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남양주시 사회복지관 동부희망케어센터에서 지역사례관리사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지역사례관리사로 일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며, 기억에 남는 분들 또한 많습니다. 그 많은 만남들 중에서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잊혀 지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잘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해 안부전화를 하고 있는 김00어머니입니다.
처음 김00어머니를 만난 건 2016년 9월이었습니다.
전화로 다른 분과 상담을 막 마치던 때 수급자 담당 공무원이 김00어머니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여기 어머님이 너무 힘들다고 하시는데 저희 쪽에서는 더 이상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선생님이 도움을 주시면 좋겠다 싶어서 모시고 왔어요. 부탁드려요.”
김00 어머니는 뽀글뽀글한 앞머리 파마가 인상적인 분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역담당사회복지사 박유진입니다. 제가 어머님과 어떤 부분을 같이 나눴으면 하실까요?” “음...그게...제가... 어... 좀... 아파서...흠...”
이야기를 하시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어머님을 보고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 하시는 게 불편하신건가 싶었습니다.
“혹시, 어머님. 지금 이야기 하시는 게 불편하신 건 아닐까요?
여기서 편하게 이야기 하시는 게 불편하시다면 제가 가정으로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눠도 돼서 여쭤봐요.”
“집으로도 찾아와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그럼...내일...집에서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으실까요?
선생님 바쁘실까봐..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서...”
“^^ 제가 집으로 찾아가서 이야기 들어 드리고 대화하는 게 제 일이예요~ 그럼 내일 어머님이 편하신 시간을 알려 주시면 그 시간에 맞춰 집으로 찾아뵐게요~ 댁이 어디신지 알려 주세요.”
“아..그럼..점심 먹고...보는 시간으로...그런데 저희 집이 찾기가 좀 어려운지 다들 못 찾더라고요..제가 약도를 그려 드릴께요.”
사례관리사로 일하며 본인의 집을 찾느라 고생할 복지사를 생각하며 그렇게 열심히 집 약도를 그려 주시는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김00어머님의 따뜻한 마음, 배려심이 느껴졌습니다.
다음날, 어머님이 종이 위에 열심히 그려 주신 약도 종이를 들고 찾기 어렵다고 걱정하시던 그 집을 찾아 갔습니다.
약도를 보고 찾아간 저를 보며 김00어머니는 놀라셨습니다.
“어머, 한 번에 찾아 오셨어요? 하하하..선생님 길 잘 찾으시네요. 대단하다.”
“어머님이 약도를 너무 잘 그려주셔서 한 번에 찾아 올 수 있었어요. 저 사실 엄청난 길치예요. 다른 가정에 방문할 때 1시간 걸린 적도 있어요. 못 찾아서...하하”
김00어머니와 이야기 하다가 본 집 모습에 저는 놀랐습니다. 높게 솟은 아파트들 사이로 어울리지 않는 슬레이트 지붕을 한 조립식 집이었습니다.
“선생님, 들어오실 때 머리 조심하세요. 여기가 낮아서 머리 다쳐요.” “아, 네~ 조심해서 들어갈께요.”
현관문을 여는 순간 눈에 들어 온 것은 하얀 변기였습니다.
제 눈이 가는 곳을 아셨는지 김00어머니는 “아~ 요거 보고 놀라셨죠? 화장실이 밖에 있는데, 사정이 있어서 돈 모아 여기에 변기를 놨어요.
내가 대장암이어서 하루에 30번 넘게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쪼그리고 피를 쏟아냈어요... 이러다가 변기에 빠져서 뭔 일이 날 수도 있겠다고 해서 모으고, 모아서 여기에 변기를 설치했죠. 그랬더니 얼마나 편한지...
하하..보기는 좀 그런데 그래도 이게 저한테는 아~주 소중한 변기예요. 보물변기!”
