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평소 간이 많이 안 좋으셨던 아버지께서 과로로 쓰러지셨고, 수술을 하시게 되면서 긴급 수혈을 해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당시에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어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수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무너지는 듯 했다.
아버지께서 쓰러지시니 경제적 형편이 좋을 리도 없었다.
수술비에 수혈비에 돈 들어갈 때가 많아 어머니가 여기저기 다니시며 돈을 빌렸다.
이 사정을 학교에 이야기하니 담임선생님께서 단체 헌혈을 통해 학생들과 헌혈을 하시고 헌혈증을 모아 주셨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런 도움에 힘을 얻은 우리 가정은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이 때 다짐했다. '나 역시 앞으로 헌혈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그렇게 시작한 헌혈이 벌써 횟수로 165회가 넘었다.
헌혈을 하기위해 좋은 공기를 마시러 산에 올랐고 몸에 좋지 않은 습관은 버리려고 노력했다.
“죄송합니다만 술은 마시지 않습니다.”
회식자리에서 매번 하는 이야기다.
헌혈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두 가지를 결심했다.
하나가 술, 담배를 절대 입에 대지 않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가 틈날 때마다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을 거절 하는 것이 자칫 좋지 않게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3년 전 한 일을 겪고 나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되었다.
'제 동생이 백혈병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데 헌혈증이 부족해요. 혹시 도움주실 분이 계시면 제게 꼭 연락주세요.'
단체문자로 긴급히 헌혈증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동안 모아둔 헌혈증 50장을 모두 드렸다.
“선생님 이렇게나 많이...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한 달여 시간이 지나고 헌혈증이 필요하다고 하신 그 선생님께서 시골에서 짠 참기름을 들고 오셨다.
“지난번엔 정말 감사했습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아닙니다. 필요한데 쓰려고 모아둔건데 저로선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뭘”
“그래도 어렵게 모은 헌혈증을 한 번에 주시다니 정말 선생님 덕분에 치료비 부담도 많이 덜었구요, 제 동생도 많이 완치되었네요.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건 집에서 짠 참기름인데 입맛 없을 때 넣어 드셔요.”
“귀한 참기름이네요. 감사합니다.”
헌혈증을 드린 지 얼마 안되어서 좋은 소식이 들려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수술비가 부담 되었을 텐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생각에 한동안 행복했다.
군대 있을 때는 다른 부대에 있는 병사가 헌혈증이 필요하다고 하여 대대장님께 헌혈증 30장을 드린 적이 있다.
그때 도움을 받은 병사가 내 결혼식까지 와서 축하인사를 해준 것을 보면 사랑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대장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그 때 도움주신덕분에 힘도 얻고 이제 취직도 하게 되었어요. 소대장님도 행복하게 사세요!”
나 역시 고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에게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1년에 2번 반 학생들을 데리고 헌혈을 하러갔다.
같이 헌혈을 하면서 예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고 단체사진도 찍고 또 헌혈증을 모아 좋은 일에 쓰려고 보관하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이를 위해서 피를 뽑는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학생들이 이제는 대학교가서도 꾸준히 헌혈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대견하기도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경험한 헌혈을 통한 사랑을 내 제자들에게 전해주고 내 제자들과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있다는 것이 나를 가슴 벅차게 한다.
앞으로 꾸준히 건강을 관리하여 나 역시 그 사랑을 계속 이어가고 또 학생들에게 전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