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화통역사예요. 수화를 통해 농인들과 얘기하고 공감하며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일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많은 일상을 농인들과 함께 하다 보면 기쁨이나 슬픔, 고된 감정이나 벅찬 일도 함께 함께 느끼고 공감하게 되는 일이 많아요.
아무리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한다 해도 공감을 토대로 통역을 하다보면 감정이입이 되어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느끼게 되거든요.
가족을 잃는 슬픔을 함께 느끼기도 하고, 힘들게 노력하다 목표를 이루었을 땐 제가 다 벅차고 설렙니다.
저는 본래부터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습니다.
그래서 수화통역은 감정소모가 상당한 일이었고 일을 시작한 후 3~4년 만에 권태로운 시기가 찾아 왔습니다.
사실 제가 하는 일은 싫증이 나거나 타성에 젖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늘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리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구술을 해야 할 때도 있으며, 이러한 내용들을 그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선 꾸준한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거든요.
하지만 반대로 감정소모를 하는 일이 많아 자신이 소진되어가는 느낌이 들 때가 찾아 온 겁니다.
그러던 저를 다잡아준 일이 4년째 되던 해에 있었습니다.
가을 즈음이었어요. 어느 날 한통의 영상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농인들은 음성전화를 쓸 수 없어서 문자나 영상통화를 이용해서 연락을 하곤 해요.
나이가 드신 분들은 문자보다 대개 영상전화를 이용합니다.
그날도 여전히 영상 속 그분은 특유의 익살스런 말투와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물론 수화로 말입니다.
“동생이 찾아왔는데 도통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얘기 좀 해줄래?”
당시 스마트폰이 보급되던 시기는 맞지만 그분이 가지고 계신 건 폴더형의 작은 휴대전화였어요.
그러다 보니 통화품질이 매끄럽지 않았고 말씀을 듣기도 전에 “에이 그냥 됐어 내버려둬 다음에.” 하고 전화를 끊으셨어요.
표정을 보니 급한 일은 아니신가보다 하고 생각을 했었죠.
그리고 다음 날, 그 분이 직접 센터를 방문하셨어요.
여전히 익살스럽고 순수한 표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 동생이 와서 나한테 뭐라고 하거야 전화한번 해봐줄래?”
제게 건네주신 번호로 동생분과 통화를 했어요.
근데 말씀을 전달하기도 전에 저도 모르게 그렁그렁 시야가 흐려졌습니다.
어머님 임종이었다고 하셨거든요. 동생 분 말씀으론 오빠는 늘 엄마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고 했습니다.
임종 전에 꼭 아들을 봤으면 했다는 말씀. 오빠가 일하는 곳을 찾아 손을 잡아끌었던 동생의 말이 그분에겐 그냥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겠지요.
이런 얘기를 통역하는 도중에 왈칵 눈물을 쏟을 수는 없었어요. 사각턱이 되도록 이를 악다물고 맺힌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고 용을 써야 했고 겨우 말씀을 다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 분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시며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전달해줘서 고마워 이제야 알았어”
그리곤 바깥 계단 앞 창가에서 한참을 서성이셨어요.
옆에서 지켜보던 후배 통역사는 코까지 빨개지며 눈물을 훔쳤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결국 그 분은 어머님 가시는 길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해요.
아들을 보고자 하신 어머님의 마음 때문이었겠죠. 동생 분 말씀으론 30분 내지 1시간도 못 넘길 거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어머니는 하루 더 아들을 기다려 주셨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동생들과 자주 왕래하시며 사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직도 순수하시고 여전히 유쾌하세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센터에 근무하며 그분과 함께 소통하고 돕고 때로는 그분께 위로 받을 때도 있으며 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 달라진 것은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있어요.
바로 “이제 알게 됐어 고마워”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일인지 뚜렷이 각인이 되어버렸거든요.
통역사들은 대개 중립을 지켜야하고 지나친 감정이입은 지양해야 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늘 좋은 일만 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그만큼 함께 슬프고 함께 아플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럴 때 나는 이 일을 이것 때문에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동기부여 합니다.
제가 수화와 농인을 사랑하고 여기 몸담을 수 있게 해준 그 이유죠.
적어도 의사소통으로 인해 더 아픈 일이 생기지 않게 저는 오늘도 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