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서 발표한 2014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우리 나라 열 가정 중 한 가정은 한부모 가정이라고 합니다.
이혼, 사별과 같이 서류상 명확하게 한부모 가정으로 정의되는 숫자만 집계한 거니 체감 가능한 실제의 수는 더 하겠지요.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시리아 난민의 배고픔과 추위 소식에도 말로만 안타깝고 마는데 막상 제 일이라면 사소한 것도 낯설고 유난스러워 지는 이 심리가 말입니다.
제가 열 여덟살 가을을 맞았을 때 부모님은 끝내 이혼하셨습니다.
이후 어머니 밑에서 그 흔한 한부모 가정 아이로 자라왔지만 경제적으로도 유복했고 두 부모 가정일 때도 아버지와 유대 관계가 좋았던 편은 아니었기에 어떠한 결핍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혼할 때가 된 요즘에서야 그게 참 어색합니다.
제가 신부인 결혼식은 상상이 잘 안 되고 제가 가족이 되고 싶다며 인사 드릴 집에서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 받아 드리실지 참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또 자신 없는 기분이 드는 건 제가 볼 때 너무 훌륭했던 저희 부모님조차 지켜내지 못한 혼인 계약을 나는 평생에 걸쳐 과연 지킬 수 있을까, 누구랑 그 약속을 맺어야 지킬 확률이 커지는 건가 하는 생각 때문 입니다.
그런 저런 생각으로 오묘한 기분에 빠져 있을 때쯤 월에 한 번씩 지역 아동센터로 봉사 활동을 다니는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한 부모 가정 아이들이 모여 방과 후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든 생각은 ‘부모님의 이혼 앞에서 미처 뭘 느끼거나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어쩌면 그런 것조차 할 줄 몰라했던 어린 나를 만나 보고 싶다.’ 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뿐인 방문이니 시간적으로도 큰 부담이 없다 여겼습니다.
처음 아동센터에 갈 때는 그 전, 다른 기관들에서 경험해본 봉사활동을 연상하며 무척 고되고 힘들고 최소한 뭐가 불편하기라도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센터도 센터 아이들도 지극히 평범하기만 하였습니다.
제 손길이 없으면 칭얼 대거나 뭔가 부족해 하는 어린이들을 연상하고 방문했는데 실제 만난 아이들은 저 없이도 너무 잘 놀고 오히려 어색해 하는 저에게 어떻게 하면 된다고 알려 주기까지 하는 착하디 착한 꼬맹이들이었습니다.
정체 모를 당혹도 알 수 없는 허무도 있었습니다.
‘대체 이 아가들이 뭐가 부족해서 도움을 받아야 되는 사람들로 분류되어 있는 건가’ 의아할 뿐이었습니다.
먼저 방문하던 봉사 단체에게 그 분위기는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습니다.
의아하다고 말 하는 것조차 너무 어색할 상황이라 몇 달을 그저 아이들과 뛰고 뒹굴고 웃으며 평범하게 놀았습니다.
누구도 고뇌하는 청소년이나 자아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는 아이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때로 소심하고 짓궃은 아이들도 있긴 했지만 그 수위는 어느 아이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지극히 흔한 범주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봉사활동 한다고 하면 소위 연상할 만한 애로나 그에 따른 뿌듯함은 없었습니다.
저에게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기존 봉사 활동자들에게 만큼이나 평범한 일상의 나날에 지나지 않을 때쯤 이었습니다.
반 년에 한 번 날을 잡고 원장님과 봉사활동 자원자들이 만나는 단체 미팅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초대 받았고 지역 아동센터 원장님도 저희와 함께 하셨습니다.
원장님은 자녀뻘 되는 저희를 붙들고 이렇게 조언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보실 때 저희 아이들, ‘그렇게 가난해? 그렇게 힘들어’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관으로 봤을 때 우리 아이들, 정말 거리의 평범한 아이에 지나지 않으니깐요.
그런데 이 아이들 가운데는 집에서 상상도 못할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요즘 흔히 뉴스에 나오는 신체 폭력뿐 아니라 이혼한 아버지가 엄마를 찾아와 아이들 앞에서 강간을 한다든지 심한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저희 센터에 오셔서 유치한 놀이들, 평범한 놀이들을 왜 하나 싶으시겠지만 제가 그 놀이 활동을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같이 아이들과 그저 놀아 달라고 요청 드리는 건 딱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렇게 거름망 없이 나쁜 어른들의 문화, 아픈 사회의 모습을 접한 우리 아이들이 여러분을 통해 건강하게 놀고 밝게 감정 해소하는 방법을 배우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때 왜 저는 2007년 세계가 함께 아파한 미국 버지니아 주립 대학교 조승희 사건이 떠올랐을까요?
안전하기 위해 외면했던 이웃의 아픔, 정말 흔하디 흔한 교통사고 주의 전광판 같은 한 개인의 슬픔이 모두의 무관심 속에 썩고 곪아 터진 결과, 무차별 총아쇠로 변모했던 바로 그 일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어린 날의 저를 만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무 어려서, 누가 헤아려 주지 않으면 먼저 나서 제 기분이 어떤지, 제 생각이 무엇인지 형체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마음은 사고는 어른의 그것들과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아직 혼자서는 그것을 들여다볼 능력이 없는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그것을 조금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네 살아 있음 아닐까요?
귀찮아서, 남의 일이니깐 관심 없어서 넘어 간다면 최악의 경우, 제 2의 조승희 사건과 같이 재앙으로 닥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제가 겪었듯 있는 줄도 몰랐던 내 안의 나, 나의 세상을 좀 더 넓히고 크게 성장시키는 시간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