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나는 평창군 자원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 관리자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했다.
우리 자원봉사센터에서는 올림픽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약 800명의 봉사자와 함께 평창읍부터 대관령면까지 총 31개소의 자원봉사 안내소를 설치하여 2월 5일부터 지역 안내와 통역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평창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2월 9일, 올림픽 개막식이 진행되었다. 우리로서는 나름의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혹독한 평창의 강추위와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에 모두들 힘겨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자들은 시종일관 밝은 미소와 친절한 자세로 수많은 관광객과 취재진, 선수단 등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자 그 날씨에도 땀이 날 정도로 뛰어다녔다.
자원봉사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최선을 다해서 손짓, 발짓을 다 섞어가며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우리 자원봉사센터 소속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가 근무였는데 개막식 당일은 개막식 행사가 근무시간 이후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미리 자원봉사자들께 초과 근무 및 다른 근무지에 있는 분들께 올림픽 플라자 인근으로 파견을 요청해두었고 흔쾌히 그 부탁에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 활동에 임해주셨다.
역사적인 올림픽의 첫 순간인 개막식을 눈에 담기 위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대관령 시내에 몰렸지만 그나마 입장을 할 때에는 큰 어려움 없이 매표소와 입장하는 곳을 안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막식이 끝나는 10시쯤부터는 귀가하려는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대관령의 지리를 모르는 엄청난 인파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 우리 자원봉사 부스로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한국 사람들도 많았지만 절반정도는 외국인들이었고 한정된 자원봉사자의 인원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응대하다 보니 어느새 백 명이 넘는 인원이 부스 밖으로 쭉 줄을 서고 대기를 할 지경이었다.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에 능통한 통역 자원봉사자들은 물론 평소 봉사 좀 한다는 우수 봉사자들도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혹스럽기는 매 한가지였다.
게다가 통역 자원봉사는 청소년들이 많았고 갑자기 현장에서 외국어로 응대를 하는 것에 두려움과 부담감을 느껴하기도 했다.
자원봉사센터 직원인 나부터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관련 정보가 담긴 종이를 구하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뿐이었다.
자원봉사 부스에 들르는 관광객들은 개막식을 모두 관람한 후 셔틀버스를 탑승하는 곳을 묻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기에 큰 목소리로 “셔틀버스 타는 곳은 저쪽입니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안내를 했다.
그 중에는 셔틀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택시나 시내버스 등을 이용하려는 외국인들의 문의도 엄청났다. 하지만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시내버스는 이미 운행이 종료된 노선이 대부분이었고 이를 해결해줄 택시도 턱없이 부족했다.
평창군은 물론 강릉시, 동해시까지 근처의 모든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택시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문의 전화가 폭주해 택시 회사의 전화는 단 한 통도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대관령 택시 사무실 근처에서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나와 있던 우리 자원봉사센터 직원들과 통역 자원봉사자인 청소년들은 택시를 타지 못해 화가 난 한국인과 외국인들의 총알받이가 되어 원성을 들어주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이용할 수 있는 택시가 없습니다. 알아보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우리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이렇게 밖에 준비가 안 된 국제대회가 어디 있냐.’며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소리를 지르시던 분들도 많았지만 오히려 ‘이 사람들은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이예요. 고생 많으십니다.’하며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시는 분들이 더욱 많았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고 1시간에 1~2대 꼴로 겨우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방향이 같은 분들이 있으면 같이 좀 태워달라고 하며 낯선 대한민국의 길거리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외국인들을 먼저 귀가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렸다.
하지만 아직도 자원봉사 부스에는 귀가를 하지 못하고 추위와 싸우고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이렇게 있다가는 정말 길 위에서 밤을 꼴딱 새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였다.
통역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한 청소년 봉사자가 지역 안내 자원봉사자로 함께 근무하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희 아빠가 지금 차를 가지고 여기로 나올 수 있다고 하셔서 이 분들을 저희 차로 모셔다드릴게요.” 순간 머리를 탁, 하고 맞은 것처럼 멍했다.
자원봉사 관리자로 왜 그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을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래줄래요?”
그리고는 나도 얼른 뛰어가 차를 가지고 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개막식이 끝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혼잡했던 도로 상황도 제법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었다.
택시 사무실 앞에 앉아있는 분들 중 비교적 행선지가 가까운 분들부터 줄을 세웠고, 이 상황을 지켜보던 대관령에 사는 봉사자들이 앞 다투어 집으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지금 차 좀 여기로 가지고 와주세요. 빨리요.”
그렇게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승용차들이 뿔뿔이 흩어져 관광객들을 수송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중에서 가장 행선지가 멀었던 미국인 여성 4명과 함께 봉평으로 향했다.
대관령에서 봉평으로 가는 시간 동안 이러한 상황에 혹시나 대한민국에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부족한 영어실력이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모두가 서로 같은 88년생 ‘서울 올림픽둥이’ 친구들이었다. 그저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름다워 보여서 올림픽 기간에 맞춰 우리나라에 여행을 왔다고 했다.
신나서 평창에 대한 정보와 봉평의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차에 있던 메밀 쿠키를 간식으로 나눠주었더니 “Fantastic”을 외치며 환히 웃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휴’하고 나왔다. 아는 영어단어를 총동원해가며 겨우, 겨우 봉평에는 도착을 했는데 아무리 봐도 숙소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 같은 곳을 몇 바퀴나 돌았다.
결국 그 새벽에 봉평에서 택시 운전을 하시는 아는 봉사자분께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걸어 숙소로 가는 길을 여쭈었다.
전화를 받은 그 봉사자분도 아직까지 올림픽 개막식의 여파로 외국인을 수송하고 가시는 길이라며 숙소로 가는 길을 알려주셨다. 전화를 끊을 때는 둘 다 나름의 동지애(?)가 느껴져 서로 크게 웃으며 통화를 끝냈다.
다행히 숙소가 금방 나와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미국인 친구들은 너무 고맙다며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나는 한사코 요금은 필요 없다고, 그저 대한민국, 그리고 아름다운 이곳 평창에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며 주머니에 있던 올림픽 기념품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미국인들은 나를 꼭 안아주면서 감사의 표현을 해주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미국인 친구들과 서로 SNS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뜨거운 작별을 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하늘을 날듯이 기뻤다.
아침 일찍부터 개막식을 준비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낸 긴 하루였지만 누군가를 위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그리고 그 노력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그 어떤 날보다 값진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다음 날 미국인 친구들은 SNS로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고, 이 후 다시 미국으로 귀국한다며 연락을 해왔다.
비록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미국인 친구들이 무사히 지내다 가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흠 잡을 데 없는 것이 흠”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 성공개최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던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특히, 아빠 차를 동원하여 외국인 수송에 앞장섰던 용기 있는 그 청소년 봉사자, 그리고 제 일 마냥 앞 다투어 함께 합심하여 그 날의 교통 대란을 해결해주었던 우리 평창 자원봉사자의 헌신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
모쪼록 이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치는데 큰 공헌을 한 자원봉사자들의 희생과 노고가 인정되어 자원봉사자가 앞으로도 마음 놓고 즐겁게 자원봉사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