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7살 진수라고 해요. 엄마랑 같이 살고 장애전담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저는 말이랑 한글을 아직 못해서 내년에 학교는 못 들어가서 어린이집을 1년 더 다녀야 된데요.
엄마랑 저랑은 깜깜한 지하방에 살아요. 우리 집은 낮에도 불을 켜고 있어야 하고 창문은 있지만 열어도 소용은 없어요. 밖은 다 막혀 있어서 바람이 들어오지는 않지요. 그런데 저희 이사 간데요.
분명히 엄마가 돈이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사를 가게 되었을까요?
깜깜하고 냄새도 나고 우리 집은 아무도 오지 않아요. 이사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엄마는 핸드폰 게임만 하구 있어요. 밤인지 낮인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계속 핸드폰만 보고 있어요.
배가 고픈데 엄마가 밥을 안주네요. 할 수 없어요 그러면 저는 혼자 밥통을 열고 밥을 퍼먹어요.
저........ 사실은 저는 말을 잘 못해요. 저는 표현을 하는 건데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답답하면 소리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어요.
5살 때 어린이집을 다녔지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놀아달라고 확 밀어버렸죠. 제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이 있으면 친구 것도 뺏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친구들은 말을 잘했지만 저는 말을 못했고, 저랑 놀아주지 않았어요.
선생님도 저는 다른 방에 가 있게 했지요.
어느 날 원장님이 엄마에게 상담을 요청했어요.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그리고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게 하는게 좋겠다구요.
어린이집가면 친구들이 있어서 좋은데 이젠 어린이집에 갈수가 없어요.
어두컴컴한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게 되었어요. 밖에 나가고 싶어서 밖으로 혼자 나갔었는데 엄마가 놀라셨나봐요. 그다음부터는 현관문의 열쇠를 제 키가 안 닿는 곳에 다시 설치했어요.
저도 나가고 싶은데 엄마만 밖에 나가시고 문을 잠그고 저만 혼자 집에 있는 날이 있어요. 무서울 때도 있지만 괜찮아요. 저는 용감하거든요.
그렇지만.........심심해요.
엄마와 지하방에 이사를 와서 방에만 지냈어요.
어느 날 우리 집에 손님이 왔어요. 우리 집엔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낯선 사람들에겐 엄마가 문을 잘 안 열어 주시는데 오늘은 열어주시네요.
주민센터 선생님들이에요. 그분들이 핸드폰을 들고 왔길래 제가 너무 좋아서 던지기도 하고 게임이 있나 없나 만지작만지작 했지요.
눈치를 보니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핸드폰을 마구마구 만졌는데 제가 귀엽다며 다음번에 다시 오겠다고 하셨거든요.
그날 이후로 그 손님들이 자주 오시네요. 쌀도 가지고 오고, 라면도 가지고 오고, 제가 좋아하는 장난감도 가지고 왔어요.
문을 잘 열어주지 않던 엄마가 이젠 잘 열어주세요.
엄마도 그 손님들이 고마운가 봐요.
통합사례관리사인 제가 진수네 가족을 만나게 된 건 전입을 온지 얼마 안되는 기초수급자여서 기초수급담당자와 방문을 갔을 때였습니다.
이상야릇한 쾌쾌한 냄새가 나는 지하를 들어가 진수네 집에 방문했을 때 뚱뚱한 비만의 엄마와 똑같이 닮은 진수가 있었습니다.
경계를 늦추지 않는 엄마와 눈 마주침도 안 되고 물건을 이것저것을 던지며 과잉행동을 보이고,
“ 아, 어” 만 할 줄 아는 언어발달이 더딘 진수는 영락없이 발달이 지체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30대 후반의 고단한 인생살이가 아이하나도 벅찼는지 외출 시엔 아이만 두고 외출한다며 아이가 불이라도 내면 어떻게 하냐며 이웃주민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6살인 아이가 말을 못하고 한글을 모른다며 본인이 가르쳐서 어린이집을 보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막막했습니다.
방의 벽에는 아이손이 닿을까봐 높게 한글 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이가 발달이 지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엄마 또한 이해력이 떨어지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방어기제는 매우 강했습니다.
내부사례회의를 통해 사례관리대상자로 선정하고 정기적인 방문을 통해 조금씩 라포를 형성하였습니다.
엄마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우선 아이의 정확한 발달 진단이 필요했습니다. 병원비가 많이 나올까봐 엄마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간적은 없었습니다.
아이의 과잉행동으로 아이와 외출이 어려웠습니다. 외출 시 아이는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 위험천만했습니다. 또래에 비해 살이 많이 쪘고 힘이 세서 손을 잡고 다녀도 아이는 원하는 것을 보거나 잡기위해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면 혼비백산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인근 병원의 사회사업실에 의뢰하여 아이와 엄마의 검사비 일체를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통합사례회의에 사례를 상정하였습니다.
슈퍼바이저와 병원의 의료사회사업가, 아동발달연구소, 아이가 다닐 수 있는 장애전담 어린이집 원장님, 중구 드림스타트의 담당자들이 모였습니다.
