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독거노인분들의 안전을 점검하는 독거노인 생활관리사입니다. 2017년 1월 4일 수요일, 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할머님을 만났습니다.
첫날 할머님께 드릴 반찬을 들고 집을 들어선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할머님의 방문은 반쯤 부서져 있었고, 방문 앞에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있었습니다.
할머님은 화가 나신 듯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한 상태로 손목에는 헝겊이 둘둘 감겨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치신 모양이셨습니다.
사실 할머님은 눈이 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으며, 말도 못하는 장애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묻고 지금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어도 인기척에 점점 흥분하며 젓가락, 칼, 망치 등을 가져와서 휘두르고 손짓, 발짓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당황했지요. 도둑이 들었던 것은 아닌지, 몹쓸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오가는데 할머님의 몸짓을 보니 점점 대충 짐작이 되었습니다.
전날 밤, 방문이 잠겨버린 것입니다. 할머님은 그 방문을 열기위해 젓가락이며 칼을 사용해서 문 사이를 찌르며 열려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다 여의치 않자 망치로 문을 두드려 부수게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나서야 겨우 방문을 열었고 들어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고 뜯는 와중에 손목을 베어 다치셨고 응급처치로 헝겊을 찾아 손목에 칭칭 감아놓으셨던 것입니다.
‘지난 밤 얼마나 긴 시간을 혼자 잠긴 문과 씨름하셨을까? 얼마나 답답하고 두려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안타까움이 가슴 깊은 곳부터 차고 올라왔습니다.
할머님은 손목을 가리키고, 팔을 두드리고, 어깨를 두드리며 우는 소리를 내고 얼굴을 찡그리시는데 내가 보기에 아프다는 표현을 하시는 듯 했습니다.
온 몸을 휘두르며 또 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뭔가를 말씀하시는 듯 했습니다.
순간, 저는 할머님을 품에 안았고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님의 표현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 답답함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다친 손목을 잡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제가 오기 전까지 얼마나 서러웠을지 생각하며 세 살배기 아기를 안아주듯 가슴에 할머니의 머리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힘들었냐고, 괜찮다고 속삭였습니다.
제 숨소리를 듣는 것인지, 말을 하는 울림을 느끼는 것인지, 할머님은 제 허리를 꼭 끌어안고 한참을 계셨습니다.
할머님은 손과 팔, 어깨를 가리키며 아프다는 표현을 하시는 듯 했습니다. 많이 아파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보이지도 않으니 그저 끌고 병원으로 갈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할머님의 보호자인 아드님 연락처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습니다. 할머님이 다치셨고, 상처는 심하지 않지만 오셔서 뵈어야 할 것 같다고, 병원도 모시고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요.
아드님은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어 그 집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수리가 되어 있었고, 쉽게 잠기지 않도록 문고리도 교체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님 손에는 깨끗한 붕대가 매여 있었습니다. 가져간 반찬을 쥐어드리자 손사래를 치며 뭐라고 말씀하시는 흉내를 하십니다.
아마도 ‘뭘 이런 걸 또 가져왔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려니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가지고 간 도시락 통을 찾아 내어주셨습니다.
저는 2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주1회 방문하여 직접확인 및 주2회 전화를 통한 간접확인을 해야 했지만 할머님과는 전화를 할 수 없어 고민 끝에 나는 주3회 직접 찾아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또 다른 고민은‘이 할머님이 나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주1회는 반찬을 들고 갔고 2번은 생각 끝에 과일 1~2개를 챙겨갔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과일이라도 함께 먹으며, 내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지요.
포도를 한 송이 챙겨간 날, 씻은 포도 한 송이를 가운데 놓고 하나를 따서 입에 넣어드리고, 할머님 손에 하나를 따서 쥐어드리며 내 입으로 가져다가 먹었습니다.
할머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더니 당신 한 개 잡수시고 하나를 제게 주셨습니다. 그렇게 할머님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사과, 하루는 오렌지, 하다못해 초코파이나 요구르트 하나라도 챙겨가서 나눠먹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의 어르신들께는 웃어 보이고 밝게 인사하고, 전화로도 대화를 할 수 있었지만 이 할머님과 할 수 있는 것은 먹을 것을 나누고 손을 잡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1~2번 찾아가니 할머님께서 표현하시는 바를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이 왔었다. 3일 자고 갔다. 아프다.” 같은 간단한 표현이지만 내 얼굴을 만지고 알아봐 주시니 기뻤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주 반찬과 간식을 들고 할머님을 찾아갑니다. 불러도 들을 수 없고, 대답도 못하니, 주 3회 숨바꼭질이 따로 없습니다.
하루는 아무리 찾아도 할머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늘 거실이나 안방에 계시던 할머님이 작은 방 전기 주전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커피를 드시는 모습을 뵐 수 있었습니다.
어깨를 살짝 두드리자 소스라치게 놀라시더니 이내 저를 확인하시고 웃으셨습니다.
할머님께서 커피 잔을 내려놓으신 후에 함께 햇빛이 따뜻하게 비치는 곳으로 나왔습니다.
그 날은 할머님을 안고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단 한 가지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시든, 들을 수 있게 해주시지 어떻게 이런 분이 살 수 있었겠어요?” 라며 원망 섞인 기도가 하염없이 나왔습니다.
내가 왔다며 손만 가져다대도 놀라는 분이신데 사시는 동안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던 모양인지 손짓, 몸짓, 얼굴표정으로 바쁘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속상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무서운 것이 나타나는 것 같다는 말 같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가슴에 할머니 손과 제 손을 포개어 갖다 대고 두드리며 들리진 않으시겠지만 “ 많이 답답하셨어요?” 라고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할머님은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전 할머님을 꼭 안아드렸고 할머님도 제 등을 꼭 잡고 한참을 계셨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할머님의 머리에 제 이마를 대고 손을 잡고 가슴에 올린 채 할머니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답답함, 외로움, 어려움 등을 하나님께 모두 맡기고 기도하는 동안 할머님과 소통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끝날 때까지 함께 두 손을 모으고 계셨던 할머님이 기도가 끝나자 환하게 웃어주시는데 그 웃음은 제가 그 전에 보았던 미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환하고 밝고 티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 할머님을 찾아갈 때, 몇 년 전 딸에게 받은 향수를 뿌렸습니다. 일부러 손을 할머님 앞에 흔들어 향기를 맡으시도록 해 보았습니다.
할머님은 보이지 않는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며 저를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잡자 할머님은 더 이상 놀라지 않으십니다. 미리 저를 알아보시고 웃으며 맞아주십니다.
비록 보이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지만 우리만의 방법으로 할머님과 전 소통하며 가까워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