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24살, 처음에는 매년 하반기에 아이들과 지역아동센터 소식지를 만드는 봉사를 했는데, 이제는 매주 등원해 1대 1 학습 멘토링까지 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고 신나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중학교 교복을 입고 늦은 시간까지 공부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근 3년 동안 봉사하면서 나는 스스로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고 내가 사는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작년 연말, 봉사 활동에 대한 권태기가 찾아왔다. 나는 그 시기를 ‘봉사 권태기’를 줄인 ‘봉태기’라고 부른다. 처음 봉사를 시작했을 때의 나는 열정이 넘쳤다. 수업 시간이 지나도 센터에 남아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은 해결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졸업이 다가오자 긴 통학 시간, 학교 시험, 취업 준비와 같은 것들로 봉사활동에 집중하지 못했다. 일상이 바빠지니 봉사 시간이 지나면 쫓기듯이 퇴근하기도 했다.
또한 몇 해째 같은 소식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맞춤법이나 양식에 맞춰 글쓰기와 같은 교육을 꾸준히 했는데 같은 아이들과 또 소식지를 제작하는 경우에도 다시 맞춤법을 고쳐주고, 양식을 세세히 알려 주고 수업 규칙에 대해 다시 알려주어야 했다.
이런 시간이 지속되자 ‘아이들에게 내가 꼭 필요할까? 이 수업이 아이들에게 무언가 변화를 주긴 할까?
아니면 내가 잘 못 가르치는 건가?’ 라는 의문도 들었다.
이 시기에 함께 수학 멘토링을 진행하던 아동과도 문제가 있었다.
한 부모 가정인 아이는 생계를 위해 항상 바삐 일하는 어머니와 5살 위의 폭력적인 형 밑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이는 수업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며 숙제도 답지를 베껴 제출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붙잡고 이야기를 하며 나는 감정에 공감해보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보기도 하며 여러 방법으로 대화를 시도해봤다. 그러나 대화를 거듭할수록 아이의 가슴에 큰 구멍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 큰 구멍을 메워줄 수 없을 것 같았고 오히려 그 구멍 안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수업 오는 봉사자의 위치에 무력감을 느꼈다. 항상 좋은 멘토이자 선생님이라고 자부했던 마음이 점점 시들었다. 내가 감정을 쏟고 노력해도 아이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의 갈등도 생기고 집안 사정이 더 악화되자, 아이는 센터를 박차고 나갔다. 아이의 센터 퇴원은 봉사 활동에 대한 내 회의감을 가중시켰다. 연말이 다가오자 나는 올해까지만 하고 내년부터는 봉사활동을 전부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하는 봉사 활동이 더 이상 누군가에게 효과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아직 내 일상 하나 챙기기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심을 굳혀가던 중 센터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한 연말 센터 프로그램 평가에 대한 내용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멘토링 부분에서 내가 최고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센터를 그만 둔 그 아이 때문에 내 멘티 자리에 공석이 생기자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다고 지원했다고 한다. 이미 멘토링을 진행하던 한 아이는 한 줄 평가에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도 멘토쌤과 함께 수업하면 수학을 좋아하게 될 것!’ 이라고 적었고 다른 아이는 ‘내가 수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의 반 이상은 멘토쌤 덕분이다.’ 라고 적었다.
연말 프로그램 평가 내용을 전하면서 센터 선생님께서는 다른 말도 해주셨는데, 소식지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의 독후감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짜임새 있고 맞춤법이 잘 맞는 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자 가슴 속에서 다시 어떤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수업 막바지에 ‘선생님 저 중학교가도 수업 계속 하는거죠?’라고 먼저 묻던 멘티,
소식지 마지막 호에서 ‘내년에도 하게 된다면 꼭 다시 하고 싶어요.’라고 후기를 남긴 아이까지 모두 결과물에 상관없이 함께한 시간을 소중하고 즐겁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무력해지고 사무적으로 대하던 시기가 있었음에도 아이들은 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주고, 나와의 수업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다른 과제에서도 성실히, 똑같이 수행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쏟은 노력만큼 빨리 결과물을 눈으로 보고 싶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나타난 작은 변화를 잡아내지 못했다. 활동하면서 1년 가르쳤는데 당장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고, 글을 잘 썼으면 좋겠고, 맞춤법을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결과물이 그럴 듯하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결과만 보고 쫓기듯이 수업했고 그러니 쉽게 지쳤는데 아이들은 그저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그 사이 배운 것을 다른 곳에 적용시키기도 한 것이다.
사실 봉사 활동은 내가 일방적으로 내 능력만을 제공하는 소모적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준 것 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은 일이다. 늘어져서 누워있기만 했던 방학에 센터로 봉사 활동을 가면서 외출을 반복하고 가끔 아이들과 뛰어 놀면서 일상에서 활력을 느끼게 되었다.
또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숙제하고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학교 수업에 충실해질 수 있었다. 시험과 취업 준비 같은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아이들과 장난치며 한 시간 크게 웃으면 힘든 일들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긴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봉사 활동이 민들레 씨 뿌리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선한 바람에 맡겨 내가 가지고 있던 씨를 날리면 아이들의 곳곳에 씨앗이 스며드는 것이다.
씨앗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좋은 환경, 때를 만났을 때 반드시 발아한다. 씨앗이 바로 꽃이 되지 않아도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때, 수학 문제 연습을 할 때, 학교 독후감 숙제를 할 때, 누군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볼 때 여기저기서 민들레 싹이 틔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나는 열심히 봉사하면 세상이 꽃밭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빨리 꽃 피지 않느냐며 혼자 햇빛 쬐어주고 물을 주고 부채질을 했다.
내 씨를 천천히, 흐름에 맞춰서 꾸준히 날려 보내면 어느새 꽃을 피운 아이들이 생겨나고 그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씨를 다시 날린다는 것을 잊었었다.
돌아보면 어느새 내 안에도 씨앗이 스며들었고 눈 깜빡할 사이에 마음속에 꽃다발을 품고 있었는데 나는 일상이 지친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다시 나에 대한 믿음과 내가 하는 봉사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심적 여유와 활력을 되찾았다.
예전에 보았던 한 인터뷰에서 7명의 아이를 입양한 부모가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입양한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겠지. 하지만 너의 세상은 변한단다.”
내가 오늘 봉사를 나가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당장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와 마주보고 공부하는 아이들의 세상에는 작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많은 자원 봉사자, 특히 꾸준히 오랫동안 봉사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봉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쏟는 노력만큼의 결과물이, 더 나은 사회가, 환경이 나오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지말자.
진심어린 봉사를 하는 사람의 가슴에는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꽃이 가득 쌓여있다.
나는 센터를 그만 둔 그 아이에게도 내가 심어 놓은 씨앗이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수업을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