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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사들의 웃음
  • [자원봉사활동수기 | 201702ㅣ글 김태욱님ㅣ그림 허정언님] 천사들의 웃음
내가 이 곳에 처음 오게 된 날은 2015년 1월 높디 높은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려 땅 위에 소복소복 쌓이던 날이었다. 그 날은 유난히도 날씨가 추웠다. 내 앞에 세워져 있는 것은 빨간색 벽돌에 아담하게 지어진 것으로서 보고만 있어도 차갑게 얼어있는 나의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듯한 훈훈한 느낌을 주게 하는 건물이었다. 건물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암 판정을 받고도 웃음이 가시지를 않고 마치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자신들이 짊어져야 하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의 큰 짐을 나눠지고 난 후 가벼워진 짐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의 평안함 또한 서로 나누는 모습들 속에서 새 하얀 추위의 표면위에 거듭나 보이는 따스한 핑크빛 행복과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꺼져가는 심지의 불씨와도 같은 자신들의 생명을 불행히 생각 하지를 않고 죽음의 문턱에 서서도 여유있는 웃음을 잃지 않는 노인들을 봤을 때 ‘어떻게 저렇게 죽음앞에서 의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노인들의 모습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송글송글 맺혀 있는 검버섯과 잘린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이 한올한올 만들어진 주름살에는 평생동안 그림자처럼 당신의 옆에 따라 붙어 다녔던 희로애락이 섞여 있을 것이다. 할머니들께서는 처녀시절 앵두같은 입술과 고운 피부로 뭇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을 것이며 할아버지들께서는 싱그럽고 허탈하게 웃는 소박함 그리고 주름 하나 없는 해맑은 모습 지니어 세상을 아름답게 했겠지?
하는 생각을 하노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연민의 정이 치솟아 오른다. 마른 땅 질은 땅 신발이 다 닳도록 쉴 새 없이 걸어온 인생의 여정 마지막을 한 발 앞두고 쉬어 가는 이 곳의 노인들은 어쩌면 이미 하늘의 천사가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나는 매주 3번 이 곳에 계신 노인들을 만나러 온다. 내가 처음 와서 하는 일은 노인들의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목욕을 시키는 일을 한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여기 계신 노인들도 건강하신 모습으로 퇴원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다. 하지만 살아생전에 퇴원을 하시는 분들은 아직까지 없었고 지금도 없다. 내가 이 곳에 일요일마다 올 때에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노인들이 한 분, 두 분이 아니었다. 그럴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슬픔은 이루말 할 때가 없는지라 홀로 화장실 한 켠에서 몰래 울기가 일수였다. 나는 울때마다 내 볼에서 타고 내리는 눈물이 노인들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큰 위로가 되었음 하는 마음 간절했다.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마음속 깊은곳에서 짜여진 핏방울과 같다고 얘기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이 곳에 와서 청소를 할 때에 바닥을 대걸레로 닦고 노인들의 침대에 새 하얀 침대보를 깔고 곳곳마다 청소를 할 때면 왠지 내 마음도 닦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 진다. 그게 바로 내가 이 곳에서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간암을 앓고 계시던 어느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내게 한 많았던 인생의 곡절을 말씀해 주셨다. “이보게 총각, 젊은 사람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지는 않나?” “아뇨, 힘들기는요. 저는 지금이 최고로 행복합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응어리 져 있는 것이 있다네.”“그러세요? 어떤 일이 있으신거에요?” “30년전이었지. 나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네.
그리고 시어머니께 우리 아들을 맡기고 일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날 우리 아들이 베란다에 있던 쌀통위에서 놀다가 10층에서 떨어져 이 세상을 등졌네. 아직도 그 생각하면 후회가 막심하다네.”“그런일이 있으셨어요. 유감이에요. 할머니.” “그런데 지금은 아주 홀가분 하다네. 하늘나라로 갈 그 날이 다가옴을 느낄 때 마다 우리 아들을 볼 수 있다는 꿈에 젖어 있어. 아들이 죽은 뒤로 술에 연명하다가 지금의 병을 앓게 되었네.” 하시며 쓴 웃음을 자아내셨다.
