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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일본’ 마음의 불을 켜다
  • [자원봉사활동수기 | 201807ㅣ글백승도님ㅣ그림조예진님]
‘오겡끼데스까..’오타루에 대한 기억 흰 눈이 덮힌 설원에서 한 여인이 큰 소리로 외친다. ‘오겡끼데스까?!..’. 누구나 알 법한 일본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이다. 어린 시절 보았던 이 영화의 배경이 훗카이도의 항구 도시 ‘오타루’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오타루 눈빛거리 축제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을 시작하게된 동기는 특별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찾고 싶었고 우연한 기회를 통해 봉사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봉사활동을 경험했던 소중한 과정은 나를 성장시켰다. 자주 드나들던 봉사활동 커뮤니티를 통해서 오타루 눈빛거리 축제 대학생 자원봉사단 모집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과 일본, 서로에 대한 믿음이 밑받침되는 오타루 눈빛거리 축제’ 어렸을 적부터 TV속 해외자원봉사단의 모습을 보면 항상 가슴 한 구석에서 용솟음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믿고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훗카이도의 서쪽 해안 항구도시 오타루에서 펼쳐지는 오타루 눈빛거리 축제는 1999년 1회로 시작되어 매년 적설량이 가장 높은 2월에 열흘간 진행된다.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대규모 장비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이웃도시 삿포로 눈축제와는 대조적으로 주민들과 한국 자원봉사자들의 힘만으로 진행되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축제이다. 때문에 자원봉사자과 지역 주민들은 서로를 믿고 하나가 되어야만 했다. 2003년 제 5회 때, 8명의 한국인 자원봉사자가 참여한 이래, 한국에서도 그들을 중심으로 OKOVO(otaru korean volunteer의 약자)라는 단체가 형성되어 해마다 꾸준히 참가해오며 축제의 성공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일본의 도시와 국내 민간 대학생 봉사단체가 이렇게 오래토록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데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밑받침이 되었다.
‘와따시와 미나상오 신지떼이마스.(저는 여러분을 믿고 있습니다)’ 50여명의 한국봉사단원들은 4시간 가량의 비행 끝에 신치토세 공항에 내렸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군대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추위가 온몸을 엄습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훗카이도의 추위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극한의 수준이었다. 또한 설상 전시장 중 하나인 운하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바람이 더욱 매서울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푼 우리 단원들은 다가올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오타루시 회관에서 모임을 가졌고, 축제조직위원회분들께서 축제의 전반적인 진행절차와 작업요령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인상깊었던 점은 그 해까지 8회째 한국 대학생봉사단원들을 맞으셨기 때문인지 조직위원회분들께서 매우 친절하셨고 열린 마음으로 우리를 받아주셨다는 점이다. 어설픈 한국어로 진지하게 자기소개를 하시느라 고생하시는 일본 관계자분들의 정성이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조직위원장님께서 환영사에서 말씀하셨던 ‘미나상오 신지떼마쓰(여러분을 믿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축제 기간 내내, 추위에 힘들 때 마다 내가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주문이 되었다. 지역축제의 자원봉사인만큼 오타루 눈빛거리 축제 자원봉사는 특별했다..
보통의 해외봉사는 대부분 개발도상국에 가서 그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지원해주거나 교육 및 문화사업을 전개하는 등 일방향성을 띄는게 대다수다. 하지만 ‘오타루 눈빛거리축제’ 자원봉사는 주민들이 서로 믿고 합심하여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작업이었다. ‘매서운 한파,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녹이다.’ 단단하게 얼어버린 눈을 파내기 위한 작업도 힘들었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강추위였다. 장갑을 두겹으로 끼고 보호양말을 두,세겹 신어도 손과 발이 꽁꽁 얼었다. 장화 틈 사이로 눈이 들어와서 동상으로 고생할 때는 ‘그냥 집에서 따뜻하게 쉴 걸’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올 법했지만 단원들과 서로를 믿고 독려해주며 이겨낼 수 있었다.
어느 일본 관광객분께서는 “이웃 나라 한국에서 열정을 갖고 봉사하러 온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시며 기념품과 간식을 제공해주셨다. 또한 오타루 시내의 어느 치과의사분께서는 우리 봉사단 전체에게 ‘소바’를 대접하기도 하셨다.
외국 청년들을 향한 그들의 열린 마음과 따듯한 믿음을 느끼며 ‘나는 그동안 우리 주변의 외국인들을 이유없이 불신하지 않았나’라며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이들이 내게 전해준 울림은 앞으로도 내 가슴 깊이 간직될 것이다.
축제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뒤, 환송회에서 우리 봉사단원 50여명은 오타루 시장님께 감사패를 받고 일본 자원봉사자분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봉사자분들이 공항까지 나와서 우리 단원들의 귀국길을 눈물로 배웅해주었다. 이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춥지만 따뜻했던 ‘설국'에서의 한달은 따뜻한 봄날에 눈이 녹듯 빠르게 지나갔다.
믿음의 시작은 ‘마음의 불을 켜는 순간’에서 봉사란 거창한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편견없이 서로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믿음이라는 씨앗이 척박한 땅에도 어김없이 움튼다. 해외자원봉사를 통해서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고, 진정한 의미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어느 일본 자원봉사자분의 “여러분을 통해서 한국과의 거리가 줄어들었음을 느낍니다”라는 말씀은 내 지난 한달에 대한 보상과도 같았다. 오타루의 넓고 깨끗한 자연과 일본 봉사자분들의 따뜻한 마음, 넉넉함으로 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오타루 눈빛거리 축제의 슬로건은 ‘마음의 불을 켜다’이다. 오타루에 대한 기억은 내게 몇가지 의미를 던져준다. 촉각을 다투며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서 마음의 불을 켠 이가 몇이나 될까?
나조차도 마음이 아닌 눈에 불을 켠 채, 무언가에 쫒기며 그리고 쫓으며 살아가고 있진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제는 눈보다는 마음의 불을 켜서 좀 더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또 타인이 믿을 수있는 내가 되기를 기원한다. 봉사정신은 전염된다. 내가 오타루에서 감염된 이 ‘바이러스’가 불어올 봄바람을 타고 사회에 전염되었으면 좋겠다. 춥지만 따뜻했던 오타루를 다시 추억해본다. ‘마음의 불’을 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