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센터

  • 선물이 왔어요. 특별한 봄 선물이요.
  • [사회복지종사자수기 | 201807ㅣ글김혜라님ㅣ그림조예진님]
늘 무뚝뚝한 표정으로 센터에 들어오는 동민이(가명)는 올해 중학교 3학년입니다. 내가 동민이를 처음 만난 건 이곳 지역아동센터 복지사로 입사를 한, 지난해 7월이었습니다. 센터의 모든 아이들은 동민이를 무서워합니다. 동민이는 분노조절 장애를 갖고 있는 듯 화가 나면 화를 참지 못하고 센터 이곳저곳을 부셔버립니다. 문짝도 여러번, 우편함도 여러번, 책상도, 책도, 보이는 데로 부수고 던집니다.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봐 온 탓일까요? 센터 아이들은 동민이 곁에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센터 아이들에게 동민이의 말 한 마디는 복지사들의 열 마디 말 보다 효력이 좋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동민이를 무서워 한다는 뜻이겠지요. 사실 저도 동민이에게 말 걸기가 무서웠습니다. 동민이는 복지사들의 말에 눈을 치켜뜨고 아니꼽다는 듯 무시해 버리기 일수였으니까요. 그래도 센터의 규율이 있으니 규율을 지키지 않을 땐 훈계를 해야 합니다. 무섭다고 피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 날은 동민이가 스마트 폰으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동민아, 들어가자. 광고시간이다” 저녁 식사 전 센터 모든 아이들을 모이게 하고 늘 광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게임에서 지고 있었던 탓 이었을까요? 동민이는 저의 부름에 대꾸도 않은 체 게임에 열중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했습니다. “동민아, 게임 그만하고 들어가자” 그러자 동민이는 핸드폰을 집어 던지며 화를 냅니다.
“에이씨x, 들을 것도 없는 광고를 왜 자꾸 들으라고 해요. 짜증나게 하니까 죽었잖아요. 아우~” “동민아, 너 그런 행동은 좀 아니다. 핸드폰은 왜 던져” “아~~ 짜증나게 하네. 야, 씨x 누구야, 어떤 새끼가 내가 핸드폰 하는 것 꼰질렀어? 나와!” 동민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핸드폰을 여러 차례 책상에 칩니다. 핸드폰 액정은 깨져 버렸고 동민이는 깨진 폰을 보며 더 고함을 칩니다. “동민아, 아무도 고자질 한 사람 없어. 그만 소리 지르고 마음 가라앉히자” “아, 꼰지른 놈이 없는데 샘이 저를 보고 인사도 없이 광고 들으러 가자는 소리만 먼저 할 사람이예요? 샘은 안 그러잖아요. 그래도 인사부터 해 줬잖아요” 순간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민이에게 나는 자신을 반겨주는 샘이었던가 봅니다. 늘 먼저 인사해 주는 샘이었던가 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는 동민이가 고마웠습니다. 사실 센터 아이들이 동민이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저도 동민이가 무서웠습니다.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고 늘 화난 표정이었으니까요. 대답도 없고 좀처럼 맘을 열어주지 않는 동민이와 소통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무시당하기 일수였습니다. 하지만 인사만큼은 모든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동민이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환하게 인사해 주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동민이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환하게 인사해 주었습니다. “동민이 왔니? 오늘은 일찍왔네. 동민아, 밥은 먹고 온 거야? 동민이 오늘 이발했나보네. 다른 날 보다 멋지다. 동민아, 오늘은 어째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일 있었어? 동민이가 오늘은 중딩들 중 일등으로 왔네....” 수많은 인사에도 돌아오는 건 흘낏 쳐다보는 작은 눈짓 정도였습니다. 속으로는 뭐 저런 애가 있어? 할때가 많았지만 동민이를 향한 나의 인사는 늘 변함이 없었지요. 그게 통했나 봅니다. 반응도 없는 자신을 향해 언제나 인사먼저 해 주던 샘이, 그날은 아무 인사도 없이 식사광고 하니 들어가자는 말만 한 것이 동민이를 서운하게 했나 봅니다. 동민이에게 사과했습니다.