김00어머님의 소중한 변기를 지나 방으로 들어서니 방 안으로 들어가서야 김00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00어머니는 5년 전 대장암으로 수술을 했습니다. 갑자기 찾아 온 암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세상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카드회사에서 경리로 근무하며 남편을 만났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댁에서 기대하고 있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남편과 점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을 안 좋은 사람이라 말하게 되는 게 싫어서 결국에는 합의하에 헤어지기로 했고 이혼 후 짐을 챙겨 나왔다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 예쁜 아이를 선물로 주지 못한 게 미안하죠. 그래서 서로 뭔가를 요구하는 것도 미안해서 제가 짐을 꾸려 나오는 걸로 더 이상 연락 하지 않고 각자 행복하게 살기로 했어요.”
웃으며 이야기 하는 김00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게 보였습니다.
“아기 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어요.
아이를 선물로 받지 못하셨지만 저는 어머님이 다른 선물을 받으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선생님~ 아이를 낳지는 못했지만 여기 아는 동생이랑 같이 살게 되고 그 동생의 아들이 저한테 진짜 아들처럼 잘해줘요.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산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렇게 절 도와주시겠다고 찾아 온 선생님도 있고, 너무 좋네요. 못 도와주신다고 해도 저는 괜찮아요. 이렇게 와서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신 것만으로도 좋네요. 감사해요.”
이렇게 시작된 김00어머니와의 만남은 몇 차례 계속되었습니다. 의료비에 대한 염려로 의뢰되었던 김00 어머니의 상황은 수급권자 상태가 유지되며 해소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에 방문하여 김00어머니와 이야기 하다가 도시공사 지원인 LH전세임대주택 대상으로 선정이 된 우편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김00어머니는 “본인부담금 어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고 하는데, 당장 먹고 살아가는 것도 정부에서 도와주셔서 생활하는데 보증금 부담할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보기만 했었던 거죠.
여기서 살며 비 오는 날 비가 새지 않을까, 천둥 치고 번개 치면 집이 무너지진 않을까 공포스럽긴하죠.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깐 순응하며 살고 있는 거죠.”
“이 집에서 벗어나서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지 않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제 형편에 이렇게 살 수 있는 집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감사하게 생각해야죠.”
단념한 듯 덤덤하게 이야기 하는 김00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보물단지 변기를 끌어안으며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는 슬레이트집에서 번개 칠 때 마다 집 안 전기를 다 끄고 떨고 있을 김00어머니를 생각하니 가만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머니, 저랑 이사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는 건 어때요?” 김00어머니는 놀라 눈이 커졌습니다.
“네? 이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
그런 꿈같은 일이 이뤄질까요?” 미안한 마음에 이사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출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속 앓이만 하고 있으셨다고 나중에 털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김00어머니와 이사 가기 프로젝트!!
주거보증금 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재단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하였고 깨끗하고 안락한 집으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 후 김00어머니 집에 이사 축하 세탁세제를 사서 방문했습니다.
김00어머니는 “선생님~~너무 좋아요. 계약부터 신경 쓰니라 고생 많으셨죠. 아무도 없는 제가 이 집으로 이사 올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 덕분이에요. 처음 만난 날부터 선생님 같은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내 딸이었음 좋겠다 생각했어요. 감사해요.”
이야기 하며 저를 안아주셨습니다.
“딸처럼 편하게 생각해 주시고 늘 늦게까지 일하지 말고 건강 챙기라고 전화해서 걱정도 해 주시는 게 오히려 제가 더 감사했죠. 앞으로도 종종 연락드리며 보고 싶다고 전화 드릴꺼예요. 건강 챙기시며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거주지 지역변경으로 담당 사례관리사가 변경되었지만 저는 가끔 김00어머님께 연락을 드립니다.
김00어머니와 통화하면 정말 엄마가 딸을 걱정하듯이 이야기 하시고 늘 마지막 말로는
“유진선생님, 고마워.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을 꼽으라면 유진선생님이야. 건강 합시다.”
빨간 동백꽃이 피는 요즘, 자꾸 김00어머님이 생각납니다. 오늘 전화 한 통 해야겠어요.
‘보고 싶어 전화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