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꼴통들.. 벌써 수년전이 되어버린 이야기입니다.
26살의 사회초년기 시절 부산의 영도라는 섬마을의 성학대 그룹홈에 근무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시커먼 남자아이들 5명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sos긴급출동이라는 그 당시 꽤 유명한 프로그램의 주인공, 학대받은 피해 아동들로 그 아이들의 나이만큼 아픔들이 속속히 배어있는 곳이었습니다.
나름의 유명인사들이라 1년 사이에 선생님이 견디지 못하시고 교체되었고 마지막에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교수님께서 몇 개월만 부탁하셔서 그곳에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법인 이사장님께서 그 녀석들에게 이번에 한번만 더 선생님 괴롭혀서 쫒아내면 이젠 그룹홈을 폐쇄한다는 엄포령이 내려졌다는 건 차후에 알게 되었지만^^
아무런 정보없이 처음 만난 그 녀석들은 천사같은 얼굴에 아주 조폭아저씨와 같은 입담 서열화가 마치 정글을 보는듯한 모습으로 아주 강렬했습니다.
녀석들의 속사정을 모르고 처음 만났기에 손톱이 너무 긴 걸 보고 한 놈 한 놈 손톱을 깎아주었습니다.
19살 된 녀석까지 손톱을 깎여주자 너무도 순한 양처럼 발톱도 깎아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자기들끼리 “합격!”이라고 외치는 의미를 둔한 저는 알아차리지를 못했습니다.
근무 첫날 그 녀석들의 개별파일을 보는 순간 저는 얼어붙어버렸고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던 찰나에 한 녀석이 선생님은 합격하였으니 자신에 대해 알려준다고 하면서 자신이 보도된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너무도 자신의 아픔을 공유하는 그 아이의 눈빛을 보고 그날 밤 어찌나 울었던지..
더욱이 1년 사이 너무도 잦은 선생님의 교체로 인해 서류는 거의 전무하였고 기본적인 업무조차 리퍼를 받지 못한 상태라 밤새기 일쑤였습니다.
밤마다 사무실에서 숨죽여 우는 소리를 그 녀석들이 들었는지 아침만 되면 제가 사라졌는지 살피러 오는 아이들 통에 차마 그만 둔다는 생각조차 못하게 되었습니다.
참 사람은 환경에 익숙해지는 적응하는 동물이라서 그런지 점차 그 생활도 안정화 되어갔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치는 사내 녀석들을 감당하면서 저 역시도 억세어져서 촌 아줌마들처럼 아이들 미용비 아낀다고 직접 가위로 머리 자르고 제가 차마 함께 할 수 없는 목욕탕은 재대로 씻고 나오지 않아서 때수건으로 팔꿈치 발꿈치 밀고 아프다는 녀석들 성화에 등짝도 때려가며 그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음식을 잘 못해서 초장이랑 참치랑 비벼서 주기도 하고 세탁물도 몽땅 세탁기 넣어 돌려서 아이들 교복이 물들기도 하고 실수 투성이었지만 그 녀석들은 잘 버텨주었습니다.
외제차 유리를 깨뜨려서 머리 조아리는 제 모습에 같이 눈물 바람도 하고 길에서 만난 멋진 아저씨에게 제 연락처를 주면서 중매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쌀을 사서 오다가 허리를 삐끗하여 아이들 등교 후에 잠시 짬을 내어 수영장을 끊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수영장에 다녀오고 난 뒤에 수영복을 마당에 걸어놓으면 사무실 방문 앞에 놓아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수영복이 다 건조 되어서 넣어놓는 줄 알고 지나쳤는데 매번 물이 흐르는 수영복을 또 사무실 앞에 넣어두는 것 이었습니다.
차후에 제가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되면서 그곳을 다른 유능한 선생님께 넘겨드렸는데 그 선생님께서 그 수영복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 주셨습니다.
빨랫줄에 걸린 수영복을 보고 그 녀석들이 혹여라도 여자 처녀 선생님인데 자신들이 겪었던 성과 관련된 좋지못 한 일을 당할까 싶어서 계속적으로 수영복을 다른 이가 보지 못하게 사무실에 넣어둔 것이었다고..
자신들 나름의 선생님을 지키는 일이었다고...
모자란 나는 그것도 모르고 물이 흥건한 수영복이 사무실 방문에 있을 때마다 역정내면서 또 마당에 걸고 그 녀석들의 가슴 졸이는 마음을 어찌 그리 몰라주었는지..
현아, 강아, 욱아, 혁아, 서야... 우리 꼴통들
너무도 치열하게 사랑해서 웬수라 여겼던 너희들로 인해 나의 26세는 너무도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