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님, 번역이 필요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동과 후원자님의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번역완료 부탁드려요’
주일 아침마다, 저에게 이 메시지와 함께 온라인으로 10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 편지는 바로 한국 후원자와 해외아동이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서신입니다. 현재 저는 월드비전에서 번역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3월 20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총
1,870통의 편지를 번역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영어통번역을 전공하면서, 번역봉사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저의 재능이 가장 필요한 곳에 소중히 쓰임받길 원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연한 기회로 월드비전 번역봉사를 알게 되었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제 역할은 한국 후원자분이 해외후원아동에게 보내는 한글 편지를 영어로, 해외아동이 후원자에게 보내는 영어 편지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국적의 후원아동들은 자신의 모국어로 편지를 작성하고 현지 직원 분께서 영어로 번역하신 다음, 영어로 작성된 편지를 한국봉사자인 제가 한국어로 번역합니다.
처음에는 필기체를 알아보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문화권의 음식, 국경일, 문화행사 등을 정확히 번역하기 위해 매번 인터넷으로 검색해야 했습니다.
(한국 후원자의 경우 해외아동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번역봉사자가 음식이나 문화에 관한 상세한 주석을 입력해야합니다)
하지만 봉사경험이 쌓여갈수록, 필기체와 다양한 문화권의 환경에 익숙해졌습니다. 이제는 ‘아, 이거!’하며, 바로 번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통해 여러 나라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공식적인 활동명은 편지번역이지만, 저는 ‘마음번역’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매주 번역봉사를 하면서 글자를 다른 언어로 옮긴다는 것보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한다는 사명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봉사를 하기 전에는 TV에서 국제구호단체 영상을 볼 때마다, 그저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연민의 마음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번역하며 만난 아이들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을 마음으로 느끼는 존재’였습니다.
후원자와 후원아동이 주고받는 첫 번째 편지는 주로 소개서신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소개서신을 번역할 때면, 저 역시 설레고 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후원을 결심한 후원자분의 마음과, 후원자를 만난 아이들의 기쁨에서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과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에 관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번역할 때면, 자연스럽게 저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서로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지구 반대편에 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소망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봉사자로서 감동을 느낍니다.
그리고 번역봉사를 통해 그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서로의 소개가 끝난 이후에는 안부를 전하거나, 생일·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을 축하하거나, 후원에 관한 감사함을 전하는 편지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후원을 통해 학교에 다니며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해합니다. 때론 후원금으로 산 물품들을 자랑하며, 자신과 가족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원을 통해 자신의 삶이 달라졌고, 항상 자신을 기억해주고, 언젠가는 꼭 후원자님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아이들의 고백을 전할 때 가슴 뭉클한 진한 감동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소식만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후원아동이 살고 있는 나라 혹은 지역에 재난 같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후원자분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자신의 후원아동이 안전한지 편지로 묻습니다.
그럴 때면, 저 역시 걱정하는 마음으로 후원자 분의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합니다.
저의 번역봉사 활동을 알고 있는 지인들은, 항상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봉사시간이 당장 필요한 상황도 아닌데 왜 4년 동안이나 봉사를 하는 거야?”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의 특별한 재능으로 인해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대답합니다. 지금 당장 제가 물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재능과 노력으로 먼 나라의 아이들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저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봉사를 하기 전, 저는 제 삶에서 행복함을 느끼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더 많이 찾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원하던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보다, 더 높은 성적을 받지 못함에 속상해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번역봉사를 하면서,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며, 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처럼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제가 누리고 있는 작은 행복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주 10통의 편지를 번역을 하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오히려 봉사자인 제 자신이 국내 후원자와 해외후원아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웁니다.
모든 편지 하단 쪽에는 번역에 참여한 저희 봉사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아래에 적혀있는 제 이름을 본 후원아동이 자신의 후원자 외에 한국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또 한 명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저의 손이 움직이는 날까지, 번역봉사활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고, 더 많은 후원자분과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봉사자가 되겠습니다.