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성굴댁, 시집가도 되겄네.”
“어르신, 자꾸 이러시면 저 이제 머리 못 잘라 드려요.”
“나도 이 돈 안 받으면 이제 머리 안 자른다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바쁜 사람한테 매번 이렇게 신세를 지는데 염치가 있어야지.”
“머리를 안 자르시면 머리 길러서 길게 땋고 다니시게요?”
“그렇게라도 해야지, 뭐. 열일곱 살 처녀처럼 왜 이쁘지 않을랑가?”어르신의 대답에 다시 한바탕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그럼 이거라도 먹고 가. 이건 먹어도 되는 거지?”하면서 지난 가을에 따서 보관해 오던 홍시며 집에서 삶아 온 고구마, 손주가 사왔다며 비닐봉지에 싸 온 과일 등을 앞을 다투어 내어 놓으신다.
나는 그곳에서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따뜻한 정을 먹는다.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하는 몇 천원이 아까워서, 혹은 몸이 불편해서 머리를 자르고 긴 머리에 비녀를 꽂는다는 어느 어르신의 하소연에 머리를 손질해 드리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었다.
비록 뛰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어르신들의 머리를 단정하게 손질해 드리면 만족해하고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비록 업무처리시간 이외에 짬을 내느라 몸과 마음이 바쁘고 힘은 들지만 예전에 배웠던 미용기술이 이렇게 쓰일 수 있어 뿌듯하고 내게 이런 재주를 주신 신께 감사하다.
노인복지관에서 생활관리사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는 어르신들과의 만남이 단순히 내가 돌봐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주일이 넘게 뵙지 않으면 안부가 궁금해지고 걱정이 되는 가족이 된 것 같다.
방문할 때마다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로 맞아 주시고, 몸이 잘 말을 듣지 않아도 열심히 운동도 따라하고 호응해 주는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마치 내 부모님 같아서 애정이 느껴지곤 한다.
요즘은 시골에서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많다보니 혹시라도 정기적으로 드리는 안부전화를 안 받으시면 걱정이 되고 마음이 더 쓰인다.
더구나 평생을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당신들의 여생을 위한 준비는 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힘들게 생활하는 분들을 보면 나 역시 내 부모님의 자식이자 내 아이들의 부모 된 입장에서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내가 담당한 지역의 한 어르신은 비교적 넉넉하게 지내시다가 자식이 사업을 한다고 전답까지 다 팔아 사업자금을 대줬다가 결국은 전 재산을 잃고 자식들까지 연락도 되지 않아 생활조차 곤란해진 어르신이 있는데,
얼마 전 댁을 방문했더니 얼굴이 더 야위고 말씀조차 어눌하게 느껴졌다.
깜짝 놀라 어디 아프신가 여쭸더니 틀니가 깨져 접착제로 붙였는데 자꾸 떨어져서 음식을 씹을 때마다 입천장에 닿아서 아파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겠다며 깨진 틀니와 다 헤진 입천장을 보여 주셨다.
사실 틀니는 그 전부터 여러 번 깨져 임시로 접착제를 붙여서 썼었는데 이젠 그것도 여의치가 않고 입맛이 없으니 물을 길어다 밥을 해먹는 것도 귀찮아서 밥도 잘 안 해 먹게 된다며
힘없이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어르신 몰래 눈물을 감추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얼마 후 어르신이 마음에 걸려, 드시기 편한 죽을 준비해서 찾아뵈었더니 그 틀니마저 끼지 않아서 아예 사용 할 수 없냐고 여쭤보았다.
세상에,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에 틀니를 빠뜨려서 아예 음식을 씹을 수 없으셨다. 다시 할 형편도 안 되어 장화를 신고 화장실 오물통에 들어가서 한참을 뒤져서 찾아내 물에 몇 번을 씻었지만 그냥 쓸 수 없을 것 같아 며칠 째 물에 담가놓고 계셨다.
“아, 이건 아니지 않은가? 평생을 힘들게 자식과 가정을 위해 사신 어르신의 삶이 이렇게까지 힘들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나는 그길로 어르신의 틀니를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고 뛰어다녔다. 다행히 65세 이상의 어르신들께는 틀니가 보험적용이 된다는 말을 듣고 어르신께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한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결국 어르신이 그동안 아껴두셨던 비상금 일부와 동네 주민들, 치과병원의 도움을 받아 새로 위, 아래 틀니를 다시 할 수 있었다.
또한 어르신의 딱한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부면장님이 직접 나와서 살펴보시고 아랫집 주민의 양해를 구해 아랫집에서상수도를 연결해서 어르신 주방에 연결하고 윗집에서는 흐르는 물에 호수를 연결해 허드렛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해 주셨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으시며 내 손을 잡고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시는 어르신의 모습에 그동안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힘은 들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이런 것을 사람들은 ‘보람’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경로당에 다니시며 여러분들이 함께 식사도 하고 낮 동안 이야기도 나누시며 지내시는 분은 그래도 정기적인 영양교육이나 맨손체조도 하시며 비교적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시기에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묻고 직접 찾아가서 뵙는다. 그런데 요즘은 복지관에서 조리한 밑반찬이나 각처에서 지원한 식재료나 생필품을 들고
찾아 뵐 수 있어 두 손은 무겁지만 발걸음은 더욱 가볍기만 하다. 반찬배달 봉사를 겸하니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실 수 있고 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전해 드릴 수 있어 마음만은 행복해지곤 한다.
이젠 내가 담당한 어르신들의 각각의 사정과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된 것 같다. 나도 생활관리사이기 이전에 주부이자 부모이고 자식이기에 집안 살림도 해야 하고 홀로되신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니도 보살펴 드리고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자식 밑반찬도 챙기는 등
업무 이외의 시간에도 너무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병원에 갔다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혼자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실 생각에 미리 시간약속을 하고 출근 전에 병원에 들러 어르신을 모서다 드리곤 한다. 또는 병원에서 약을 타거나 단순한 심부름 같은 것은 가능하면 한다.
처음에는 여유 있는 시간도 보내고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했던 일이 10여 년이 된 지금은 내 삶의 활력이 되고,
나를 기다리고 필요로 하는 어르신들이 있기에 삶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하루하루가 즐겁고 보람차다.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집을 정리하고 현관문을 나서는 내 발걸음이 가뿐하고, 나를 기다리고 계실 어르신들을 뵐 생각에 내 마음은 3월의 봄바람만큼이나 상쾌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