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사찰에서는 복지관으로 봉사활동을 나가곤 했다. 아주 조그마한 사회공헌 활동은 약간의 보람을 남겼지만 몸으로 때우는 사회공헌의 아주 일부라는 생각에 회한이 생기곤 했다.
남들처럼 내 돈의 일부를 꺼내어 주위사람을 돌보고 싶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평생 봉사활동만을 하고 싶진 않았다.
남편의 정년퇴직 후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고마운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물질로 남을 돕는 일이 소원이라면 올해 농사지은 쌀로 이웃을 도와 봐요.”
남편이 퇴직 후 아버지께 물려받은 땅에서 농사를 짓던 남편은 남는 쌀을 가져다 팔지 말고 돕는 데 써보라고 제안을 한 것이다.
남은 쌀을 팔지 않고 선 듯 내어준 남편에게 너무나 고마웠고, 그간 봉사활동을 하며 봤던 끼니를 굶던 많은 사람들이 눈앞을 지나갔고, 우리 동네 동사무소의 ‘사랑의 쌀 항아리’가 떠올랐다.
‘사랑의 쌀 항아리’는 여유가 좀 있는 사람들이 쌀을 채워 놓으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다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제도로 쌀을 붓는 사람이나 퍼가는 사람이 동사무소 직원에 허락을 받아야하거나 강요받지 않았고 그저 이웃을 위해 쌀독을 채우곤 했다.
그러나 쌀독은 항상 밑바닥이 조금 보이는 상태로 남아있었다.
‘쌀 항아리에 저렇게 쌀이 적으면 퍼가는 사람의 마음도 가볍지 않을 텐데…….’
나는 남편에게 얻은 쌀을 ‘사랑의 쌀 항아리’에 넣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거운 쌀가마니를 내가 혼자 옮기고 붓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나는 또다시 남편에게 도움을 오청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 아침 쌀 항아리를 채우고 왔다.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지요?”
내가 남편에게 쌀을 붓고 난 심정을 이야기하자 남편이 웃으며 내 말을 받았다.
“처음으로 당신이 남을 위해 물질로 봉사를 해서 그런가 보지.”
남편의 말이 맞는가보다.
그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이들에게 몸으로 열심히 봉사했지만
직접적인 물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마음 한쪽이 불편했는데 그것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앞으로 남편이 직접 농사지은 쌀을 쌀 항아리에 부을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지고 두근거렸다.
“그렇게 이웃을 돕는 일이 좋으면 밭에 있는 배추를 수확해 김치를 담가 복지관을 찾는 독거노인에 보내줘요.”
남편은 이제 배추까지 내주었다.
복지관을 다니며 식사 한 끼를 위해 찾아오는 독거노인들을 많이 뵈었다. 그분들을 위해 김장을 해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200여 포기의 김장을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워 많은 도반들에게 도움을 구했고, 그들은 내 뜻을 헤아려 기꺼이 도와주었다.
쌀과 김치.
이웃들에게 스스로 준 도움이었다.
그 도움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여보, 내년에 농사지을 때는 나도 당신의 영농활동을 도울 테니 배추농사를 좀 더 많이 지으면 안 되겠어요?”
“이 사람이 그런데 보자보자 하니까……. 남을 돕겠다고 남편을 죽이겠다는 거야. 그렇잖아도 올해 처음 농사를 짓느라고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곤 우리부부는 한참을 웃었다.
전에 몰랐던 ‘물질로 돕는 일의 즐거움’이 내게 다가와 우리 부부의 웃음이 되었다.
우리는 내년부터 열심히 농사를 짓고, 농사지은 쌀을 쌀 항아리에 넣고, 독거노인께 직접 재배한 배추와 무로 김장을 해 드리는 봉사활동을 하길 약속했다.
아직 어려운 이웃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런 이웃에 팔 걷고 나서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나 역시 근로봉사만을 했었고, 쉽사리 내 것을 내어주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나도 이제는 ‘평생의 소원’으로 쌀과 김장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게 되었고
그저 내 마음 속에는 신바람이 가득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