첫째 엄마의 불안한 심리가 아이를 더 산만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우선 엄마와 라포를 형성 후 심리 상담을 연결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번의 결혼, 그리고 이혼, 배우자의 사망, 장애아의 양육 등 심리상담은 엄마에게 꼭 필요한 사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방어기제는 매우 강했기 때문에 언어상담보다는 놀이치료나 작업치료를 통한 상담이 맞는다는 슈퍼비전을 받았습니다.
둘째 아이는 검사결과 전체적인 발달지연으로 일반 어린이집 재원은 어렵기 때문에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보내야 한다는 의견으로 엄마와 상의하여 양육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린이집을 다시 보내보자는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셋째 가랑비에 옷 젖듯이 모자교육이 필요하겠고, 교육의 부재가 나타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특수교육이 아이에게 요구됨을 슈퍼비전 받았습니다.
아무도 지켜봐주지 않았던 진수네를 주민센터 사례관리를 중심으로 돕고자 하는 기관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우선 저는 진수의 장애등록을 위해 특수교육기관과 병원의 자문 및 진단을 받기위해 서둘렀습니다.
그 결과 지적장애 3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진수를 데리고 장애전담 어린이집원장님의 상담도 받았습니다.
원장님과 엄마의 첫 상담을 위해 진수를 교실에 잠깐 두었을 뿐인데 다른 아이들을 밀치고 교구를 다 쏟아버리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선생님들이 대처를 못했었다고 나중에야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그랬던 진수는 현재는 휠체어 타는 친구들도 도와주고 교구정리도 제일 잘하고 선생님의 심부름도 가능해서 반에서 꼭 필요한 아이가 되었답니다.
진수가 낮에 어린이집을 가면서 엄마는 양육부담이 완화되었고 그동안의 주민센터의 지원에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 진수모는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지만 조금은 맘이 편해졌는지 심리상담을 받고자 결정을 하였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복지재단 상담센터에서 성인상담을 8개월 동안 받게 됩니다.
아이를 사랑해야하고 보호해야 했지만 방법을 몰랐던 엄마는 조금씩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상담을 받는 동안 엄마는 시간을 아주 잘 지켜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왔다고 합니다.
본인과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을 상담센터에서 만나서 또 친구를 사귀기도 했습니다.
진수의 언어발달 향상을 위해 언어 치료실을 주 2회 다니면서도 먼 거리지만 운동을 시켜야 한다며 진수와 엄마는 걸어서 치료실을 오가기도 하였습니다.
오가는 길에 시장을 들러 진수에게 이것저것을 보여줍니다. 그 옆에 천냥 마트에 들러서 또 구경을 합니다.
엄마는 진수가 좋아해서 꼭 들른다고 말했습니다.
둘만의 오고가는 코스가 생겼고, 호기심이 많은 진수는 이제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졌습니다.
“ 선생님 우리 진수가 이제 말을 많이 해요. 엄마 이게 뭐예여?, 이건 또 뭐예여? ” 하면서 말을 잘한다는 겁니다.
알면서도 질문을 계속 한다며 귀찮지만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선생님 우리 진수가 처음에는 창피했어요. 그런데 어린이 집 부모교육 때랑 면담 때 갔었는데요. 이젠 우리진수가 반에서 제일 잘한데요.”
엄마는 진수가 어린이집에서 활동한 사진을 보여줍니다. 생일파티사진, 물놀이 갔던 사진, 소방관 옷을 입고 소방서 체험한 사진, 캠프에 갔던 사진, 교구를 멋지게 꾸민 사진들을 자랑합니다.
사진속의 진수는 함박 웃으며 장난끼 가득한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진수와 엄마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진수는 다양한 경험과 교육을 접하게 되었고, 엄마 또한 사례관리사의 정기적인 만남과 상담기관을 통해, 어린이집의 부모교육이나 언어 치료실 원장님의 면담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안정을 찾았습니다.
진수와 자신을 인정하면 할수록 편안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진수네 지하방에 갔을 때 바람한 점 통하지 않는 곳에서 책에 관심을 보이는 진수에게 두 권의 책을 읽어주고 나왔습니다.
선풍기 바람도 더웠고 그 바람에 의지해서 30분만 앉아 있었을 뿐인데 바지가 흠뻑 젖을 만큼 땀이 났었습니다. 닦아 내어도 금방 자라는 벽지의 까만 곰팡이는 호흡기가 약한 진수가 감당하기엔 어려웠습니다.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로 실려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대로 둘 수만은 없어 어린이 재단의 주거지원을 신청하였고, 다행히 선정되어 보증금을 지원받아 진수네는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입임대주택 빌라 4층으로 햇빛이 고스란히 진수와 진수엄마의 것이 되는 곳이랍니다.
깜깜하고 바람한 점 통하지 않았던 지하방에서 아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었고, 핸드폰게임과 텔레비전만 이 모자가정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빌라의 제일 위층인 4층으로 해와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통하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하게 되었답니다.
방문길에 진수와 엄마를 보았습니다. 언어 치료를 받고 오는 길에 두 손 꼭 잡은 다정한 모습에 알 수 없는 흐뭇함이 밀려왔습니다.
사례대상자들에게 저 행복을 지켜주고 찾아주기 위해 제 발걸음은 앞으로도 더 바빠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