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머니를 처음 만난 곳은 절에서 사시기도를 마치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언덕길에서였다. 할머니께서는 손수레에 박스를 한가득 싣고 무척 힘겹게 끌고 가고 계셨다.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어깨에 메고 할머니의 수레를 밀어드렸다.
“아이고, 이런 고마울 데가 있나.”
할머니께서는 끌던 수레를 언덕배기 위에 세워놓고 내 손을 잡으며 무척 고마워 하셨다.
때가 봄을 지나고 이었기에 땀을 흘린 우리는 가로수 그늘에 앉아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 이것 좀 잡수어보셔요. 부처님 앞에 올렸던 떡인데 드시면 복을 받을 거예요.”
나는 절에서 기도를 드리고 얻어오던 떡을 가방에서 꺼내 할머니께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그냥 호주머니에 넣고 계셨다.
“시장하신데 왜 잡수시지 않고?”
그러자 할머니는 겸연쩍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집에 있는 영감 가져다주려고…….부처님 앞에 올렸던 떡이라니 혹시나 영감이 잡숫고 앓는 병이 나을까 해서…….”
할머니의 말씀을 듣자 가슴 한쪽이 아려오면서 목에서 큰 덩어리 하나가 치밀고 올라왔다. 할머니 자신은 힘겹게 수레를 끌며 박스를 주우면서도 집에 계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할머니. 이것을 더 가져가세요.”
나는 가방에 남겼던 떡을 마저 꺼내 할머니께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고맙다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내가 다니는 사찰에서 남선공원 복지관으로 점심식사 지원 자원봉사를 나가게 되었다. 한참 점심을 배식하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내 옆구리를 툭 치며 반가와 하는 게 아니던가?
“어머, 할머니. 점심 드시러 오셨어요?”
나는 할머니께 점심을 떠 드리고 식사를 하시는 동안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드렸다. 할머니께서는 그래도 내가 손수레를 밀어드리고 떡을 드렸던 인연으로 나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셨다.
여러 어르신들의 식사가 끝나고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밥과 반찬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할머니. 국과 반찬을 싸드릴 테니 할아버지께 가져다 드리겠어요?”
나는 지난 번 떡을 드렸을 때 집에 계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 어떻게든 맛있는 밥과 반찬을 할머니께 드리고 싶었다.
“남들이 남은 것 싸간다고 욕하지 않으려나?”
“괜찮아요, 할머니. 남은 것은 모두 버리거든요.”
나는 어려운 이웃을 대하듯 남은 밥과 반찬, 심지어는 국물까지 모두 쌌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오래도록 잡수실 수 있도록……. 그러자니 할머니 혼자서는 들고 갈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양이 많았다.
“할머니, 제가 댁까지 들어다 드릴게요.”
이렇게 할머니와 같이 댁에 다다르자 할아버지께서는 마루에 나와 할머니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는 혈압이 높으셨던 관계로 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하셨다. 그래서 밖으로 나들이를 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 혼자서 박스를 주워 생활하신다고 하셨다.
“웬 먹을 걸 이리 많이 가져왔어요? 다른 사람도 생각을 해야지, 나만 생각하면 쓰나…….”
처음 뵌 노인 부부의 말씀을 되새겨보니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도 그렇고, 두 분이 사시는 모습과 환경이 폐휴지를 주우며 사실 분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어르신들의 사생활을 캐묻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기에 마음에만 담아 두었다.
“할머니, 이제 집도 알아두었으니 맛있는 떡이 있으면 자주 들를게요.”
나는 두 어른을 만난 후부터 내 생활이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밖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더라도 집에 싸들고 오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친구들과 모임에서든지, 우리 절의 신도들과 함께 회식을 한 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꼭 사가지고 집에 돌아간다.
이러한 행동은 남편을 위하는 할머니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러다보니 남편과의 사이도 가까워지고 아이들도 좋아하니 가족이 화목하다. 그 뿐이 아니다. 나는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사시기도에 참석을 하기 위해서 하루에 한 번은 꼭 절에 들른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면 공양간에서 공양을 들고 부처님 앞에 올렸던 떡을 싸들고 집으로 향한다. 그러다가 문득 할머니 댁 앞에서 멈춘다.
‘부처님 앞에 올렸던 이 떡을 할아버지께 드리면 혹시 건강이 좋아지실까?’
나는 골목 앞에서 머뭇거리다 이내 할머니 댁으로 들어간다.
“할아버지, 맛있는 떡을 가져왔어요. 드시고 벌떡 일어나 뛰어 다니세요.”
나는 방안에 떡을 들이밀고 이내 골목을 뛰쳐나온다. 그러면 왠지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 흥얼흥얼 노래가 나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요즘, 보살님이 가져다주는 떡을 드시고 우리 영감님이 다리에 힘이 붙었는지 잘 걸어요.”
복지관에서 점심을 배식하다 만난 할머니께서는 만면에 웃음을 보이시며 내 손을 꼭 잡고 기뻐하신다.
“우리 영감이 보살님을 한 번 집으로 모시고 오라는데 오늘 같이 가줄 수 있지?”
나는 혹시나 할아버지께서 건강해지셔서 뛰어다니시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할머니 댁에 들렀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뜻밖에도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보살님. 이거 얼마 안 되는 돈인데 절에 시주를 할 테니 절에 다니는 학생들 중 어려운 사람에게 장학금으로 줄 수 있겠지?‘
폐휴지를 주워 살고 계신 노인 부부에게서 받아든 저금통장에는 만 단위도 아니오, 십만 단위의 돈도 아닌, 백만 단위 돈이 예금되어 있었다.
“할머니. 박스를 주워서 이 돈을 모으려면 많은 고생을 하실 텐데…….”
“아니야,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돈이야. 그러니 좋은 곳에 썼으면 좋겠어. 보살님 같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우리 부부 먹고 살 돈은 충분히 있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저금통장을 받아든 나는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리고 하늘에라도 오를 듯 온 몸이 가벼웠다.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파란 하늘을 보며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을 했다. 나는 할머니처럼 어렵게 돈을 벌지도 않는다. 남편이 꼬박꼬박 월급을 타다 주어 살림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누구한테 금전적으로 도움을 준 적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노인 부부보다 삶이 더 윤택하다고 하지만 많은 돈을 떼 내어 어느 누구를 도와준 적이 없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자기 몸집보다 몇 배 큰 폐휴지 수레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할머니와 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부부는 세상의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풀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었다.
요즘은 세상이 각박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친한 노인 부부는 나에게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분들이기에 그 분들을 본받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부처님께 올렸던 떡을 싸들고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