“동민아, 그건 샘이 잘못했네. 인사먼저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한 사람이라도 안 들어오면 실장님께서 광고를 하지 않으시겠다 하시니 샘이 맘이 급했나봐. 정말 미안하다. 동민아, 샘 사과 받아 줄거야? 샘이 일부러 그런건 아니야. 그저 모든 아이들을 빨리 안으로 들여 보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이해해 줄거지? 정말 미안하다” 속 마음 같아선 같이 꽥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샘은 안 그러잖아요” 하는 말이 귓전을 맴돌아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동민이는 끝내 사과를 받지 않고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쌩~ 하니 집단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녁 시간이 끝나고 퇴근하면서 동민이 어깨를 툭 쳤습니다. “동민아, 아직도 화 난건 아니겠지? 샘이 사과했는데 안 받아주면 나도 슬프다. 아까 너, 핸드폰 던지면서 소리 지를 때 심장 멎는 줄 알았어. 너무 무서웠어. 그렇게 계속 무서운 표정하고 있으면 샘, 이제 무서워서 인사도 못한다. 화 풀어~” 하니 고개를 숙인 체 동민이가 혼자 씩 웃습니다. 얼음장 같은 마음이 풀렸나봅니다. 나는 그렇게 동민이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 너 웃은거야? 야, 웃으니까 진짜 멋지다. 그렇게 좀 웃고 살자” 동민이의 미소를 본 건 입사 후 처음인 듯 합니다. 동민이에게 한껏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동민아, 그 미소는 샘 사과도 받아준거라고 믿어도 되는거지? 그런거지?” 하니 이번엔 얼굴을 들고 환하게 미소 지어줍니다.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잇몸을 보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동민이도 나도 서로를 신뢰해 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행복한 미소였습니다.
이제 동민이와 저는 센터에서 문제없는 사이가 되었을까요? 아니요. 어렵게 열려진 아이의 마음은 상황 상황에 부딪힐때마다 다시 굳게 닫혀버리곤 합니다. 센터 아이들과 함께 계획하고 있는 제주여행을 위해 조별 모임을 진행할 때 였습니다. 중학생을 조장으로 선임해야 하는데 동민이는 자꾸 하기 싫다 합니다. 그래서 동민이와 조용히 얘기를 시도했습니다. 동민이를 잘 이해시켰고 거의 90% 하기로 마음을 먹은 찰나, 특수아동 보호자가 저를 찾기에 네~하고 달려나갔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특수아동이 벗어던진 양말을 어쩌다보니 동민이 허벅지에 올려놓은체로 말입니다. 갑자기 “아이 씨x, 지금 뭘 내 다리에 올려 놓은거야”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뿔사! 또 동민이의 비위를 건드렸습니다. 하~ 거의 90% 설득했는데...... 다시 동민이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큭~ “너 화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웃기냐, 동민아, 미안하다. 샘이 그걸 왜 너 다리에 놓은거니?
큭~ 나 왜 그런거야?” 동민이가 화내는 모습이 이제는 무섭지가 않고 귀엽기만 합니다. 그래서 자꾸 웃음이 나왔나 봅니다. “동민아, 샘은 너희들이 벗어던진 양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닐 수 있고, 너희들이 더럽다고 난리치는 것들도 다 치워줄 수 있어. 물론 동민이것도 말이야. 샘이 동민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호진이도 사랑한단다. 그래서 저 더러운 양말도 아무렇지 않게 손에 들고 있었던 것야. 너 다리에 올려놓은 건 정말 미안하지만...”
동민이는 제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휙 나가 버렸습니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 여전히 반복되었지만 동민이는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 나가는 방법을 배워 가고 있었습니다. 화를 참지 못할 때면 벌떡 일어나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지만 다시 들어와 쑥쓰러운 듯 제 주변을 맴 돕니다. 사과의 표시겠지요. 먼저 인사하는 적이 없던 아이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쭈뼜거리기도 합니다. “샘, 나 왔어요. 안녕하세요” 하는 무언의 인사겠지요.
제가 “어, 동민이 왔네. 안녕” 하고 반겨주면 그냥, 그냥 씩 웃으며 나갑니다. 어느날 동민이가 말합니다. “샘, 제 좌우명이 뭔지 아세요?” “완전 궁금한데? 뭐야?” “영어로 이야기 합니다. Let’s not get upset (화 내지 말자)” “오~ 대단한 결심인데!” 그렇게 좌우명을 만들어 선포한 이후, 동민이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센터의 문짝이 부셔졌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눈을 지긋이 감고 주먹을 꽉 쥐는 것으로 마무리 하니까 말입니다. 동민이의 결심은 우리 센터에 새로운 봄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더 이상 문짝이 부셔질 리 없는 따뜻한 봄, 분노의 고함으로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포근한 봄. 언제든지 환한 미소를 볼 수 있는 사랑의 봄을 말입니다. 동민아, 특별한 봄 선물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