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빨리 와!”
셋째 딸의 재촉에 서둘러 발걸음을 움직였다.
세 명의 사랑스러운 딸들은 아빠보다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며 뒤쳐진 나를 돌아보고 빨리 오라고 자꾸만 큰 소리로 외쳤다. 발그레 상기된 세 딸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즐거움의 행복이 피어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스스로 준비하고 밥도 챙겨 먹고 나온 아이들을 보니 기특하면서 한편으로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개구쟁이들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 세 봉사활동 장소인 불광천에 다다랐다.
토요일 이른 아침 불광천은 벚꽃이 만발해 있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제법 많았는데 ‘참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이전에는 주말에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하루 종일 잠을 청했는데, 지금은 아빠가 된 탓일까 정말 많이 변한 것 같다.
오늘은 아빠로서 세 딸과 함께 매달 정기적으로 참여 하는 ‘불광천 하천정화 봉사활동’을 하는 날이다.
불광천 하천정화 봉사활동은 은평구에 위치한 에코맘이라는 사회적 기업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으로, EM을 활용해 불광천의 수질을 정화하고 주변 생태계를 감독한다.
또, 관련 프로그램도 있는데 매달 1회 2시간 동안 이루어진다. 하천 길을 따라 걸어 이동하며 EM 액상을 흘리고, EM으로 만들어진 흙 공을 하천에 던져 하천의 수질을 개선하며 정기적으로 환경공단 관계자분들이 오셔서 함께 수질검사도 한다.
또, 환경 교육 강사 분이 아이들도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재미있고 유용한 교육도 해 주신다. 그래서 2시간 동안의 활동이 크게 어렵거나 힘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건 1년 동안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참가 하는 것이란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봉사활동을 할 때 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딸들이 힘들어도 걸어가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걸어가면 그 만큼 환경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집합장소에 도착했다. 출석 체크를 하고 나니 세 명의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보이지 않았다.
벌써 알고 지내는 언니, 오빠들과 장난 치고 인사를 하며 다른 봉사자들과 친밀감을 뽐내고 있었다.
담당 선생님의 인솔 하에, 벚꽃이 활짝 핀 하천 길을 걸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세 딸은 뛰어 다니기도 하다 또, 길을 멈추고 하천 주변의 식물들을 관찰하기도 하면서 마치 내천과 친구가 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딸들이 이렇게 환경에 관심을 갖고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사실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인 큰 딸 덕분이다. 건강하던 큰 딸이 갑작스레 원인불명의 뇌염에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으나 뇌전증과 지적장애 3급이라는 휴유증을 갖게 되었다.
자식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아빠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다 ‘자원봉사활동을 한번 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1365자원 봉사 포털을 통해 세 딸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인 불광천 하천 정화 활동을 신청하게 되었다.
하천길을 따라 자녀들과 걸으며 활동을 하고, 평소 못한 대화도 하며 아빠와 함께 하는 의미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특히 평소 운동 부족이었던 큰딸의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놀이동산에 놀러 가는 친구를 부러워하던 두 동생들도 달라졌다.
두 딸들은 아픈 언니의 손을 잡아 주고 설명도 해주면서 어느덧 언니의 언니와 같은 마음과 모습으로 성장하며 가족애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딸들 간의 우애가 좋아진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 하나하나도 자신감이 붙었다.
어린아이들이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대견했는지 활동 중 많은 분들께서 “기특하다”, “대단하다”, 등 칭찬과 격려를 해주셔서 딸들의 자존감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큰딸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거의 자신의 생각을 자신감 있게 제시 하고 설명하는 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참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장애라는 것은 극복하기 힘든 일이다. 자원 봉사 활동을 하면서 아이의 표정과 모습, 행동 그리고 타인에 대한 생각과 표현이 달라지며 점차 장애라는 아픔을 이겨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로서 뿌듯하다.
그러한 가운데 홍제천 환경정화 자원봉사 활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하천 정화를 한다는 점에서 불광천 자원봉사와 비슷하지만 홍제천에서는 휴지를 줍고 환경감시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활동은 3시간 동안 하천 길을 따라 집게로 계속 휴지를 줍는 일인데 우리 집 아이들은 무슨 신나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아주 재미있게 활동을 한다. 총 두 가지 활동을 우리 가족은 2년째 참가 하고 있다.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 이다.
자원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 가족은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다. 아빠인 나부터 부지런해지고 짧은 시간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의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쁜 것은 세 딸의 변화이다. 지적 장애가 있는 큰딸은 친구가 없었으나 봉사활동을 통해 많은 친구를 만들었다.
큰딸이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함께 물건을 들어주거나 대화를 시도하며 직접 노력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큰 딸의 장애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차후에 밝혔다. 사실 장애가 있는 걸 알면 거리를 두거나 봉사자가 아닌 봉사를 받아야 할 사람으로 보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는데 다들 이전처럼 똑같이 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수연아 너도 할 수 있어. 별거 아니야. 파이팅!”
이라고 격려를 해주시며 시간이 조금 걸려도 큰 딸을 기다려 주는 사람들을 보면 가족 같다는 생각도 든다.
또, 두 동생들도 봉사를 시작할 때는 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지금은 활동 날을 기다리고, 당일이 되면 누구보다 열심히 즐겁게 참여하게 되었다.
봉사라는 것이 어떤 활동이고 의미인지 배우며 언니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보다 편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두 동생은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언니를 기다려 주며 응원한다.
“언니, 천천히 와. 우리 여기서 있을게. 힘내!”이러한 모습은 아마도 자원봉사 활동이라는 공통분모가 없었으면 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봉사활동에 처음으로 참여 했을 때 아장아장 걸음걸이를 하던 나의 소중한 세 공주들은 이제 누구보다 활기차고 힘 있는 발걸음으로 자원봉사활동을 즐기고 있다.
오늘 불광천에 화려하게 피어난 벚꽃처럼 우리 집 세 명의 공주들도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언젠가는 벚꽃보다 더 아름다운 향기를 이 세상에 나눠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아, 마지막으로 최근 참 기쁜 일이 생겼다. 큰 딸이 이제 학교에서도 친구를 만들었다. 학교 등굣길에 우연히 알게 된 동생인데 먼저 다가가 손을 잡아 주고,
“밥은 먹었니? 무엇에 먹었니?”등 질문을 하면 가까워졌다고 한다.
아픔이 있는 큰딸이 언젠가는 과거의 아픔을 털어내고 ‘그런 적이 있었지’라며 회상을 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