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무료급식소에서 일하던 여느 때와 같은날, 급식소에 깔끔한 차림의 할아버지 한 분이 오셨습니다.
아무리 봐도 노숙인 같아 보이지 않아서 조심스레 여쭈어 보았습니다. “어르신, 이곳은 노숙인 급식소입니다. 식사해결이 어려운 상황이신가요?” 할아버지는 귀가 안 들리신다며, 종이에 써 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글로 여쭤보니, 할아버지는 정중히 인사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수원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식사를 해도 될런지요?”
깔끔한 차림과 반듯한 태도에 믿기 어려웠지만 더 여쭤 보기엔 실례가 될 것 같아 식사를 준비해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러 오셨습니다. 늘 같은 옷이시긴 했지만 깔끔한 차림에 항상 정중하게 인사하셨습니다. “여기 밥이 참 맛있어요.
여기 오면 늘 따뜻하고 좋아요” 반듯한 노신사의 모습에 다른 말은 여쭙지 않았으나, 의문은 커져갔습니다.
‘그냥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시지, 왜 노숙을 한다고 하셨을까? 아무리 봐도 노숙인은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식사 한 끼를 위해서 한 시간이나 지하철을 타고 오시는걸까?’
어느날, 수원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할아버지 생각에 ‘설마 진짜 여기서 노숙을 하시겠어?’하며 대합실을 둘러보았습니다.
정말 할아버지는 구석 의자에 앉아서 청각장애가 있는 노숙인을 돕고 계셨습니다. 빵, 우유 등 먹거리를 사서 할아버지께 다가갔습니다.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시며 “아이고, 여기까지 어떤 일이십니까”물으셨습니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르신 뵈러왔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할아버지는 온화한 미소로 대답하십니다.
“제가 올해 88세입니다. 노년에 어쩌다 보니 노숙생활을 하게 되었네요.벌써 3년째입니다.”
할아버지의 생각보다 많은 연세에 놀라 계속 노숙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다음날 사무실로 방문을 권해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사무실로 오셨습니다.
그동안의 사정을 말씀해주셨지요. “6.25 때 아내가 실종되었어요. 상실감이 커 자녀들은 어머니께 맡기고 일에 매진했지요.
아버지와 경북 울진에서 광산을 했습니다. 자녀들은 뒷전이었어요. 알아서 잘 자랄 줄 알았지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늦은 나이까지 사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부도가 나서, 광산이 문을 닫고, 제가 갈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자녀들에게 연락해보니, 연락이 안되더라구요. 주소로 찾아 가봤지만 이사 가고 없더라구요.
갈 곳이 없어서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노숙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평생을 반듯한 사업가로 지내셨기에, 노숙을 하면서도 자기 관리를 잘 하신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움을 드리고자 작은 지하방을 준비하고, 전입신고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였습니다.
병원비를 지원하여 치료를 하고, 청각장애 등급을 받았습니다. 여러 고마운 분들의 도움에 생각보다 잘 진행되어, 두 달째부터 할아버지는 자립이 가능하시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사무실로 찾아 오셨습니다. 이제는 보청기덕에 소통이 쉽게 되었습니다.
아들보다도 훨씬 어린 저에게 반듯이 인사하시며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8월 27일에 수원역으로 저를 찾아 오셨지요. 제가 그때 일이 너무 감사해 날짜도 기억합니다. 2년 반 넘게 노숙을 하면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신 분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에게 일어난 일이 꿈만 같습니다. 그간의 노숙생활을 다 잊을 만큼 제 인생에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잠시 침묵하시다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자녀들에게 찾아가도 늦지 않을까요?
이제라도, 아버지 노릇을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아이들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 덜 미안할 것 같아요.
지금 만나러 가도 될까요?” 저는 손을 잡아드리며“
물론입니다, 분명히 자녀들도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저도 아버지가 계시지만, 무언가를 해주셔서가 아니라, 아버지란 존재만으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자녀분들이 어디에 사는지 알아보고, 확인되면, 저와 함께 가보시지요.
만나서 서로 얘기 나누면 분명히 금방 풀어질 겁니다. 가셔도 됩니다. 아니, 꼭 가셔야 합니다.”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자녀들의 거주지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워서, 아직까지 파악이 어렵습니다.
사실 할아버지의 건강상태가 빠른 속도로 나빠지셔서 걱정입니다.
할아버지는 요즘 꿈을 꾸신다고 합니다.
기차를 타고 자녀들을 만나는 꿈,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꿈, 6.25 때 헤어진 아내를 만나는 꿈...
올 봄에는 할아버지가 꼭 자녀들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봄이 다 가기 전에 꼭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합니다.
영화 제목처럼 자녀들을 만나는 그날이 오기를
“지금, 만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