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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미 한 송이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606 | 홍희란님] 장미 한 송이
그룹홈에 처음 들어오는 지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맞아서 멍든 얼굴이며, 긴장해서 파르르 떨리는 몸짓이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지수야, 안녕! 난 그룹홈의 사회복지사야. 앞으로 엄마 역할을 할 거야.” “…….” 이후로 어떤 말을 건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에 식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아이들을 보는 것이 두려웠는지 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수야, 밥 먹어야지.” “…….” 우선 심리치료부터 받아보기로 했다. 가족 그림을 그리는 데 장애가 있는 엄마와 언니만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던 오빠들은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치료사가 대화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오늘 치료 받느라 고생했지? 얼른 집에 가자.” “…….” 그동안 고생한 것이 안쓰러워 아픈 마음을 달래주려 살짝 안아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어 민망할 뿐이었다. 그래도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찾아주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일이 아니던가? 병에 걸린 자식 고치기 위해 좋다는 곳을 모두 찾아다니는 엄마처럼 좋다는 곳은 다 데리고 갔다. 갖가지 심리치료와 정신병원, 치유형 대안학교까지……. 학교도 2년여를 다니지 못해서 학교 가는 것도 힘들어할까 배정받은 중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지수의 치료에 안간힘을 쓰고 있을 무렵, 지수의 말문이 터지는 사건이 생겼다. 심리치료를 받고 나오는 길에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던 지수가 갑자기 말을 건네는 것이다. “저……. 학교 가고 싶어요.”
너무 기쁜 나머지 말이 더듬어졌다. “그그... 그래. 그... 그럼 우리 학교에 가볼까?” 교복을 준비하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지수의 모습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너무 예뻤다. 첫날은 긴장할까봐 함께 학교에 갔다.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또 지수가 갑자기 말을 했다. “저기... 그냥 저 수업 받고 갈게요.” “그래? 괜찮겠어?” “네.”
여자 중학교라 훨씬 편하게 마음을 붙일 수가 있었나보다. 첫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지수의 얼굴은 훨씬 편안하고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지수의 첫날이 어땠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지수가 스스로 말을 할 때까지 참기로 했다. “지수야~ 잘 갔다 왔어? 잠깐인데도 엄청 보고 싶더라.” 지수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어린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더니 나날이 성격이 밝아지고 곧잘 농담도 하고 까르르 웃는 소녀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붙임성도 좋아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선생님들의 사랑도 많이 받는 아이가 되었고 공부도 곧잘 하여 장학금도 자주 타오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다. 또래 아이들과 달리 고등학교도 그냥 인문계가 아니라 자신의 적성을 생각해 상업고등학교로 갔고 상업고등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며 졸업이 되기도 전에 은행에 취업이 되어 버렸다.
이런 지수를 끝까지 보살피고 완전히 자립할 때까지 보호해 주고 싶지만 대학을 가지 않는 경우 만18세가 되면 퇴소해야 하는 그룹홈의 규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한 지수는 생일이 지나면 퇴소를 해야 한다. 다행히 직장이 가까운 곳이고 친구들과 함께 취업이 되어 자립정착금을 받아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할 수가 있었다.
이제 성인이 되고 자립을 하는 지수에게 무엇을 해줄까 하다가 아직 성년은 아니지만 장미 한 송이를 골랐다. “지수야~ 이 장미는 너야. 이렇게 아름답게 핀 장미꽃이 바로 너야.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이렇게 예쁘게 핀 꽃이 바로 너야. 또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갈 나이가 되었다는 거야. 이제부터 자립해서 살아야 하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너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거란 걸 믿어. 앞으로 엄마도 자주 보러 갈 테니까 너도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엄마한테 도움을 청하러 오고. 알았지?” “엄마, 처음부터 지금까지 절 그냥 지켜보시는 게 힘드셨겠지만 제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그 시간이 있었기에 제가 이렇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자주 놀러올게요. 저 문전박대하시면 안 돼요.”
“당연하지. 내 사랑하는 큰 딸.” 부둥켜안고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잘 성장했다는 기쁨과 미래에 대한 기대의 눈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