자처럼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의 소식을 물으며 가족처럼 이웃처럼 연락하며 지낸다. 그리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