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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성이의 날개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702ㅣ글 임진희님ㅣ그림 정경재님] 대성이의 날개
한참 예민한 중학교 2학년 대성이를 만난 건 제법 추위가 느껴지는 11월이었습니다. 어느 날 동사무소에서 ‘가사간병서비스’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그냥 보통의 서비스 의뢰인줄 알았습니다. 단순한 의뢰인줄 알고 상담을 하러 간 곳은 아주 오래된 연립의 3층이었고 올라가는 계단부터 어지럽게 쌓여있는 물건들과 퀘퀘한 냄새들이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똑똑, 계세요?’ 대성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방문하기로 약속을 했고 저는 문을 두드렸습니다. 희미하게 ‘들어오세요’라고 목소리가 들렸고 강아지가 짖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항상 이용자들 집을 방문할 때는 긴장감이 듭니다. 가끔 적대감을 드러내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참 예민한 사춘기 학생이라 조심스러웠습니다. 대성이는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꼼짝 않고 앉아서 인사를 했습니다.
대성이의 상황은 시청 사례관리자를 통해 듣기는 했습니다. 엄마랑 둘이 사는데 엄마가 자살기도를 해서 현재 병원에 3개월째 입원중이라고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혼자서 3개월을 살았다니,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방문하여 살펴보니 어지러진 방안에 개똥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냉장고 안은 먹지 않는 지원도시락 반찬들이 가득 쌓여서 썩고 있었습니다.
아무 표정이 없는 대성이는 덤덤하게 자신의 불편함을 이야기 했습니다.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씻기가 힘들고, 변기가 물이 내려가지 않아서 불편해요’ 마치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중학생 답지 않게 침착하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더 안타까웠고 얼굴에서는 어두운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나마 용돈을 쪼개서 산 강아지 재롱에 대성이는 유일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대성이에게 다녀온 후 저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사지원’이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현재의 상태로는 어느 선생님도 선뜻 서비스를 들어가시겠다는 분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한시가 급한데 요양보호사 선생님 한분과 제가 감당하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시청사례관리자에게 서비스의 어려움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어려울 것 같다 였습니다.
결국 센터장님께 말씀드리고 도움을 받아 ‘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보일러를 교체해주실 분과, 도배·장판을 해주실 후원자님을 연결하였습니다. 대성이의 상황을 전해들은 후원자님들은 하루라도 빨리 대성이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자고 입을 모아 말씀하셨고, 곧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모두들 대성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변화된 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거실에 떡하니 방치되었던 침대매트리스를 힘을 합해서 밖으로 빼놓고 일사분란하게 각자 맡은바 임무에 집중하였습니다. 저 역시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써 대성이를 보았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엄마의 입장이 되어 주방정리를 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정신없이 청소를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어 후원자님들께 음료수를 드렸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네요” 멋쩍은 인사에 후원자분들은 밝은 미소로 지으며 “아니에요. 얼마나 보람된지 몰라요. 요즘 시대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데 모두 한마음으로 이렇게 봉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쁨이 되는지 몰라요. 십시일반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껄껄껄” 굵은 땀방물 만큼 굶은 목소리로 웃으시는 봉사자님의 모습이 마치 푸근한 우리네 아버지의 얼굴이었습니다.
지저분했던 벽과 장판, 보일러, 변기 등 대성이가 불편해 했던 부분들을 수리를 하고 정리를 하니 겉모습은 낡은 연립이었으나, 집안은 마치 신혼집 같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가 되었고 우리들은 대성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마무리를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저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대성이가 먹을 저녁을 준비해놓기 시작했습니다. “밥이 먹고 싶어요. 집에서 한 밥이요”
상담 갔을 때 대성이가 말했던 것 중에 가장 가슴 아프고 기억에 남는 말이었습니다. 엄마 없는 빈자리를 인스턴트 음식으로 의존했고 그 결과 대성이는 바짝 마르고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밥과 불고기, 계란말이를 준비해 놓고 맛있게 먹을 대성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이 되었지만 오늘 수고해 주신 여러분들의 마음은 아침 해가 떠오르듯 희망과 기쁨이 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이제 따뜻한 물도 잘 나와서 너무 좋아요. 밥도 맛있구요. 우리집이 아닌 줄 알았어요”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도 잘 하지 않고 목소리도 작았던 대성이가 놀라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래 대성아, 너는 혼자가 아니야. 엄마가 나오실 때 까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대성이만큼 저의 목소리도 즐거웠습니다.
그 후 집안이 변화되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방문으로 대성이는 스스로 생활을 조절하며 학교생활을 잘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엄마가 퇴원을 하게 되어 같이 지냄으로써 대성이도 안정을 찾게 된 것 같았습니다. 엄마도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방문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한층 밝아진 모습이 되었고, 대성이와 관계도 회복되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처럼 게임을 좋아하는 대성이의 꿈은 ‘컴퓨터프로그래머’입니다. 가상의 세계에서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듯 대성이 또한 사회에 나가서 소중한 일원이 되어 자기가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큰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엄마의 행복과 대성이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대성이에게 크고 튼튼한 날개를 달아주고 싶습니다. 봉사자님들의 후원과 대성이의 꿈으로 키워진 날개는 ‘사회’라는 커다란 하늘에서 높이 날며 땅의 모든 것 들을 감싸 안는 따뜻한 날개가 될 것입니다. “날개를 펴자 대성아! 너는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