“그건 할머니 잘못이 아니잖아요. 운명이 그렇게 만든거라고 생각하심 안될까요? 할머니 그런 생각 하지 마시구요. 오래 사셨음 좋겠어요.” “그런가? 그럼 자네 인생을 내게 좀 빌려 줄 수 있겠는가?”하시며 내 말이 부질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셨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할머니께 위안이 조금이나마 됐으면 했다. 무색투명한 유리잔에 김이 서려 유리잔에 비추인 오색찬란한 불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것과도 같은 옛 기억을 떠올리신 할머니께서는
참고 있던 눈물을 이내 터뜨리고 마셨다. 그리고는 쓰디쓴 인생의 서러움 나부껴 호두껍질과도 같이 주름만발한 작고 따스한 손으로 내 손을 살포시 잡아 주셨다. 정말인지 오래 사셨음 좋겠다 하는 마음이 간절히 와 닿았다. 하지만 그 할머니께서도 2개월 후 당신의 빈 자리를 채우시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얼마나 죄책감이 크셨으면 남은 평생을 술로 연명하시다가 간암말기 까지 오셨는지...?
내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보지는 않았지만할머니의 마음을 십분 헤아릴 수 있었다.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다. 남았던 세월이 얼마나 한이 맺혔을까? 하는 생각의 서글픈 마음 가실 줄을 몰랐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하시고 췌장암으로 인하여 항상 고통 받으시던 할아버지의 목욕을 시켜드리며 나눈 대화도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게 지긋이 말을 건네셨다.
“내가 여기 온지 3개월이 됐는데 자네같이 젊은 사람은 처음이야 자네 복 받겠어.”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께 공손히 내 자신을 숙이며 말씀드렸다. “할아버지 저는 여기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생활 할 수 있다는게 큰 복이에요. 이만한 복이 또 어디있겠어요.” “생각하는 것도 자네 얼굴처럼 이쁘구만.” “할아버지께서는 몸이 힘드시지만 저는 가끔 마음이 힘들때가 있는데 그땐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랬구만, 마음이 힘들 때는 이 늙은이한테 다 얘기 해. 나는 자네 덕을 보고 있는데 나도 자네의 마음을 돌봐야 되지 않겠어.” 하시며 생긋이 웃음을 자아 내셨다. 할아버지께서는 4개월 후 세상의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벗어 버린채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정이 들었던 노인들의 빈 자리를 볼 때면 마음속이 착잡해져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기차는 떠나가고 신작로에 먼지만 자욱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 곳에 올때마다
노인들께 먹을 것을 사드린다. 작은 성의를 베푸는 것이지만 그 성의를 매우 고마워하는 노인들의 모습속에서 이미 천사가 된 노인들의 웃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현재 오래된 것에 대한 귀중함을 알고 있다. 책이 오래되면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지만 귀한 가치는 그 색깔에 고스란히 베여 있는 것이고 오래 묵은 포도주의 가치가 더 고귀한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이 세상에서 귀하고 값진 보석을 소유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아니, 값으로는 매길 수 없는 그 이상의 존귀함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는 오늘도 행복한 사람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이 순간 생각해보게 된다. 더울 때는 그늘을 마련해 주고 비가 올 때는 가리워 주고 다리가 아플 때는 앉게 해주고 겨울에는 땔감이 되어 주기까지 한다. 노인들의 간절한 바램은 나도 모르는 사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죽음에 희망을 두고 있는 노인들을 보노라면 너무나도 가엽기 이를 때 없다.
아직은 죽기에 너무 아까운 어르신들이다. 내 바램은 항상 지혜로운 어르신들 모두가 살아계셔서 이 세상을 희망의 길로 인도하여 주셨음하는데... 나의 간절한 희망이 있다면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 높게 떠 있고 청아하게 흘러내리는 시냇물 곁에서 참새들 떼 지어 소리 높여 지저귈 때 노인들과 함께 꽃구경 한 번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