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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연이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
  • [자원봉사활동수기 | 201702ㅣ글 신우철님ㅣ그림 옥주희님] 인연이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
등·하굣길 허름한 의자에는 우리 학교 지킴이 할아버지가 항상 앉아계셨다. 할아버지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저녁시간만 되면 친구들이랑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을 사먹기 위해 몰래 나갈 궁리를 자주 세웠다. 할아버지와 협상을 하다가 실패하면 몰래 나가기 일쑤였고, 걸려서 혼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렇게 철이 없고 노는 것을 좋아했던 나였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로를 굳힌 뒤로부터는 점점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모습을 할아버지는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찬바람이 가득했던 2월 중순, 졸업을 하루 앞 둔 나는 할아버지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진로가 뚜렷하니 지금처럼만 계속 나아가면 성공할 것이라는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셨다.
그동안 잘못을 너그러이 이해하고 조언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 나는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사진을 찍어드렸다. 사진을 보고 만족하신 할아버지는 다음에 올 때 한 장 인화해서 와달라고 부탁하셨고, 나는 꼭 갖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졸업을 하고 몇 개월 뒤, 다시 찾은 학교에는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을 하셨고, 근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한 나는 수소문 끝에 할아버지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간절했던 마음은 서로의 목소리가 닿게 만들었고, 할아버지께 사진을 전달해드릴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농사로 재배한 채소들을 받으러 간 적이 있고, 할아버지의 농사 일손을 돕기 위해 혼자 자택을 찾아간 적도 있다.
그 뒤로부터는 한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시간이 되어 댁에 방문했을 때에는 고민이 한 가득이신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달 말에 집을 빼줘야 하는데 내부와 마당에 있는 엄청난 양의 짐은 할아버지와 나의 힘으로 옮기기 역부족 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할아버지의 걱정만 쌓일 것 같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옮겨드리겠다고 약속드렸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할아버지의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에 고등학교 친구, 후배, 타 학교 학생들 9명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할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1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시골의 댁을 방문하였다.
도우러 온 모두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임했고, 짐을 정리하며 할아버지의 추억과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 흘러, 이사 갈 집 옆 컨테이너로 짐의 대부분을 옮기는 것을 성공하였다. 두 명이서 했다면 하루 만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였겠지만, 많은 사람이 한 뜻으로 모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버렸다.
함께했던 할아버지는 도움을 주러 온 사람들 입장에서는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도움을 받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고맙다고 하셨다. 이 일을 끝난 뒤에는 바쁜 일정으로 인해 한 동안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할아버지는 지난 번 일에 대해 재학 중인 대학교로 감사의 편지를 보냈고, 이를 알게 된 학교 측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학교에서는 지역사회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것에 대해 선행상을 표창할 것이라고 하였다.
뒤늦게 보게 된 할아버지의 자필 편지에서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고 진심어린 고마움이 담겨있었다. 이 편지 덕분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 실제로 행하게 된다면 큰 변화를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전에 기관이나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느낀 점들과는 정말 다른 느낌 이였고, 이러한 일이 앞으로의 삶에서도 지속적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베풀었던 할아버지와 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통해 알리는 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 새로운 인연이 닿을 수 있도록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이, 또 여러 사람이 함께 노력한다면 따듯한 이웃사회가 될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